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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아 나무·호밀, 도대체 얼마나 뿌리를 내리길래!
아까시아 나무·호밀, 도대체 얼마나 뿌리를 내리길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3.03.05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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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77_ 식물뿌리

맞다! 깊은 샘은 물이 마르지 않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뿌리는 뭐니 해도 식물체를 땅에다 박아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하고, 물과 무기양분을 흡수한다. 물이 부족한 곳에 사는 사막식물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리만큼 길고 많은 뿌리를 낸다. 일종의 적응인 것. 그래서 물이 많은 곳에 살거나 숫제 물속에 사는 수생식물은 뿌리가 없다시피 한다. 모든 생물은 험악한 환경에 처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애써 변하니 그것이 進化이다! 하여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당신은 진화 중!”이라고 타이른다.

식물들의 뿌리 뻗음은 가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칼바람 세차게 부는 한겨울도 거르지 않고 걷고, 뜀박질하는 나의 산책길에 디딤돌처럼, 발자국 놓기 알맞게 울툭불툭 뱀 등처럼 들어 누어있는 송근을 살며시 밟으면, “야, 소나무야, 너 발 시리겠다”하며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소나무에게 중얼중얼 말을 건넨다. 솔뿌리는 아주 질기기에 그것으로 솔을 만들어 썼는데….

언덕배기 산비탈을 호미나 곡괭이로 겉흙을 조금만 파 보라. 어디서 온 뿌린지는 몰라도 철근, 철사 줄을 빽빽하게 얽어 짠 듯이 사방팔방으로‘뿌리그물’이 퍼져있으니 산을 온통 나무뿌리로 돌돌 말아 놓았다. 땅 위에 우뚝 서있는 잎줄기와 땅속에 들어있는 뿌리의 生體量(biomass)이 거의 맞먹는다고 하면 독자들은 선뜻 믿겠는가. 땅 위의 것을 모조리 잘라 모아 무게를 재고, 땅속의 뿌리를 송두리째 파서 들어내어 재보면 둘의 무게가 엇비슷하다는 말이다. 나무 한 포기를 뽑아서 고대로 거꾸로 뒤집어 파묻은 것이 뿌리로다. 나무가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때, ‘물속의 나무그림자’가 그 나무의 뿌리에 해당한다는 말. 그래서 ‘식물의 뿌리는 숨겨진 반쪽’이라 하는 것.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식물생태학자들은 ‘순수과학’이란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한다. 어디 보자. 1년생 식물들은 잎줄기가 뿌리에 비해 외려 발달해 뿌리 : 줄기(뿌리/줄기)의 값이 0.1~0.2이고, 생장이 아주 빠른 나무는 0.2~0.5, 생육이 느린 極相(climax) 상태의 나무들은 0.5~1.0의 값을 보인다고 한다. 여기서 0.5란 잎줄기가 뿌리의 배이고, 1.0이면 둘이 같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숨겨진 반쪽’이란 말이 꽤나 옳은 비유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극상이란 숲이 아주 안정돼 더 이상 큰 변화가 없는 상태로 극상은 소나무 같은‘바늘잎나무’인 針곸樹가 아닌 참나무 무리 같은 ‘넓은잎나무’인 闊곸樹이다. 나무가 많으면 사방공사를 할 필요가 없으며, 아름다운 경관에다 땔감, 재목, 열매주고, 맑은 공기까지 준다. 그런데 큰 나무 하나가 숲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지?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 커다란 플라스틱화분에 용설란과 소철을 심었다. 분갈이를 하지 않고 여러 해 뒀더니만 어찌된 셈인지,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아니 끔찍하다는 말이 더 옳을 듯. 뿌리가 제한테는 버겁기 그지없는 그 센 플라스틱을 서슴없이 쫙 갈라 찢어 놨다. 도대체 이토록 큰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그리고 그 틈새에 날름거리는 억센 뿌리가 끼어있으니 기절초풍, 멀미가 날 지경이다. 도대체 저것들이 무슨 힘으로, 사람 모를 신통력을 부려 그 두껍고 야무진 화분에 금을 낸담? 힘이 장사인 뿌리 용설란이나 소철만이 아니다. 다져진 흙 더께를 딥다 밀어제치고 올라오는 씨앗들의 힘세기도 무시하지 못한다. 불가사의한 일을 해내는 푸나무들이다. 거목의 뿌리가 커나가면서 땅을 들쑤셔 자칫 담장을 허물고 작은 집도 무너뜨린다고 하니 이런 낭패가 없다.

어디 힘만 센 것이 아니다. 커다란 아까시나무(보통 ‘아카시아나무’라 부르나‘아까시나무’가 옳음) 한 그루가 거침없이 500m 멀리까지 뿌리를 뻗는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져진 흙바닥을 뚫고 그 멀리 물 찾아, 거름 만나러 간단 말인가. 더 놀라운 자료를 찾았다. 꼼꼼히 재보니 세상에, 14주 된 한 포기의 옥수수뿌리가 깊이 6m를 파고들었고, 뿌리가 뻗은 둘레의 반지름이 5m가 넘었다고 한다. 또한 다 자란 호밀 한 포기의 뿌리를 샅샅이 모아 일일이 이으면 어렵잖게 623m나 되고 표면적을 계산하니 물경 639㎡가 되더라고 한다. 놀랍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저것들을 어찌, 그냥 식물이라 불러야 하는가? 여느 식물이나 흙에 물이 적으면 뿌리를 길고 깊게 뻗는다. 재언하지만 우리는 이들 식물의 뿌리내림에서 깨우침을 얻는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하고, “영웅은 가난을 먹고 자란다”하듯이 젊어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의 뿌리는 훨씬 길고 깊게 심겼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며, 어지간한 가뭄에도 거뜬히 견딘다.

그런데 잘 보면 어느 식물이나 다 뿌리를 그리 깊게 박지 않는다. 단지 넓게 펴지는 것에 힘을 쏟는다. 아무리 큰 소나무도 깊숙이 내리지 않고, 제가 매달고 있는 나무 가지보다 더 널찍하게 거미줄처럼 얽기 설기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한 뼘만 아래로 내려가도 흙이 딱딱할뿐더러 거름기가 표토에 주로 있기에 절대로 깊게 들지 않는다. 그래서 센 바람에 뿌리 채 넘어지고 마는 수가 더러 있다. 헐벗은 뿌리를 매달고 우뚝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상상해본다. 공중에 서있는 나무와 땅에 박은 뿌리가 너무나 서로 빼닮아 ‘거울보기(mirror image)’를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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