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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과 위로를 주는 36.5℃ 인간적 공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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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구 경성대 ·사진학과 교수
  • 승인 2013.03.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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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파워의 다큐사진가 故 최민식 선생을 기억하며

 

▲(사진1)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부산, 1968」사진제공 눈빛출판사

 

그리 조각미남도 아닌, 그저 친근한 외모의 싸이가 전세계를 그토록 매료시킨 것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데서 그 성공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첨단의 인공지능 스마트시대로 질주하는 테크노시대에도, 역시 우리 인간들에게는 마음을 통하게 하는 인간적 공감능력이야말로 최선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아닌가 한다. 바로 그런 점에서, 지난 2월 12일 소천한 부산의 대표 원로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세계는 진실로 ‘인간적 공감능력’면에서 감히 최강자의 한 분으로 꼽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전 세계, 20여 개국의 사진공모전에서 220점이 입상, 입선되는 등 세계적인 공감능력을 검증 받아왔다. 바로 이맘때, 칼칼한 해운대 바닷바람 속에서도 다가온 봄기운을 예감하던, 2월 첫째 주였던 걸로 기억한다. 고은사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임하던 2008년 당시, 개관기념전 이후 두 번째 기획전시로 「최민식 사진전」을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전시기획을 위해 만난 자리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온 당신의 작품집을 건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저 묵묵히 내 혼자서…… 이래 질기게, 부산얘기만 한다 싶었는데, 지방최초의 사진전문미술관인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저 같은 부산토박이를 먼저 초대해주신다니…… 그 배려에 내 맘이 흥분되고 기쁩니다.” 진솔하게, 그의 작품에서처럼 너무도 인간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던 잔잔한 그 목소리가 내 기억에는 아직도 정겹게 남아있다.

2008년 2월부터 두 달간 진행된 그의 전시에 관한 기획의도와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세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단 하나의 주제 ‘인간(human)’에 초점을 맞춰, 부산 50년의 역사를 정직하게 담아온 부산의 대표 원로사진가이십니다.” 라고 소개했다. 사진가 최민식의 작품세계에 드러난 인간사랑에 대한 일편단심과 가난한 내 이웃의 삶을 이토록 헌신적으로 기록해온 그 성실성은 오늘날 귀히 되새겨보고, 반드시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거듭 강조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1세대라는 호칭에 걸맞게, 단 한 번의 곁눈질도 없이 50년간 변함없이 향토부산에서 우리 이웃, 가난한 민중의 이야기를 묵묵히 기록하며, 함께 호흡해온 작가의 내공이 있었기에 흑백의 모노톤에서도 그토록 은근한 빛을 발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사진가 최민식의 ‘인간사랑으로의 긴 여행’은 질곡의 부산 현대사와 동행해 온 그의 거짓 없는 여정이자 흑백 다큐멘터리의 정수라고 하겠다. 『휴먼 human: 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 1957~2006』 첫 페이지에는 人間愛에 대한 그의 고백과도 같은 서문이 실려 있다. “나의 작품에서는 인간이 중심이다. 인간이 작품을 철저하게 지배한다. 인간의 현존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인간을 묘사함으로써만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나의 작품은 誠心에서 비롯된 위력을 지녔으며, 거기에는 예술과 삶이 만나 어우러져 있다.” 그의 유일하고 영원한 주제인‘인간(human)’은, 삶의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평생토록 우직하게 노력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의 사명감이자 당위성이었다고 스스로 설명한다. 삶의 매 순간을 철저히 기록하고자 아침이면 어김없이 카메라와 장비를 ‘단디하고’ (부산 방언: 단단하게, 확실히, 신경 써서 기다)자갈치시장에 출근하셨고, 오후에는 작업내용을 정리하며 현상까지 마무리하는 성실함이 오랜 세월 그의 작품세계를 받쳐주는 힘이 됐다. 원로사진가의 습관화된 성실성이 그의 작품세계에 얼마나 큰 힘을 부여했는지, 강론의 기회만 주어지면 신진사진가들에게 잔소리처럼 강조하곤 한다. 영면하신 원로사진가 최민식의 성실한 작품활동은 후배들에게 모범적인 업적이며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의 사명감은 가히 충성적이었다고 하겠다.

 

▲ (사진2) 「부산, 1965」사진제공 눈빛출판사

 

그래서인지, 진솔한 그의 사진에는 언어로 미처 담아내기 어려운 情과 사람체취가 묵직하니 자리 잡고 있다. 사진가 최민식의 시각에는, 살아있는 생명의 의미를 반영하지 못하는 사진은 아무리 완벽해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가난하고 처절했던 그 시절, 가슴 아픈 상처를 담고 있지만, 그만큼 사랑과 소망이 풍성했던 인간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끈끈하게 담아놓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 특히 당시 기획전에는 喜와 樂이 잘 표현된 유모와 위트 넘치는 작품들을 주로 소개했었다.

최민식의 사진 50년 대표선집에도 수록된 작품 몇 편을 소개해본다.

사진1: 비린내 풍기는 어시장에서 억척스러이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던 자갈치 시장의 우리네 오마니들, 할미꽃처럼 굽은 허리지만 쩌렁 쩌렁하니“사이소, 보이소”외쳐대던 좌판대 우리 할매들의 모습이다. 운 좋게 그날 떼온 하루치 생선을 몽땅 떨이하고, 빈 생선 광주리를 뿌듯이 끼고 앉아, 한껏 웃어보는 짜릿한 휴식의 찰나. 그 여유로운 포즈에 애틋하니 눈길이 머문다.

사진 2: 푸릇푸릇하기까지 한 빡빡머리, 어설픈 교복의 남학생들, 조심스레 담임선생님 감독하에 표를 개수하는 제법 진지한 장난꾸러기들이다, 풀풀 분필가루 날리는 칠판에는 벌써 바를 正 숫자가 압도적인‘김덕배’가 반장이 됐는가 보다.

60년대 추억의 반장선거는 흑백영화처럼 정겹고 그리웁다. 참으로 찢어지게 가난해 매끼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하던 그 순간에도 삶의 희망을 움켜 쥐었던 인간적 스토리가 작품 하나하나마다 훈훈하게 살아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우산팔이 소년 소녀의 순박한 미소, 나름 멋 부린 구두딱이 십대들의 넘치는 패기, 비록 애처롭고 척박한 삶이었지만 서로를 부둥켜 안아주는 믿음과 우직함이 있는 그대로 표현된 작품들을 보노라면 절로 뭉클해진다. 최민식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요란한 기교만을 앞세워서는 남다른 예술작품을 빚어낼 수 없다. 천재적인 감성 못지않게 성실한 작가의 노력과 고통이 땀 배어나듯 물씬 묻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작가의 열정과 혼이 실리고, 유행가 가사처럼‘갈 데까지 가보자’는 인생을 건 헌신, 온전히 자신의 작품에 狂적으로 몰입하며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노력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생각과 느낌을 나누게 된다. 그러한 힘이 바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살뜰히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힐링파워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소망과 위로가 우리 가슴에 아련한 메시지로 전해질 때 우리는 훌륭한 작품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는 즉흥적인 감수성만으로 예술을 모방하고 탐하는 행위가 아니라, 예술을 추구하는 진정한 열정과 부단한 성실성이 더해질 때 비로소 관객들의 마음속에 명작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인간이야기 속에서 추억과 위로가 함께하는 이 느낌은 고마운 기록이자 진실된 다큐멘터리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재구 경성대·사진학과

필자는 상명대에서 다큐멘타리 사진미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논문으로 「사회구조주의 관점에서 본 사진의 의미와 기능에 관한 탐색적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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