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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처리식 교육정책 안 된다
민원처리식 교육정책 안 된다
  •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제8대 교육부총리
  • 승인 2013.03.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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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장관들이 말하는 박근혜 정부 교육부의 과제_ 김신일 부총리(8대)

교육인적자원부가 과학기술부와 통합한지 5년 만에 교육 담당 부처가‘교육부’로 독립해 출범한다. 문교부가 1990년 교육부로 이름을 바꾼 이후 2001년 부총리급 교육인적자원부로 격상된 것을 감안하면 12년 만에 교육부가 부활하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에는 참여정부에서 마지막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서남수 전 위덕대 총장이 내정됐다. 교육관료 출신이 교육수장에 오르는 것은 최초의 일이다.

<교수신문>은 교육부 장관을 지낸 학계 원로들에게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과 과제가 무엇인지 조언을 구했다. 31대 윤형섭 장관(1990.12.27~1992.1.22)은 교육부로 이름이 바뀐 이후 초대 장관을 지냈다. 서남수 장관 후보자는 당시 감사담당관으로 윤 전 장관을 모셨다. 42대 이돈희 장관(2000.8.31~2001.1.28)은 마지막 교육부 장관이다. 김신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2006.8.9.~2008.2.28)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교육부를 이끌었다. 서 후보자는 당시 차관으로 김 부총리를 9개월 동안 보좌한 바 있다.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8대 교육부총리
그 동안 역대 정부의 교육정책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때그때 민원문제 처리하듯이 원성이 높은 단기적 문제에 집중했다. 게다가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에 근본적이고 장기적 추진이 필요한 발전과제는 정책으로 채택되기 어려웠다. 단기적 현안 문제에 따라 다니는 정책 추진의 가장 큰 폐해는 장기적 방향과 교육기본의 상실이다.

현재 한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방향과 기본의 상실이다. 지난 수십 년 민원문제 처리 식으로 교육정책을 다뤄온 결과다. 그러면 어찌 할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의 대원칙을 ‘기본 지키기’에 둬야 한다. 교육부가 지켜야할 교육의 기본은 무엇인가. 어려울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다. 웬만한 교육학 교과서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라고 했던가.

학교교육의 기본은 지적 발달과 인격적 성장에 필요한 학습을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지적 발달에 필요한 것은 지식만이 아니고, 상급학교 입시용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적 놀이와 지적 사고를 통해 지적 활동을 즐기는 경험도 포함한다. 창의적 활동은 여기에서 길러진다. 인격적 성장에는 도덕과 함께 사회적 활동, 예술적 활동, 체육활동, 자연환경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학습활동을 포괄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인성교육 또는 전인교육이라 하고, 이것이 우리 학교들이 해야 할 바로 그 교육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비정상적 교육이 된다.

정상적 교육을 지키는 것이 교육부의 핵심 역할이다. 상급학교 입시가 하급학교의 정상적 교육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수목적 고등학교와 일부 대학의 입학선발 방식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적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교육청과 교육부가 평가하고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마땅하다. 상급학교나 대학들이 스스로 하급학교의 정상적 교육을 보호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치인, 기업가, 학교운영자 등 각 분야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교육을 주장한다. 그런 주장에 휘둘려서도 안 되지만 귀를 막아서도 안 된다. 그것을 귀담아 듣되, 교육의 기본에 부합하는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교육정책담당자의 책임이자 권리다.

우리 교육에서 중요한 장기적 문제는 공교육 재정의 빈곤이다. 다 알다시피 공교육의 사교육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상급으로 올라갈수록 심해서 고등교육은 사교육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교육을 파행으로 이끄는 근본적 원인이다. 고등교육 부문에 대한 재정 확대는 더 머뭇거릴 수 없다. 공공재정의 투입을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구조조정이 피할 수 없는 과제인데, 대학의 평생학습기능 확대가 국제적 추세이기도 하려니와 한국 대학들에게 남겨진 기회다.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제8대 교육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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