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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말로 주체적 철학을 시작할 때입니다”
“이제는 우리말로 주체적 철학을 시작할 때입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2.25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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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자의 정년퇴임_ 김남두 서울대 교수

3월의 캠퍼스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한다. 봄기운을 품은 신입생들이 캠퍼스에 활기를 불어넣는 이 시기에 정년을 맞아 강단을 떠나는 교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서울대 철학과에서는 김남두 교수의 정년식이 제자들의 책 봉정식과 겸해 열렸다. 故 박홍규 교수를 스승으로 모셨고, 이태수 인제대 인간환경미래연구원장 같은 선배들에게 평생을 배운 것이 행운이었다고 퇴임의 소회를 밝힌 김남두 교수를 지난 21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남두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부, 석·박사를 했다.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연구원, 미국 워싱턴대 방문연구원, 한국서양고전철학회장, 한국서양고전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철학계 1세대인 故박홍규 서울대 교수의 제자이자, 2세대 철학자로서 지난 30년 간 서울대 철학과에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냈다. 2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그는, 근대를 지배했던 서구의 철학을 넘어서서 지금이야말로 ‘한국적 철학하기’가 시작될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한다.

철학 교수로서 또 철학자로 30년을 살았던 그에게 철학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잃은 것 보다는 얻은 것이 훨씬 많다는 김 교수는 철학이 근본을 생각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인데,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다보니 삶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닥칠 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처음부터 철학자로서 살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유년 시절 불의의 사고로 동시에 양친을 여의고 동생들을 챙기며 모진 현실에 부딪혔던 그에게는, 어쩌면 일찍부터 철학자로서의 운명이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 교수는 철학을 하려면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첫 단계로 문학을 꼽았다. 그 자신의 경우도 중고교 시절 읽었던 수많은 문학전집이 평생의 자양이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서양의 중고교 교육과정을 예로 들며 사회 구성원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그들은 긴 이야기를 읽힌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건국 설화, 역사를 읽히는 것이 바로 언어교육의 기초가 되고, 역사교육과 철학교육은 그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의 얘기를 듣다보니,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우리의 교육과정에는 스토리가 있는 긴 이야기 교육이 없다는 점과 이 과정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조선시대 경전교육과도 다르고 서양의 틀만 가져왔을 뿐 번지도, 뿌리도 없는 이 교육의 체계가 바로잡히지 않고서는 세대가 함께 공유할 이야기, 정신이 존재할 수 없고 이는 필히 세대의 갈등과 단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철학의 사명은 무엇일까. 동서양이 만난 17세기부터 근대는 300년이 넘도록 서구의 지배를 받아왔다. 무력접촉도 있었고 거기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동양이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그들의 체제로 살아왔던 시기다. 그런 서구에서 탈근대를 외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김 교수는 한국만의 주체적인 철학하기가 바로 오늘날 철학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의 사명

한국인이 괴테의 작품을 읽었던 것이 독일의 계몽주의가 지난 300년 간 이뤄놓은 것을 객관화, 외연화 해 우리의 삶을 밝히기 위해서였다면, 우리 시대에는 싸이의 말춤, IT 인프라만을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을 스스로의 말로 빚어내고, 우리의 경험과 시각으로 오늘날의 시대와 자연의 의미를 말할 수 있어야 서구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철학의 사명에서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바로 ‘우리말로 철학하기’ 가 그것. 스승의 1세대, 자신이 지나온 2세대까지 해방 후 60년 동안 철학계가 서양의 것을 수입, 분석해 한국에 적용했던 시기였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국 고유의 것과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한자라는 기득권으로 500년 반상체제를 유지시켰던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서 높게 평가돼야 할 점이 ‘언어의 공공성’이라는 그의 주장은 여기서 그 맥을 같이 한다.

자신의 언어를 찾아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는 그리스 문명을 수입하던 로마가 어느 순간부터 그리스 고전에 대한 音寫를 하지 않았던 일을 예로 들었다. 그는 17세기 독일에서도 칸트, 라이프니츠, 데카르트가 모두 라틴어로 저술활동을 하다가 독일말로 철학하자는 운동이 일어난 후 그들의 주요 저작들이 독일어로 발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두 세대였다고 말하며, “서로 바뀔 수 없는 영국의 찬란한 경험주의, 프랑스의 찬란한 합리주의, 독일의 찬란한 계몽주의가 각자의 언어로 철학을 했을 때 세상이 더 풍부해졌고, 그들의 유산은 300년이 넘도록 근대를 지배하는 문화가 됐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형상, 질료, 오성, 통각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서 그칠 뿐, 더 이상의 자유로운 연상을 불가능하게 하게 한다. 그는『시학』에서 ‘학’대신에 우리말 ‘짓기’를 쓰게 되면, 집짓기, 밥짓기, 죄짓기 등 생각은 이해의 단계를 넘어 무한한 상상의 가지를 칠 수 있기에 우리말로 철학하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단을 떠나는 김 교수는 한국철학계에 제언을 부탁하는 요청에 뜬금없이 학생들 이야기를 했다. 한 학기 강의를 듣고도 이렇게 훌륭한 글들을 써내는 것을 보면 너무도 뛰어난 학생들인데, 이 좋은 재원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도 막상 일할 곳이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중고교에 정작 필요한 교사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철학도가 아니겠냐고 반문하는 그는 제도적으로 철학과 졸업생들의 교사 진출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교육에 관련된 전문과정을 2년 정도 이수하면 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얘기를 들으며 정년식에서 제자들에게 책 봉정을 받은 것이 괜한 이유가 아니란 것이 느껴졌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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