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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新지식의 최초 유입로 … “한국철학계 이슈 선도 하겠다”
1960년대 新지식의 최초 유입로 … “한국철학계 이슈 선도 하겠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2.25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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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돌 맞은 철학연구회, <철학연구> 100집 발간 눈앞에

1963년 8월 발족한 철학연구회(회장 곽신환 숭실대)가 50주년을 맞아 오는 3월 <철학연구> 100집을 발간한다. 철학연구회는 故 박종흥 서울대 교수 사후, 그의 제자와 동료들이 만든 박 교수의 기념사업회가 그 모태다. 흔히 데칸쇼(데카르트-칸트-쇼펜하우어) 철학으로 대변되는 식민지 시대의 철학적 흐름의 연장선을 벗어나 한국적인 혹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철학운동을 펼치자고 했던 것이 철학연구회의 문제의식이었다.

서울을 권역으로 하는 철학학회는 크게 한국철학회(회장 김혜숙 이화여대), 철학연구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회장 김성민 건국대) 정도다. 올해 6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철학회가 대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회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면, 1989년 창립된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사회철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모여 사회적인 이슈를 중점적으로 파고드는(학술지 <시대와 철학>) 단체다. 이 두 학회와 비교했을 때 곽신환 회장은 50돌을 맞이하는 철학연구회가 ‘너무 사회적인 이슈에 치우치지 않고 철학의 본령을 이탈하지 않는 학자들이 활동하는 학회’라고 소개했다.

철학 본령을 이탈하지 않는 연구

현재 700여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철학연구회. 곽 회장은 철학연구회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1960~1970년대에 비해 지금은 사뭇 다른 분위기라고 회고했다. 그는 사회 교육, 인문학 강좌가 거의 드물었던 시절, 철학연구회가 주최하는 춘·추계학술대회에는 철학자는 물론, 대학생, 일반시민들까지 구름 같은 인파가 참여해 학회장에 열기를 더했다고 말했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정보채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영미권 철학 사조들을 번역해 학술대회를 통해 공개한다는 1차적 의미에서 철학연구회의 학술발표회는 늘 새로운 지식의 최초 유입로였던 셈이다.

오는 3월 출간될 <철학연구> 100집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편집위원들은 100집에 대한 기획회의가 계속되던 지난해 말, 오랜 논의 끝에 100집 특집을 따로 준비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투고율이 높은 상황에서 매년 4권의 학술지를 발행하면 1년에 45편 안팎의 논문이 실리는데 일반잡지처럼 굳이 볼륨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 대신 지난 100권의 학술지가 나오는 동안 투고된 논문에 대해 거칠게라도 분석을 해 부록으로 싣기로 결정했다. 철학의 학문적 영역을 구분하고 시대적인 흐름을 되짚어보는 의미 있는 결과가 기대된다.

50돌을 맞는 학회가 준비하는 새로운 행사는 없을까. 곽 회장은 오는 6월 열릴 춘계학술대회가 철학연구회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전망할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학술대회들이 특정 인물, 주제를 중심으로 꾸려져왔다면 이번 학술대회는 다양한 철학자들이 모이고 의미있는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 비해 많은 철학 관련 분과학회(분석철학회, 칸트학회, 현상학회 등 40여 개)가 활동하고 있는 오늘이지만, 오히려 철학자간의 교류는 줄어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오는 춘계학술대회는 2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별로 각 2명의 발표자가 자신이 집중적으로 가졌던 철학적 훈련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시각으로 오늘을 말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세대간 단절의 문제, 철학자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2013년에 맞춰 최대한 다양한 군의 철학자들을 초청해 논의를 벌인다는 생각이다. 발제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시간을 질의, 토론 시간으로 설정해, 오늘날 철학이 갖는 의미와 과제에 대한 난상토론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패널로 철학아카데미 교수진을 비롯한 아카데미 밖의 재야사학자들을 초청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학술대회가 더 기다려지는 요
인 중 하나다.

허위와 위악의 감각조차 잃어버린 학회들

‘등재제도’때문에 비슷한 경향을 띠게 되는 오늘날 군소 철학 관련 학회들과 철학연구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학회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해 학술지를 발행하며 상당 수준에 올라선 경우도 있지만, ‘1년에 2회 학회지 발간’이라는 등재지 기준조차 충족하기가 버거워 여기저기서 논문을 끌어 모으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은 모두가 주지하면서도 쉬쉬하고 있는 학계의 현실이다. 회원 수를 채우기에 급급해 회비를 내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이름을 빌려가는 학회들도 있었다고 말하는 곽 회장은 “적어도 윤독회와 학회는 구분해야 한다”라며 “모든 학회가 전국규모의 학술지를 낼 필요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등재제도가 교수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논문을 써내도록 하는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학회의 정체성과 상관없는 논문을 학회지에 실어주는 관행이 생겨난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철학계가 처한 현실에도 이어졌다.

그는 지역 대학이나 교양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 5천 년 역사에서 철학이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누린 적이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며 1980~1990년대 성장시대의 철학이 고민 없이 부귀영화를 누려왔음을 인정하는 데서 등재지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철학계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15년 학령인구 감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대학들이 통폐합될 것처럼, 학회들도 크고 작은 학회와 서로 비슷한 학회들이 통폐합되는 현상이 곧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철학연구회는 타 학회와 달리 회장 임기가 2년이다. 곽 회장은 임기 중에 철학연구회에서 이루고 싶은 계획으로 “철학연구회는 타 군소 철학 관련 학회에 비해 역사가 긴 축에 속하고 또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전국 규모의 학회다보니, 한국철학계의 이슈를 ‘선점’하기보다는 ‘선도’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시의성 있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철학계의 밥그릇 챙기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면 내야하는 ‘광야의 목소리’를 선배철학자들처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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