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유적지 하면 만주나 청산리 전투에서 말이 흐려지는 것이 대부분. 그러나 최근 해외에 산재하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항일유적지가 구체적으로 조사·발굴돼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서북부, 중국 남부, 만주, 중앙아시아 및 연해주, 일본, 미주, 유럽 등 일곱 지역을 대상으로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최기영)와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김호일)가 공동 실시하고 있는 항일운동 유적지 발굴이 그것. 최근 중국 서북부 지역의 유적지 약 60여 곳을 탐사하고, 그 중 절반 가량의 새로운 유적지를 찾아낸 것도 바로 그 사업의 결과물이다.
이번 중국 서북부 지역 발굴의 팀장을 맡았던 장석흥 국민대 교수(47세, 사진·국사학과)는 “그동안 이야기만 무성하던 이상촌 ‘배달농장’을 비롯, 조선의용군의 연안 지역 항일 주둔지, 광복군의 서안 군관학교 터 등을 새롭게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라며 특히 “연안 지역에 엉뚱하게도 일본 기념비가 서있는 반면 당시 중국과 항일운동을 펼친 조선의용군은 남, 북 양측의 무관심 속에 ‘국제 미아’가 돼있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또 “중국의 한 명문고 교정 기념비 첫머리에 ‘조선인 주문빈(한국 이름 김성호)’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그를 잊어왔다”고 지적했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무심하게, 혹은 편협하게 다뤄져왔다는 사실이 장 교수에게는 충격이었다고.
한편 장 교수는 “북경은 도시 개발이 심해 이제 옛 번지로는 찾아다니기가 어렵다”며 유적지 복원과 기념관 건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해마다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북경을 찾지만 안내판 하나 없는 현실에서 그곳이 항일유적지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도 가고, 러시아에도 가서 그곳의 학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연구를 했으면 좋겠어요.”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단순히 외세에 대한 투쟁이 아닌, 인류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이 바로 독립운동의 핵심’이라고 배웠다는 장 교수는, 잃어버린 역사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부활시킴으로써 독립운동가들의 고행을 나눌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