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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국립대 특별법(안)’ 제정 기도는 중단돼야 한다
기고 : ‘국립대 특별법(안)’ 제정 기도는 중단돼야 한다
  • 박병덕 / 전북대·독어교육과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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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20:28:13
그동안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강행해 온 일련의 교육정책으로 우리 대학가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무엇보다도 대학의사결정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꾸고 교육재정을 확충해야 하는데, 교육부는 이같은 조치는 외면한 채 근시안적 교육정책을 강행하고 대학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보여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책임운영기관화와 교수계약·연봉제 등을 골자로 한 국립대학발전계획(이하 국발안)으로 국발안의 이면에는 대학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강화하려는 교육부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또한 교육부는 국발안을 철회하기는커녕 또다시 2003년 3월 시행 예정으로 ‘국립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특별법안)을 마련해 곧 입법 예고할 것이라고 한다. 특별법안 입법 예고 준비 과정에서도 교육부는 여전히 이해당사자인 대학구성원의 의견수렴은 고사하고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등 이제까지 대학정책 수립 과정에서 보여 온 잘못된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교육부는 지난 5월 16일부터 17일 사이에 전국대학 기획처장 및 사무국장 회의를 소집해 특별법안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고, 국공립대학 총장협의회에도 특별법안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의견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수단체나 나머지 대학구성원에게는 자료 공개는 물론 면담 요청까지도 회피하고 있다. 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비공개 이유지만, 사실상의 이유는 특별법안의 내용이 미리 공론화 돼 반대여론이 비등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입법과정이 비민주적이면 그 내용도 정당성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특별법안의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경로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 골자는 대학이사회(또는 재정위원회) 설치와 통합대학회계 도입에 있다. 교육부는 이 특별법안의 목적이 국립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있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시행될 경우 오히려 대학의 자율적 운영과 효율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돼 있다.

법안은 대학이사회에 대해 ‘예산심의·의결, 결산 의결, 중·장기발전계획 등을 위해 교수대의회, 교육부, 동창회, 지역사회 등 추천 인사와 기타 전문가로 7인 이상 15인 이내의 이사로 구성하며, 이사는 당해 대학의 교직원이 아닌 자로서 선임하되, 대학의 장은 당연직 이사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집행권자인 대학의 장이 의결권자가 된다는 것은 권력분립원칙에 맞지 않을뿐더러, 비전문성으로 인한 시행착오나 이해 득실에 따른 이기주의로 인해 대학 내의 갈등만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이사회의 대응기구로 두게 되어 있는 감사 제도는 대학을 특수법인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크며, 특히 감사 2인 중 1인을 교육부장관이 추천한다는 것은 교육부의 간섭과 통제 의혹을 일으킨다. 이사회를 구성하지 않는 경우 ‘대학의 교직원 대표, 동창회 대표, 학부모 대표, 지역사회 인사 및 기타 전문가로 9인 이상 15인 이내로 구성’하도록 규정한 재정위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학의사결정체제를 획일적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구성원 의사를 조직 운영에 반영하는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운영,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대학의사결정체제의 기본 장치로 구현돼야 하며, 교수(협의)회를 법제화하고 그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타당한 방안일 것이다.

통합대학회계 도입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립대학에 일반회계와 기성회계를 통합한 회계시스템을 제도화하고,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는 대학회계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주장이다.

물론 이 제도를 도입하면 회계가 투명해질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등록금 인상액을 각 대학총장이 자율적으로 정해 대학이사회 또는 재정위원회에서 최종 확정 의결하도록 하게 돼 있어, 교육재원을 충분히 확보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정부가 공교육의 의무를 포기하고 교육재정의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혹을 지우기 힘들다. 그리고 교육부가 예산편성지침을 작성하고 이를 각 대학에 적용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어 대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오히려 대학재정의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매우 크다.

대학의사결정체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국립대학 구조 개편을 강제하는 특별법안의 제정 기도는 중단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차기 정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박병덕 / 전북대·독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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