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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언제쯤 사랑받는 ‘自矜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그곳은 언제쯤 사랑받는 ‘自矜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13.02.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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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16_ 경무대, 청와대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목록
장충단공원, 명동·충무로 일대, 남산, 서울시의회 건물, 경복궁(광화문)일대, 덕수궁(정동), 서대문형무소, 탑골공원, 천도교 중앙대교당, 군산항, 부산근대역사관, 광주일고, 상하이 임시정부, 만주, 서울역, 경무대·청와대,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 이화장 , 서울대(동숭동·관악), 부산 항구, 목포항, 소록도 , 인천항, 제주도, 판문점·휴전선, 부산 국제시장, 거창, 지리산, 용산, 매향리(경기도), 여의도광장(공원), 마산(현 창원) 바다, 4·19국립묘지·기념관, 명동성당, 광주 금남로·전남도청, 울산 공단,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청계천·평화시장, 구로공단


▲ 대한민국 1번지 청와대.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해 역대 대통령들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물리적 문호개방만이 아니라 이곳에 자리한 권력 자체가 투명하고 소통하는 권력으로 변해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해당한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 서울시의 주산인 북악산을 두고 좌우로 駱山과 仁王山, 앞으로는 南山과 청계천이 자리한 배산임수의 좋은 터이다. 세종로 1번지라는 지번이 나타내듯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줄곧 대통령 관저 및 집무실이 자리하고 있는 핵심 權府다. 청와대 경내에는 본관 건물 이외에 경호실, 비서실, 영빈관 등의 부속건물과 녹지원과 같은 정원이 조성돼 있다. 본관 1층에는 영부인 집무실, 접견실, 연회장, 소식당이 위치해 있고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자리하고 있다. 본관의 좌우에는 경호실 건물이 자리해 주변을 차단하고 있고, 비서실 건물은 자동차를 이용해 드나들 정도로 떨어져 위치해 있다.

 

청와대는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해당한다. 지리적으로는 북쪽으로 서울시의 주산인 북악산을 두고 좌우로 駱山과 仁王山, 앞으로는 南山과 청계천이 자리한 배산임수의 좋은 터이다. 세종로 1번지라는 지번이 나타내듯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줄곧 대통령 관저 및 집무실이 자리하고 있는 핵심 權府다. 청와대 경내에는 본관 건물 이외에 경호실, 비서실, 영빈관 등의 부속건물과 녹지원과 같은 정원이 조성돼 있다. 본관 1층에는 영부인 집무실, 접견실, 연회장, 소식당이 위치해 있고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자리하고 있다. 본관의 좌우에는 경호실 건물이 자리해 주변을 차단하고 있고, 비서실 건물은 자동차를 이용해 드나들 정도로 떨어져 위치해 있다.

대통령중심제의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 대통령은 그 자체로 최고 헌법기관의 하나이며, 대통령이 머무는 관저는 권력의 심장부이자 최고 권력의 상징이다. 수많은 정당과 정치가들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많은 국민들은 그곳에 대해 감히 범접하기 힘든 경외감마저 가진다. 이처럼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곳이라는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관계가 청와대의 장소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청와대가 가진 이미지는 그리 곱지만은 않다. 권부라는 특성상 이곳을 차지한 개별 권력자의 통치스타일과 행적에 의해 또 다른 장소 이미지가 덧칠돼 왔기 때문이다.

고려때부터 정치권력과 엮인 세종로 1번지
청와대가 가진 장소성이나 장소 이미지를 생각하고자 한다면, 먼저 이곳의 역사성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청와대가 위치한 세종로 1번지 일대가 정치권력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11대 문종은 도읍인 개경과 별도로 한양의 이곳에 별궁을 짓고 남경으로 칭했다. 이곳이 별궁이 자리할 정도로 풍수지리상 명당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조선 태조 때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곳은 이제 궁의 후원이 됐다. 청와대의 이전 명칭인 景武臺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 한 후 후원에 있던 언덕형태의 평지를 가리켜 부른 이름이다. 그곳에는 융무당, 융문당, 경무대 등의 건물이 지어졌으며 과거 등의 궁중행사가 실시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의 용도가 바뀐다.

일제는 왕궁의 권위를 깎아내리듯이 이곳에서 전국 궁술대회나 부녀단체 운동회 등 민간인이 참여하는 행사를 수시로 열었다. 청와대 일대가 다시 권력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1937년 제6대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가 이곳에 총독관사를 새로 지으면서다. 총독관사는 1926년에 지어진 조선총독부 청사와 함께 경복궁을 앞뒤에서 감싸는 형국이며, 위에서 봤을 때 총독관사는 ‘大’자, 조선총독부 건물은 ‘日’자, 서울시청 건물은 ‘本’자를 형상화해 전체적으로 대일본 제국을 표상했다.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역사와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지어진 비운의 건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권부로서의 성격은 역사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져 간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이 땅의 최고 권력이 일제에서 미군정으로 바뀌면서 이곳은 군정장관 하지(J. R. Hodge)의 관저로 사용되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관저라는 지위를 승계한다. 관저의 주인이 바뀌면서 이곳의 이미지 또한 반전을 거듭한다.

하지만 최초에 맺은 권력과의 관계는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다. 이곳이 지닌 권력적 토폴로지가 계속 이어지면서도, 식민 통치자-점령군 사령관-초대 대통령이 한곳에서 연이어 지내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것이다. 새로 건국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은 이곳을 관저로 삼는데 거부감이 없었을까.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들지만, 이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줄 사람도 자료는 없는 것 같다.

최고의 권부라는 공통의 성격 이외에 청와대의 구체적인 장소 이미지는 이곳에 살던 권력자들이 만들어 낸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관저로 삼고 경무대라 칭함으로써 대한민국 건국의 심장부이자 영광의 장소가 됐던 이곳은, 이승만 정권 12년이 남긴 부정부패와 폭정으로 인해 ‘부정부패와 폭정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썼다. 1960년 내각책임제 하의 대통령으로 새로운 주인이 돼 이곳에 입성한 윤보선은 ‘경무대=부정부패와 폭정의 상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자 명칭을 청와대로 바꾸었다. 새로운 이름을 청와대로 정한 것은 관저의 지붕이 청색 기와로 돼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기와는 고유의 문화재이며 청색은 평화를 상징한다는 등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바람 또한 있었다. 윤보선 자신은 미국의 화이트하우스와 대조되는 블루하우스라는 영문 명칭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최고 권부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려는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박정희 군사정권 18년은, 그가 행사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인해 ‘경무대보다 무서운 서슬퍼런 청와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했다. 서슬퍼런 권력이 자리한 청와대는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이며, 이곳에 드나든다는 것만으로, 아니 드나드는 사람을 잘 안다는 것만으로도 권력이 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거처하는 관저임에도, 이곳은 감히 국민이 다가갈 수 없고 소통할 수도 없는 이른바 ‘구중궁궐’의 이미지를 더했다.

구중궁궐과 열린 공간 사이
박정희에 이어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주인은 수차례 바뀌었지만 여전히 청와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불식되지 않고, 건국 초대 대통령의 관저라는 영광스런 이미지를 압도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동안 노태우 대통령은 신관을 건축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이전의 조선총독 관저를 완전히 철거해 일제와의 연관성을 끊고자 했다. 또한 구중궁궐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자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앞길을 개방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본관과 영빈관의 내부까지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청와대를 이전해 일대 100만평의 녹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천명했으나,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따라서 권력이 자리한 청와대는 국민과 애환을 함께하는 열린 소통의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청와대는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대통령의 관저라는 권력의 심장부가 자리했던 의미심장한 곳이며, 매일 매일 중요한 국가적 사안들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중요한 곳으로, 국민이 자랑스럽게 지켜가야 할 자긍의 공간이어야 한다. 청와대가 한국 근대사의 기념비적 장소로 기억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문호개방만이 아니라 그곳에 자리한 권력 자체가 투명하고 소통하는 권력으로 변해야 한다.


이상봉 부산대 HK교수·지방정치
필자는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 『탈근대탈중심의 로컬리티』, 역서로 『모빌리티와 장소-글로벌화와 도시공간의 전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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