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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지방대-기부금이 없다.
흔들리는 지방대-기부금이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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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20:25:03
지방소재의 o대는 총장이 “발전기금을 모금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직접 뛰어다니고 있다. 총장 뿐 아니라 단과대나 학부도 지역유관기업을 찾아다니고, 동문회가 있는 곳이라면 서울이든 마산이든 쫓아다닌 결과 이 대학은 지방대 중 비교적 높은 기부금을 유치해 왔다. 가만히 앉아서는 기부금을 받을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이 대학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또다른 지방의 ㅎ대는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그 외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미미한 실정. 지방의 대학들 대부분이 이러한 자구책을 벌이지 않으면 각종 기부금 모금에서 수도권 대학에 비해 형편없는 실적을 기록하기 일쑤다.

시작부터 불공정한 ‘그들만의 리그’

교육인적자원부가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도까지 5년간 기부금을 많이 받은 상위 20개 사립대 중 포항제철, 현대 등 특정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는, 그야말로 ‘토종’지방 사립대는 3곳뿐이었고 이들이 받은 기부금의 비율은 전체기부금의 9%에 불과했다.

사정은 지방 국립대도 다르지 않다. 이제환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지방 국립대에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와서인지 졸업 뒤 기부 문화도 사립대보다 휠씬 미약하다”고 말한다. 이정덕 전북대 교수(인문학부)는 “재벌이 없는 전북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에 아예 기대를 접고 기금을 포기하는 대학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기업은 대학에서 길러낸 인재를 고용하는 대학교육의 수혜자이자, 사회로부터 벌어들인 막대한 부의 일부는 사회로 환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기업 기부액은 전체기부금의 절반에 가량으로 저조하며 그 적은 기부마저 지연, 학연 등에 얽혀 일부 대학에 편중지원되고 있다.

2000년도까지 5년간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많이 받은 상위 20개 사립대 명단에서 ‘토종’ 지방대는 3곳 밖에 발견할 수 없었고, 이들의 총액은 전체 기업 기부금의 7.3%에 불과했다. 반면 1위를 차지한 연세대는 12.7%인 3천억원 가량을 기부받아, 지방에서 선전한 4개 대학의 기부금을 모두 합친 금액이 서울 한 대학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각 대학 결산서에서도 상위 10개 사립대 중 ‘진짜 지방대’라 할 수 있는 대학은 영남대뿐이고 그마저 ‘10위’라는 턱걸이였다. 나머지 대학들은 일부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이 오갔다는 사실을 소식으로만 전해들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방대의 질적 환경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황한식 부산대 교수(경제학과)는 “기숙사나 장학금 등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 학생들이 많이 빠져나간다”며 “현재 대학원의 질적 수준은 가히 붕괴일로”라고 우려했다.

기업의 ‘도덕적 의무’에만 기댈 수 없다는 의견도 일고 있다. 권기홍 영남대 교수(경제학과)는 “기업의 기부는 잠재적 이윤을 위해 투자하는 셈”이라며 “학교가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 기업의 투자는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기업이 ‘의무감’이 아닌, 건전한 판단으로 지방대에 기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대학생을 채용해도 수개월간 재교육을 실시해야 하다 보니 대학으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희박하지만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수록 대학은 양질의 교육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대학이 직접 나서서 기업과 지역 사회, 시민단체 등이 어떤 교육을 요구하는지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홍덕률 대구대 교수(사회학과)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홍 교수는 “특히 지방대를 경영하면서도 지방의 문제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며 ‘사회와 지역 발전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려는 대학의 자세’를 요구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기업도, 대학도 만족스러운 상호협력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셈.

지역과 기업, 대학이 상생하는 길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지방대 육성 특별법이 수도권의 무관심 속에 계류중인 상태에서, 서울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길은 아직 희미하기만 하다. 지방분권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분권운동을 10월초까지 전국조직으로 확대하고 대선 후보들에게 지방분권에 대한 공약을 받아내는 등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기업과 지방대의 융화는 정부라는 촉매제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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