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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협, 교과부 산하기관인가 … 대학 목소리 안들린다
대교협, 교과부 산하기관인가 … 대학 목소리 안들린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3.02.1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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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앞두고 또 다시 불거지는 정체성 논란

“회비 납부를 거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는 실정이다.” 한 사립대 교수가 전한 최근의 대학가 분위기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을 두고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교협의 역할이 확대돼 왔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대교협이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산하기관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비판 또한 커져왔는데, 그 불만이 폭발 직전에 있다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베스트 파트너’가 아니라 ‘교과부의 베스트 파트너’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들린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교협은 대학 자율화의 상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1월 4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정기총회에 참석해 대교협에 힘을 실어줬다. 당선인 신분이긴 했지만 대통령이 대교협 정기총회에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대교협은 대학입시 업무를 시작으로 입학사정관제 사업, 대학 정보공시,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교과부 사업을 하나하나 가져왔다. 5년 전 50여명이었던 직원 숫자는 현재 90여명으로, 거의 배가 늘었다.

정부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사업 규모가 커지다 보니 대교협을 정부 산하기관으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재정규모를 봐도 그렇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교협의 2012년 예산은 3천153억원이다. 회비가 대부분인 일반회계 예산은 1.5%(46억원)에 불과하다. 93.4%인 2천946억원이 국고에서 지원받는 예산이다. 5.1%를 차지하는 특별회계 예산도 내용을 뜯어보면 정부 위탁사업이 대부분이다.

국고회계 비중이 절대적인 것은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이 2천411억원으로 워낙 덩치가 큰 탓도 있다. 하지만 대교협 기구표를 봐도 정부 위탁사업을 위한 조직이나 부서가 대부분이다. 고유 사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교협은 사무총장 아래에 7개의 실과 원을 두고 있는데, 고등교육연구원과 연수원 정도가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있던 기구다. 입학전형지원실(대입상담센터)과 대학정보표준원(대학정보공시센터), 한국대학평가원,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은 정부 위탁사업을 위해 신설하거나 정부 요청으로 만들었다.

대교협 조직도

그런데도 주요 사업에 대학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입시나 대학 정책에서 중요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교과부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역량강화사업만 하더라도 대교협에 넘겼다지만 평가지표나 지표 산정 방식 등 정책 결정은 교과부가 한다. 대교협은 예산 배분 등 기계적 역할만 할 뿐이다. 심지어 대학정보공시센터에서 내는 보도자료조차 ‘대교협’이 아니라 ‘교과부’ 이름으로 배포된다. ‘무늬만 자율화’인 셈이다.

정작 정부가 맞아야 하는 매는 대교협이 대신 맞는 모양새다. 대교협에 근무했던 한 교수는 “정부 위탁사업을 하면 대학에 현장 점검을 나가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교과부 직원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교협이 ‘제2의 교과부’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수 역시 “업무 이양이 아니라 운영만 맡기는 단순 위탁 형태다. 교육역량강화사업이 대교협으로 넘어왔다 해서 특별히 개선된 것 같지는 않다. 정부 사업도 정책 과정에 참여하면서 만들어 가야 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교협이 교과부 산하기관이냐는 비판이 커지는 데에는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행보가 늘어난 것도 한 몫 한다. 2011년 반값등록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교과부가 대학을 압박하자 대교협이 나서 등록금을 동결하자는 성명서를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과정에서 고등교육 재정 확대 약속은 제대로 받아내지도 못했다. 교과부가 학교폭력에 드라이브를 걸자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인성’ 평가를 강화하겠다며 보조를 맞췄다. 2014학년도 선택형 수능 도입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대학의 반발을 무마하는 데 급급한 인상을 줬다는 지적이다. 이러니 “대학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줄 알고 기대했는데 거꾸로 청와대나 정부의 입장을 듣고 와 대학에 관철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대교협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대교협에 근무했던 한 교수는 “고유 사업은 존재감을 찾기 힘든데 정부 위탁사업은 늘어나다 보니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 사업의 좋은 점은 살리고 문제는 개선할 수 있도록 정책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대교협다운 모습이다”라고 지적했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대교협이 명실상부 고등교육 전문 연구기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교협 감사를 맡고 있는 강우정 한국성서대 총장은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위해 조직된 대교협 본래의 좌표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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