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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성 대신 욕망이 지배한 근대 ‘명작’의 문화사
성찰성 대신 욕망이 지배한 근대 ‘명작’의 문화사
  • 박숙자 서강대인문과학연구소
  • 승인 2013.01.0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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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속물교양의 탄생』 박숙자 지음┃푸른역사 ┃412쪽┃20,000원

 

『속물교양의 탄생: 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은 식민지 시대 ‘명작’의 문화사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명작’이 ‘명작’인 이유는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둘러싼 해석들이 덧붙혀지면서 그 ‘좋음’의 가치가 재해석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명작을 두고 흔히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명작’이 시대와 역사와 무관하게 오롯이 빛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실은 각 시대마다 그 명작에 담긴 가치들이 음미될 수 있을 정도로 함의가 풍부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내면 깊이 기억되고 각인된 명작은 무엇일까. 짐작컨대 감히 추측하자면, 거친 역사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또 다른 세계의 진실을 말해주고, 그 삶에 놓여있는 민중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골방의 갇힌 청년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일 것이다. 그래서 ‘천변’의 현실을 ‘조선’의 현실로, ‘무진’의 시간을 1960년대의 시대성으로 웅숭깊게 읊어낸 작품들일 것이다.

근대문화와 속물적 욕망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식민지 시대 ‘명작’의 문화사를 추적하다보면, ‘명작’의 의미가 세계문학전집 목록으로 손쉽게 등치되는 풍경이 엿보인다. 어찌된 일일까. 지금도 비슷하다고 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풍경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시대적 현실을 보편적인 문법으로 성급하게 맥락화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이 명작의 성찰성이 물어지기 전에 명작을 통해 근대 문화 안에 성급히 편입되고자 하는 속물적 욕망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명작이 어떻게 읽혀지고 유통되고 기억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 『세계문학전집』을 둘러싼 교양의 아비투스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먼저 서구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둔갑하는 과정과 이 세계문학을 필독서로 읽었던 식민지 세계를 조명했다. 근대의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은 공공연히 眞書의 세계에서 原書의 세계로 이행했다고 언급하면서 원서로서의 세계문학이 근대문턱을 넘을 수 있는 상징자본이라고 말했다. 이 원서가 문명의 기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서로서의 서구문학은 읽어야 할 필독서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서구문학들이 어느 순간 완결된 전집의 형태로 식민지 조선에 상륙한다. 한두 작품씩 번역돼 조선인들의 심금을 울리던 방식과는 달리, 호화양장본으로 제본된 ‘전집’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일간신문 한 면에 압도적인 크기로 대대적으로 광고됐으며, 값싸고 질좋은 출판장정으로 조선의 독자들을 유혹했다. 日譯된 세계문학전집은 독자서비스의 형식이었지만, 그 규모와 유통방식은 1950년대 후반 문학전집을 통해 ‘국민교양’을 창출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세계문학전집이 일역됐다는 사실은 세계문학전집을 기억하는 사실만큼 중요했지만, ‘명작’이라는 관념과 ‘독자서비스’의 형식 속에서 가시화되지 않았다. 당시 세계문학전집은 조선의 현실에서 익숙하게 보여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식민지 시대 ‘명작’의 문화사를 추적하다보면,

‘명작’의 의미가 세계문학전집 목록으로 손쉽게 등치되는

풍경이 엿보인다. 어찌된 일일까.

 

종로도서관에서 “뜻도 잘 모르면서 거의 다 읽은 것”이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고, 우리말로 된 세계문학전집이 없을 때 선배가 추천해서 읽었던 것도 역시나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다. 또 김동리 선생이 소설을 공부하려는 자에게 추천했던 것도 바로 이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재밌기로는 ‘일본 배우들의 브로마이드가 잔뜩 실린 연예잡지’보다 못했지만 상급학교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열심히 읽어댔던 것이 이 전집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조선에서 세계문학전집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읽어야 했던 필독서이자 문학을 공부하는 이가 공부해야 하는 고전이었으며, 학생이라면 한번쯤 읽어두어야 할 교양의 목록이었다. 이들이 읽은 전집은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이었다.

 

▲ 920년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세계문학전집. <해외문학>지도 이러한 교양형성과 연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문학의 목록들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될 수 있었다. 명작의 기준이나 세계문학의 목록들이 편집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이 사실이 상기되지 않은 채 일반적인 교양 목록으로 굳어진 것이다. 세계문호의 목록이 이 전집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새겨지게 됐다고 할 정도로 이 전집의 목록은 이후로도 ‘세계문호의 인명부’로 기억됐다. 신조사판 세계문학전집은 『神曲』으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로 이어지는 서구문학의 연대기가 그 중심에 놓인다. 근대 문학의 기본적 함의를 서구의 인문주의로 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곡』의 원래 제목은 『La Divina Commedia』로서 직역해보면 ‘신들의 희곡’ 정도가 되나 이를 일본에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희극의 의미를 ‘희곡(曲)’의 의미로 해석함으로써 이후로도 줄곧 『신곡』으로 자리잡게 됐다. 일역된 흔적이 역력했지만, 조선의 경우 이러한 내적 계기가 해석되지 않으면서 세계문학전집은 하나의 자명한 관념이 되고 말았다.

자명한 관념이 된 세계문학전집의 가벼움
세계문학전집은 원래의 뜻을 선취하지 못하는 한, 그냥 ‘외국문학’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서구문학의 기호를 세계문학의 기호로 뒤바꿔서 이해하는 순간 서구문학은 보편적인 세계문학으로 수용될 수 있으며, 또 그럴 경우 조선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가 읽고 느꼈던 조선문학이 세계문학전집 안에 없다는 사실을 묻지도 않은 채 조선문학의 ‘수준’으로 그 문제의 원인을 돌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세계문학의 프레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 안에서 명작의 답안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과 경험을 소외시키지 않은 방식으로 이 시대의 문학에 밀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식민지 후반, 조선문학이 죽었다고 말해지던 암흑기의 시대 속에서 우리네 문학이 무엇이었는지 기획했던 모험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 노력을 통해 우리 문학의 숨결이 그리고 조선인들의 독서경험이 기억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사 안에서도 ‘좋은 책’으로 가는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자 했다.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국문학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저술로 『한국문학과 개인성』, 『식민지근대의 만화경』(공저), 「1950년대 『문학전집』의 문화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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