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5:05 (목)
대학강사 그리고 엄마로서 느끼는 절박감
대학강사 그리고 엄마로서 느끼는 절박감
  • 한미현 충남대ㆍ수학과 강사
  • 승인 2013.01.02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한미현 충남대 수학과 강사

한미현 충남대 수학과 강사
다른 사람들은 연말 분위기에 들뜬 12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필자는 이 무렵이 가장 마음이 불안하다. 강의를 하고 있는 시간이나 운전을 하고 있을 때에도 전화벨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 학기 강의 요청 전화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학기마다 여러 학교를 전전해야 하는 강사는 오랜 기간을 소속감 없는, 소위 부유하는 삶을 살게 된다. 몇몇 대학교에서 적은 강좌지만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는 필자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러나 마음 한 켠은 늘 미안함이 가득하다. 왜냐하면 필자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니는 모든 엄마들의 아침은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본인의 출근준비는 물론 아이의 등교준비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잠에 취해서 일어나기 어려운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본인의 끼니는 거를지언정 아이의 아침밥은 새로 지어 좋아하는 반찬까지 만들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 보낸다. 강의 시간이나 연구실에서 논문이라도 보고 있는 시간에 아이의 유치원에서 전화라도 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혹여나 아이가 아픈 것은 아닌지,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지인에게 필자의 직업을 말하면 아이를 키우며 여자가 하기에는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물론 어떠한 측면에서는 그러할지도 모른다. 방학 동안에는 강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육아에 전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이기 이전에 연구자이다. 방학은 학기 중에는 강의준비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연구 활동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업이 없는 방학 동안에는 강사료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도 전혀 없다.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자영업을 하는 등 다른 수입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 기간 동안에도 육아에 전념하기란 다소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은 시간이 지속됨으로써 강사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불안정성을 지속적으로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강사직의 환경에 대한 여러 지적이 있는데, 필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불안정성이 우선적으로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급여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강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급여의 많고 적음보다는 한 학기 단위로 고용이 이루어져 소속이 불분명하고, 일용직과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데서 더 크게 오는 듯하다.

특히 대학 여성 강사들은 더욱 그러하다. 만삭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이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 6시간 이상 강의를 해야 하고, 출산 후의 재고용을 보장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짧게는 6개월 길면 1년의 출산과 육아 기간 동안 실적(연구논문실적이나 국내외 학술활동)을 쌓는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이로 인해 도중에 포기하는 대학 여성 강사들도 많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용의 불안정은 강사 개인의 정서적, 경제적인 불안감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한 어려움이나 문제점은 연구 활동뿐만 아니라 육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고용 안정은 강사 자신에게 존엄성 및 삶의 질과 직결된 사안이다. 물론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교수 자리가 늘지 않는 상황이므로, 정년이 보장되는 법정 정규 교원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강사법’이 1년 유예가 되긴 했지만 개정된 고등교육법에는 계약기간이 한 학기에서 일 년으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일 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래서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계약기간이 2~3년 정도인 겸임교수나 강의교수, 연구교수의 경우처럼 계약기간의 연장과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줄여주는 것이 보다 안정성을 보장 해주는 게 아닌가 한다.

한미현 충남대ㆍ수학과 강사
충남대에서 박사를 했다. 연구활동 분야로 ‘함수방정식의 안정성’을 연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