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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한총련’ 어떻게 할 것인가
[신문로 세평] ‘한총련’ 어떻게 할 것인가
  • 박영근 교수신문 주간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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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7:25:11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독재정권과 지배세력에 빌붙어 노동자, 농민, 빈민 그리고 특히 운동권 학생과 북한을 매몰차게 몰아부친 언론들의 막가는 작태를 자주 보았다. 지난 1991년 6월 ‘외대사건’이 일어났다. 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씨가 30여명의 신문-카메라 기자들을 대거 대동하고 마지막 강의를 하기 위해 한국외대 교육대학원에 갔을 때 운동권 학생들로부터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매스컴은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암흑가의 깡패들의 소행과 같은 폭력행위”, “갈 데까지 간 운동권 학생들의 패륜적 행동”, “시대착오적인 정치이념을 맹신하고 이데올로기에 눈이 먼 극렬 좌경학생들의 폭거”라고 몰아세웠다.

이어서 96년 이른바 ‘연세대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한총련이 주도했던 이 사태에서 경찰 한명이 죽었고 부상당한 학생들의 숫자가 천여명을 웃돌았다. 뿐만 아니다. 4백62명의 학생들이 구속, 3천3백41명이 불구속 입건, 3백73명이 즉심에 회부, 1천6백72명이 훈방됐다.

사건이 일어나자 제눈에 들보는 놔두고 남의 티눈만 들추는데 이력이 난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한총련을 ‘빨간 물들이기’로 족대겼다. 개꼬리 삼년 묵어도 황모가 되지 않는 좀사내같은 ‘언론귀족’들은 학생들과 전경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었고 살벌한 군대 용어를 사용해서 한총련 죽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생들의 시위를 ‘연세대첩’으로,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배낭을 맨 전사들’과 ‘김일성 부자의 충성스런 전사’로 칭하면서 위험수위를 넘어버린 언어폭력을 마구 퍼부었다.

족대기고 닦달하고 세몰이를 하는 반민족-반민주 세력의 데데하고 어쭙잖은 행태와 ‘열린 사회의 적’들이 쏟아내는 입담수준이 이처럼 척박하고 볼썽사납다. 곧이어 공안당국은 문민정부의 말기를 틈타 한총련에 이적단체라는 낙인을 찍었다. 국가보안법의 족쇄 때문에 구속자는 자그만치 8백여명을 웃돌았고 합법적 선거로 뽑힌 학생회장들은 줄줄이 수배자가 돼 당국에 쫓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한총련은 자기반성과 변신을 꾀했다. 이후 한총련은 강령에서 연방제 통일안을 철회했고 6·15공동선언을 통일강령으로 채택했다. 운동방식의 폭력성을 거의 없앴다. 이제는 더 이상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통일운동 세력이자 우리의 미래를 담당할 젊은이들을 국가보안법에 묶어서 낯가림해서는 안된다. 한총련의 합법화는 우리 사회의 양식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보편적 인권의 실천의지를 가름하는 잣대이다.

이미 헌법재판소조차 92년 4월 국가보안법 19조(구속기간 연장)를 재판관 전원의 찬성으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이어서 국보법 7조(찬양 고무)와 10조(불고지죄)의 죄에 대해서도 위헌적 규정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일제 시대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했던 ‘치안유지법’의 혈통을 잇고 있는 국보법은,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민주인사를 족대겼고 김영삼 ‘문민황제’과 김대중 ‘삼독황제’(독주-독선-독단)에 의해 수천명의 학생과 노동자들을 옭아매고 있다. 검찰과 법원도 한번 이적단체면 영원히 이적단체라는 빛바랜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전환기의 어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수벨트가 형성되고 있는 국제적 정세 그리고 지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嫡子인 현 정권말기의 누수기에 힘입어 최근 우익의 역풍이 또 발호하고 있다. 햇볕정책 딴지걸기-노무현 뒷통수치기-노동/빈민/농민 죽이기-월간조선의 상지대 때리기-전교조와 동의대 사태에 대한 수구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선거 국면에서 남북대결을 부추기면서도 민족세력(?)으로 자임하는 수구세력의 준동은 계속될 터이고 따라서 개혁은 실종되고 통일 문제와 북한 문제는 덧나게 될 터이다.

우리 사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이더라도 이적단체로 몰린 한총련의 족쇄를 풀어주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통해 뽑은 한총련을 합법화해 주고 수년에 걸쳐 수배된 학생들을 풀어 주는 게 인권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이름값을 하는 유일한 길이다. 시대의 격량속에서도 희망을 지펴 왔던 젊은이들이 미래를 기획하고 물꼬를 털 수 있도록 과감한 결단을 헌걸차게 내려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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