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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국립 K대학 총장 러시아 박사학위 알선 파문
[초점] 국립 K대학 총장 러시아 박사학위 알선 파문
  • 교수신문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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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7:21:48
최근 부패방지위원회(위원장 강철규, 이하 부방위)가 “국립 K대학 총장이 러시아 박사학위를 알선해주고 거액을 챙겼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 사실의 진위여부 뿐만 아니라 해당 러시아 대학의 박사학위 남발에 대한 공방이 예상된다.

지난 달 28일 부방위는 “지방 국립대인 K대학 총장이 최근 5년동안 러시아 헤르젠 국립사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소개·알선해주고 25명한테 1명당 3천만∼4천만원씩 7억여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며 관련 자료를 검찰로 넘겼다. 또한 부방위는 “총장의 알선을 받은 이들은 러시아어를 모르며, 문제의 대학에 등록한 뒤 1년에 한번씩 일주일 가량 방문하는 것만으로 학위를 받았다”고 밝혀 대학가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총장 혐의 부인…그러나 의혹은 여전

이에 K대학 총장측은 “본교 교수 4명과 교사 3~4명을 러시아 대학에 소개시켜준 것은 사실이지만 따로 돈을 받지 않았다”며 부방위가 제기한 혐의를 전면 부인한 상태다. 총장의 소개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도 “총장에게 돈을 준 바 없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또한 총장측은 “러시아 대학은 ‘논문 박사’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철저하게 논문만을 심사하는 방식을 통해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있으며, 러시아에 굳이 체류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논문박사학위제도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는 논문을 영어로 쓰고 발표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에 의해 K대학 총장의 금품 수수 여부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해당 러시아 대학의 논문박사학위와 관련한 의혹과 비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논문 심사만을 통해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논문박사학위와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정규수업을 받으며 취득하는 박사학위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 즉 해당 러시아 대학이 논문박사학위와 관련해 지나친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대개 러시아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전공, 철학, 외국어(러시아) 등 3과목의 졸업시험을 치룬 다음, 예심 심사자격을 얻기 위해 관련 학술지에 두 번 소논문을 발표하고, 예심과 본심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은 국가박사위원회의 주관아래 이뤄지며, 심사과정은 속기록이 이뤄짐과 동시에 녹취된다. 최근 모스크바 사범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경숙씨는 “러시아어를 모른 채 이 모든 절차를 밟기는 힘들며 3년 이내에 과정을 마치는 것은 더욱 힘들다”며 “논문심사에 엄격한 러시아에서 영어에 익숙 않은 러시아 교수들이 영어로 논문을 쓰도록 허용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K대학 총장의 소개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 아무개 교사는 “방학 중에 러시아에 3번 정도 나가 각각 일주일 동안 지도 교수를 만나 논문 심사 및 지도를 받았다”면서 “논문은 영어로 썼지만, 영문 논문과 함께 러시아어로 번역한 논문을 20여 명의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했고, 영어로 발표를 하지만, 질의응답은 한국 유학생의 통역으로 러시아어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철학과 외국어(영어) 두 과목으로 이뤄진 졸업시험을 거치는 등 절차상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며, 참석한 심사위원들의 비밀투표를 통해 박사학위 수여여부가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97년 초에 등록한 그는 99년 7월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년 반만의 일이다. K대학 총장과 같은 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노 아무개 교수도 이와 동일한 과정을 거쳐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울뿐인 ‘학위’만의 남발인가

학계 일각에서는 외국어 사용의 허용 정도가 각 대학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러시아 대학에 가서 러시아어도 모르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학위’를 딸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논문박사학위제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박사학위를 수여하기 위한 형식상의 제도라는 비판이다.

조호연 경남대 교수(러시아사학)가 “어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어떤 교육 기관의 학위를 취득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논문을 쓰고, 또 단기간에 논문을 쓰는 것이 가능한가”라면서 “가능하다고 한들 타이틀을 따는 것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되묻는 것도 이런 우려와 무관치 않다. 상식의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것.

얼마전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태진 박사는 “러시아의 영토가 너무나 넓어 방중을 이용해 지도교수가 논문 지도와 심사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논문박사학위제도가 외국인에게 학위를 용이하게 취득할 수 있는 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 듯하다”며 논문박사학위제도가 지닌 맹점을 꼬집었다.

한편, K대학 총장이 헤르젠 사범 대학을 소개시켜주는 과정에서 돈이 오갔느냐에 대한 사실관계는 늦어도 9월 중순에 밝혀질 전망이다. 검찰은 ‘부패방지법’에 따라 60일 이내로 수사 결과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 헤르젠 국립 사범대학은 향후 박사학위 수여 과정에서 벌어진 금품수수 문제와 절차상의 특혜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밝힐 예정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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