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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지중해’의 진정한 개척자는?
‘황해지중해’의 진정한 개척자는?
  • 교수신문
  • 승인 2012.12.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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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권덕영 지음 『신라의 바다 황해』 일조각┃408쪽┃33,000원

전근대 서양의 역사는 유럽지중해(European Mediterranean)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지중해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발상지였고, 중세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의 각축장이었으며, 근대 르네상스 문화가 꽃피고 발전한 곳이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광대한 대륙에 둘러싸인 ‘액체 공간’에서 서양의 문화와 예술이 발달했고, 교역과 교류가 이뤄졌으며,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역사가 전개됐다. 이런 점에서 유럽지중해는 늘 서양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하겠다. 유럽지중해가 서양의 중요한 역사 공간이었다면, 황해는 동아시아의 역사 현장이었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로 둘러싸였고, 동남쪽에 일본이 자리 잡고 있는 황해는 한국 · 중국 ·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의 교류와 교섭의 場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지중해가 그렇듯이, 황해는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교섭과 문화교류 그리고 경제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열린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황해의 역사성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바다에는 육지와 달리 눈에 보이는 유적과 유물이 없고, 바다에서의 인간 활동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다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최근에 들어와 동아시아의 역사발전 과정에서 바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 결과 고대 동아시아의 역사 현장이었던 황해는 버려진 역사의 장이 되었고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역동적인 삶의 공간과 견당사
황해는 역사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역사 속의 황해는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황해를 잊고 살아 왔다. 저자가 황해를 망각의 늪에서 끌어올리고자 작심한 데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필립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The Mediterranean and the Mediterranean World in the Age of PhilipⅡ)』의 영향이 컸다. 브로델은 방대한 이 저술에서 16세기 유럽지중해를 매개로 이뤄진 정치, 교역, 전쟁, 외교, 종교, 문화교류 등 인간의 제반 활동을 구조적이고 종합적으로 풀어나갔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교섭과 교류를 종횡무진으로 묘사한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는 동아시아 삼국의 소통과 융합의 공간이었던 황해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한 저자의 황해 연구는 십수년에 걸쳐 이뤄졌다.

일찍이 저자는 황해를 징검다리 삼아 빈번하게 당나라를 왕래하던 신라 遣唐使와 황해를 건너 당나라에 이주한 在唐 신라인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탐구한 바 있다. 견당사와 재당 신라인에 대한 연구를 마무리한 후, 황해의 역사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저술이 바로 이 책『신라의 바다 황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황해 연구 3부작 중의 마지막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바다 황해』는 자연(황해)과 인간(역사)의 상호 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황해를 무대로 펼친 신라인의 활동과 역사적 의미를 거시적으로 조망한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신라의 황해교섭과 교류의 역사를 전체 여섯 주제로 나눠 정리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황해교섭의 실상에 대한 연구와 신라의 성쇠와 황해의 상관성을 고찰한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먼저 이 책에서는 황해와 그 주변의 자연 및 인문환경을 고찰하고 황해의 지중해적 성격을 집중적으로 탐색했다. 물론 황해는 전형적인 지중해 지형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황해는 지중해의 해양학적 특성을 두루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과 상관성, 문화적 융합을 통한 문화권 형성이라는 지중해의 인문적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황해를 ‘황해지중해(Yellow sea Mediterranean)’라 명명했다.

브로델에게 영향받은 개념틀
‘황해지중해’는 이 책에서 사용한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다. 나는 황해지중해의 관점에서 신라의 황해 경영을 탐구해 나갔다. 신라는 동아시아의 문명과 문화가 교차하는 지중해성 바다 황해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활용했다. 바람과 파도에 잘 견디는 ‘신라선’을 개발했고 황해 횡단항로와 斜斷航路를 개척해 원양항해시대를 열었다. 신라는 튼튼한 배와 편리한 바닷길을 통해 중국 대륙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을 왕래하며 정치교섭과 경제교역 그리고 문화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했다.

한때 장보고가 동아시아 해역을 장악하고 국제해상무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꾸준히 이어진 신라의 황해 경영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신라는 황해를 통해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국제적 지위를 제고했고, 그러한 국제정치의 감각을 이용해 삼국통일이라는 일대 사건을 이뤄냈다. 경제적으로는 국제무역을 통해 신라인의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했고, 문화적으로는 중국의 선진 사상과 문물을 수입해 신라에 적용함으로써 정신문화의 질을 높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신라는 명실상부한 ‘군자의 나라’가 됐다.

자타가 인정하는 군자국 신라는 정치·경제·문화·지리적으로 편협한 ‘小新羅’를 탈피하고 국제 감각을 갖춘 ‘大新羅’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한 대신라를 이룩하는 데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황해였다. 나는 이런 점에 주목해 황해를 ‘신라의 바다’로 결론지었다. 종래 한국사 서술은 육지 중심의 역사였다. 신라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삼국사기』에서부터 오늘날의 역사서술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바다를 도외시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바다 특히 황해를 도외시한 신라는 온전한 신라일 수가 없다. 사실 ‘황해’와 ‘신라’의 연관성은 선뜻 와 닿지도 않고, 서로 썩 어울리지도 않는 두 마당이다. 선학들이 황해와 신라를 연결시켜 역사를 재구성하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황해와 신라의 관계를 외교와 전쟁, 교역과 교류, 이산과 이주 등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둘을 조화롭게 엮어 내었다. 이 책은 비록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으나, 황해를 신라 속으로 끌어들였고 또 신라를 황해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라 자평하고 싶다.

 


권덕영 부산외국어대·한국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고대사와 동아시아교류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고대 한중외교사-견당사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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