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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문화- 변혁의 시대, 문화의 전망
[신년특집] 문화- 변혁의 시대, 문화의 전망
  • 교수신문
  • 승인 2001.01.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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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04 14:46:01
김 병 익(문학평론가, 前 문학과 지성사 대표)

'문화의 세기'가 온다고 했을 때의 문화, '문화 입국'을 이루어야 한다고 할 때의 문화, 혹은 '문화 복지'를 과제로 삼아야 할 때의 문화는 어떤 문화일까. 그것이 일상의 생활 방식을 가리키든 분야에 따른 운영의 방식을 뜻하든, 삶의 질을 세련되게 하는 양식이든 그리고 인간의 창조적인 정신의 외현적 표현이든 이제 문화는 전통적인 의미로부터 변하고 정통적인 형태로부터 벗어나며 새로운 양상으로 옮겨가고 있는 듯하다. 그 '문화'는 아마도 '문'은 흐릿해지고 '화'는 진한 모양이 될 것 같다. 그런 문화적 모양새들이 새로운 밀레니움, 대망의 21세기가 되는 지난 2000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그 조짐들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문'을 지워가고 있는 힘은 세계화든 정보화사회든 또는 벤처들을 통해서이든, 결국자본이다. 그것들은 우선 전래의 인문주의의 '문'을 밀쳐내면서 그 자리에 돈이며 자본을 쑤셔넣기 시작했고 '문' 속에 차려져 있던 반성과 비판, 인간 중심과 지적 진지성, 창조와 상상력을 덜어내고 효율성, 기능성, 정보 그리고 '모험'을 들어 앉혔다. 기존의 가치 체계에서 반문화적이었던 것들이 문화의 공간을 대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을 어지럽게 바꾸는 또 다른 힘은 새로운 형태의 영상과 소리의 문화이다. 영화며 애니메이션, 디자인 같은, 같은 예술임에도 그 본질은 기존의 문자적 혹은 고전적인 주류의 것과는 다른 예술, 게임과 팝처럼 같은 문화임에도 그 급과 수용의 양상이 다른 대중의 문화가 전통의 창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인간적인 예술과 문화를 변두리로 밀어놓고 있다. 문자가 발휘해온 내면의 승화와 비판적 사유 대신 이 새롭고 혹은 대중적인 문화들은 예술을 문화 상품화하면서 키치적인 것, 소비적인 것, 탈본질적인 것으로 우리의 의식과 그 기호를 바꾸어 채워넣는다.

이 거대한 문화사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과 사이버이다. 이 신종의 미디어와 공간은 우리의 전래의 관념과 풍속과 사유와 행동과 윤리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적 변화를 요구한다. 그 '화'는 정보와 소통의 방식을 바꾸고 지식과 예술의 개념을 수정하며 그에 대응할 인간의 정서와 태도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을 강권하고 문화의 행위와 반응이 변화하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급격한 인터넷 인구의 증가, 강한 흡인력을 가진 멀티 미디어의 확대, 새로운 정보 시스템에의 투자, 컴퓨터 조작의 숱한 창작 기법과 기술의 개발 등 근래의 이런 것들이 새로운 문명 시대로의 '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금세기의 첫해에, 전래의 '문'을 흐릿하게 지우고 새로이 '화'할 것을 요구하는 강력한 문명적 접변의 현장을 살고 있어온 것이다. 거대한 문화사적 흐름 속에서, '문'이 흐미해지는 것은 아마도 슬픈 일이지만 나쁜 것은 아닐지도 모르며 '화'가 진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개인적 선호와는 관계 없이 시대가 몰아오는 추세일 것이다. 이 근원적인 변화와 그 조짐에 대해 환호를 하든 탄식을 하든 간에 우리가 괴로워해야 할 것은, 그 사이에 끼어 가치에서나 판단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바로 그 혼란과 갈등, 어쩌면 그 아노미 증상을 우리가 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21세기의 첫해는 우리에게 바로 이 점을 예감시켜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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