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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우간다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 풍경
[테마] 우간다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 풍경
  • 교수신문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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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5:38:25
손승영 / 동덕여대·여성학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소재한 마케레레 대학에서 지난 달 21일부터 26일까지 제8차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렸다. 2005년도 세계여성학대회 유치 신청을 해놓았던 한국여성학회 임원진은 우간다 출발 1주일 전에야 차기 대회 개최지가 서울로 최종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세계여성학대회가 드디어 3년 후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는 부랴부랴 한국대회 소개를 위한 팜플렛을 영문으로 제작하고, 여성학회 홈페이지 영문 작업을 마무리짓고, 차기대회 홍보차 현지 부스에 비치할 한국관련 영문 책자와 포스트를 구한 다음, 아프리카를 향해 출발했다.

각국에서 맞닥뜨린 여성의 고난

한국에서는 여성학회 회장 조옥라 서강대 교수, 부회장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를 비롯해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 윤형숙 목포대 교수, 공미혜 신라대 교수 등이 캄팔라 대회에 참가했다. 이외에도 모두 10명이 한국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 1백여 개국에서 2천5백 명이 넘는 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발표와 토론에 임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아프리카 학자들의 참여가 가장 많았고 유럽과 북미에서 온 학자들도 상당수 있었으나, 아시아 학자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1981년 겨울, 첫 번째 세계여성학대회가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개최된 이후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계여성학대회가 아프리카에서 개최되기는 처음인지라, 아프리카 전체의 축제로 여겨질 정도였다. 우간다의 무세베니 대통령이 개회식에서 연설을 하고, 부간다 왕조의 여왕인 레이디 나긴다가 저녁 만찬에서 축사를 하고, 1994년에 아프리카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부통령에 취임한 카지베 부통령이 폐막식에서 폐회사를 하고, 영부인이 참석해서 여성학 분야 신간서적 3권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정도로 거국적인 행사로 치러졌다. 특히 개회식 때 소개된 여성 장관과 의원 수만 해도 열 명을 훨씬 넘어서 우간다의 강한 우먼파워를 실감하기도 했다. 게다가 개설 후 10년 동안 줄곧 사회과학대학의 조그만 방 한 칸을 사용하던 여성학과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널찍한 3층짜리 건물을 선사받을 정도로 정부의 지원이 막강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젠더화된 세계 : 이익과 도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개최된 이번 대회는 세계 각국에서 각기 다른 전공을 지닌 여성학자들이 만나 주요 주제들에 대해 다학제간으로 논의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창출해 냄과 동시에, 발전과정에서 젠더 통합을 꾀하고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도전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분과별 논문 주제는 크게 18개로 농업과 환경, 문화와 창조성, 여성과 경제, 여성과 교육, 법과 인권, 정보와 미디어, 평화와 분쟁, 정치와 정부 통치, 과학과 기술, 여성학과 남성학, 영페미니스트 목소리 등으로 나뉘어졌다.
제 7차 대회까지의 개최지인 이스라엘, 네덜란드, 아일랜드, 뉴욕, 코스타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등이 시사하듯이 이전에는 주로 서구 여성학자 중심으로 대회가 진행돼왔다. 자연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지위’, ‘정책과 법’, ‘여성학적 개념발달’. ‘일상에서의 젠더 관계’ 등이 주목을 받았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아프리카 현실을 반영하는 제목의 논문에 많은 학자들이 몰렸다는 점이다. 특히 ‘농업과 환경’ 분과에서는 농촌 여성의 빈곤, 환경보존과 여성 역할, 농촌 여성의 경제적 지위 세력화 관련 논문을 통해 여성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프리카 일상에 대해 생생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젠더, 법, 인권’ 분과에서는 할례, 난민문제, 여성 상속권 등 아프리카 현안 주제들이 다뤄졌다. 이외에도 에이즈 고아, 여성 문맹률, 아동 성매매 등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특히 수단의 한 여성학자는 아직도 여성 할례가 공공연히 시행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대회 참가자들로부터 일일이 서명을 받느라 땀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같이, 아프리카의 현실을 다루는 분과에는 아프리카 학자들의 참여가 많았던 반면, ‘여성학, 남성학, 개념적 발달 분과’처럼 주된 내용이 다양한 교수기법과 연구 시행시의 윤리문제를 다루고 있는 분과에서는 발표자가 대부분 미국, 독일, 노르웨이 등 선진국 학자들로 구성되어 차별성이 두드러졌다.
한국의 참가자들은 모두 5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국토와 수자원개발에 있어서의 계급과 젠더’(윤형숙), ‘고학력 여성의 노동시장 공적 영역에서의 배제’(손승영), ‘물질주의적 소녀들? 성적 인식과 갈등’(공미혜), ‘젠더와 고등교육 내에서 여성학 연구’(김은실), ‘한국 NGO 활동에서 ‘공동체성’의 문제-여성학적 관점에서’(조옥라) 등의 논문을 통해 한국여성이 당면한 현실 분석과 함께 여성주의적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지구화와 여성’과제 남아

다양한 논문 발표와 열띤 토론을 통해 세계각국에서 모인 학자들은 젠더 문제가 경제발전 정도와 종교, 문화, 가족제도, 교육의 보급 정도 등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고뇌와 어려움에 대해 공감함으로써 탄탄한 ‘여성주의 지성공동체’ 형성에 동참하게 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상당수 남성학자들의 발표와 토론 참여가 두드러졌으며, 아프리카 여성들의 강인함과 자신만만함, 당당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논문 발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주최측에서 마련한 각종 행사를 통해서도 자매애를 돈독하게 다져나갔다. 거의 매일 저녁 진행된 전통 춤과 노래 공연을 비롯하여 시낭송회, 나일강의 원천 방문 주선, 3km 마라톤 대회 체험을 통해 일체감을 느끼기도 했다.
대회를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여성의 세계 테마송’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등장하여 춤과 함께 합창한 노래의 후렴 부분인 “I’m not a toy, just because I’m not a boy”라는 구절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우리에게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먼 곳으로만 존재해온 아프리카대륙이 한국대표단에게는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프리카의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제의식과 의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듣고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주축으로 신촌의 3개 대학이 공동 주최해 2005년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될 제 9차 세계여성학대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가이다. 차기 대회의 테마는 ‘여성의 관점에서 본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지구화가 한국여성에게 미치는 영향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의 입장에서도 재평가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세계 여성학자들의 눈에 과연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비쳐질까 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미나 마마교수가 주제발표를 통해 밝혔듯이 이제는 상징이나 수사학으로 여성의 현실을 은폐하는 부당함을 더 이상 인정하기 어렵다. 여성이 경험하는 현실과 이론으로 포장된 수사학 사이의 괴리는,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발전한 서구사회나 대다수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낮은 아프리카 사회와 비교할 때, 우리 사회에서 더 넓게 존재하고 있다. 이는 교육받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지위불균형 현상이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한국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부당함을 최대한 줄이고,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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