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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쇼윈도우’로 떠나는 여행자들, 결국 ‘境界’에서 좌절하다
‘제국의 쇼윈도우’로 떠나는 여행자들, 결국 ‘境界’에서 좌절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2.10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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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근대의 문화지리 ‘만주’,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

 

2007년 2월 2일 동국대 문화관에서 흥미로운 학술대회가 열렸다. ‘근대의 문화지리―동아시아 속의 만주/만슈(まんしゆら)’라는 주제의 학술대회였다. 근대 만주를 배경으로 한 동아시아인들의 삶과 이동, 만주에서 배태된 예술적 성과, 다양한 매체 속에 나타난 만주의 형상, 그리고 근대 만주가 갖는 문화(사)적 위상을 조명한 자리였다.

그 성과를 정리해서 단행본으로 엮어낸 것이 바로 2010년에 출간된 『제국의 지리학, 만주라는 경계』(동국대 문화학술원 한국문확연구소 편, 동국대출판부 刊)다. 이들을 호명하는 이유는 ‘항일투쟁의 무대’로서 만주가 아니라, 식민과 피식민이 교차하던 궁핍한 시대 삶의 그늘이 새겨진 생존의 벌판으로서 만주를 이들이 불러냈기 때문이다. 『제국의 지리학, 만주라는 경계』라는 이 흥미로운 책은 1부에서 ‘만주의 근대와 문화’를 다루고, 2부에서는 ‘근대문학의 만주 표상’을 수록했다.

‘흥미롭다’고 하는 것은, 이들 수록된 글들이 가닿는 점이다.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이 공간의 역사정치적 의미를 넘어 ‘장소성’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기획이란 점을 떠올린다면, 이 책에서 보여준 접근 역시 이러한 장소성의 재인식과 어느정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주로 문화론, 여행기, 영화, 음악, 라디오 등 근대 미디어를 통해 인식되고 표상된 만주의 문화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임성모(연세대 사학과)의 「팽창하는 경계와 제국의 시선」은 러일전쟁과 만주사변을 분수령으로 해서 전개된 일본인의 만주 여행이 어떤 특징을 내포하고 있는지 정리한 글이다.

만주가 새로운 항일의 전초기지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
삶의 그늘이 스며들어 있는 미시적인 문화지리의 ‘경계’로
자리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임성모에 의하면, 러일전쟁 직후 만주 여행은 전승 국민으로서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등 제국 의식을 배양하는 것이었고, 만주사변 전후의 만주 여행은 기존의 제국 의식의 함양과 함께 제국의 근대성을 만끽하는 체험이었다. 만주국이 ‘제국의 쇼윈도우’로 등장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인의 만주 체험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만주는 살벌한 공간이기도 했는데, 허설희(臺灣 中央硏院 臺灣史硏究所)의 「만주 경험과 백색테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논문은 식민지시기 만주국에서의 타이완인의 활동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1948년 ‘만주대사건’을 사례로 탈식민 이후 계엄시기 중국 정부의 정치적인 숙청의 한 정황을 묘사한 글이다.

그의 논문 말미에는 이런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만주의) 건국대학을 졸업한 타이완 사람들은 전후 숙청당했다. 상대적으로 해마다 10명을 배정받을 수 있었던 조선 학생들은 전후 북한이나 남한 정부의 억압을 받지 않았다. 그들의 경우 어떠했는지 더 깊은 연구를 기다려야 한다. 이수청의 말을 따르면, 건대를 졸업한 강영훈은 남한의 총리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과 타이완 역사에서 일본 식민지시대 및 그 영향이 미친 시대에 대해 양국의 학자들이 더 깊이 연구할 부분이 있다.” 좀 더 흥미로운 글은 2부에 수록된 정종현(동국대 국어국문학과 BK사업단)의 「근대문학에 나타난 ‘만주’ 표상」과 오태영(동국대 국어국문학과)의 「‘朝鮮’ 로컬리티와 (탈)식민 상상력」 이다. 두 논문 모두 소설 속에 그려진 만주 표상을 추적하면서 논의를 전개한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만주국’ 건국 이후의 소설을 중심으로, 후자는 이효석의 『花粉』과 『碧空無限』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쳤다. 정종현은 식민지시기 만주 거주 조선인의 정체성이 종족, 거주지, 국적이라는 삼중의 정체성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만주국’ 건국 이후의 소설 텍스트에 표상된 다양한 층위의 만주 모습과 만주국 이데올로기와의 관계를 구상화했다.

그에 따르면 ‘만주’라는 공간은 모순적이고 혼종적인 공간(정종현에 의하면, 조선인들 가운데 일부는 중국과 제휴해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일본 신민에 뒤이은 지위로 ‘오족협화·왕도낙토’의 일주체가 되는 亞제국주의의 계기를 발견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이었으며, 식민지시기 문학에 나타난 ‘만주’ 표상은 이러한 당대적인 내부의 시선으로 접근할 때 그 온전한 의미를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태영은 식민지 후반기 지방성, 지역주의 담론의 자장 안팎에서 ‘지방’을 벗어나 ‘세계’를 지향한 식민지 지식인의 서사로 이효석의 두 소설을 검토했다.

그는 제국의 지리적·문화적 경계를 넘어 ‘세계’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고 했던 식민지 조선 지식인이 경성/하얼빈, 지방/세계라는 지리적·문화적 경계의 동요 속에서 조선으로 되돌아온 행위와 욕망, 그 과절의 과정을 분석, “식민지(조선)를 떠나 세계(하얼빈)로 향하는 ‘구라파주의자’들의 행위와 욕망은 언제나 제한적이며, 결코 달성될 수 없게 된다. 세계 어느 곳을 향하든 그들은 제국적 질서 아래 놓이게 되고, 도처에서 식민지를 체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만주가 새로운 항일의 전초기지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듯 만주라는 공간과 장소는 다른 한편 삶의 그늘이 스며들어 있는 미시적인 문화지리의 ‘경계’로 자리했다는 진단도 설득력 있다. 근래 만주학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다층성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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