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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였던 인문학, 어떻게 치유의 주체가 됐나?
환자였던 인문학, 어떻게 치유의 주체가 됐나?
  • 김기봉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
  • 승인 2012.12.05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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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세계인문학포럼 참관기

교육과학기술부와 UNESCO, 부산광역시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주관하는 제 2회 세계인문학포럼이‘치유의 인문학(Humanities & Healing)’을 주제로 지난달 1일부터 3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3일에 걸쳐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20개국 33명의 외국 학자와 한국학자 28명 등 모두 61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했다.

지난달 1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열린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의 주제는‘치유의 인문학’이었다. 극으로 치달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사회적 징후들로 나타나고 있는 요즘, 치유의 주체로서 인문학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치유의 인문학’이란 말은 낯선 용어다. 2006년 인문학자들이 모여 인문학 위기를 선언하고 사회가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고 호소했는데, 그런 인문학이 인류문명과 국가폭력 그리고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낳은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향연을 벌였다는 것은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엊그제만 해도 환자였던 인문학이 이렇게 의사로 나선 이유와 배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박영식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의 대회사를 시작으로 철학, 역사학, 사회학의 3명의 기조강연자의 발표를 통해 명확히 설명됐다.

물질적 풍요 뒤의 황폐한 마음

먼저 박영식 회장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병리학적인 진단을 통해 인문학적 치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은 지난 30년 만에 선진국들이 300년간 이룩한 근대화를 성취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영광의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급격한 산업화는 물질적 풍요를 갖다 줬지만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음으로써 사회적 낙오자들을 자살에 이르게 하거나 흉악범죄자로 전락시켰다. 이제는 황폐해진 한국인의 마음을 치유하지 않고는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며,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인문학적 치유를 요청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문학에게 근대 문명이 만든 병을 치유할 능력이 있는가. 김여수 경희대 석좌교수의 첫째 날 기조 강연은 이에 대한 답을 줬다.‘ 힐링’이란 원래 회복을 의미하며, 그래서 우리가 회복하고자 하는 순수한 본연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사유하는 철학, 곧 인문학 본래의 역할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철학계의 원로인 김 교수는 그동안 인문학이 이 같은 사유를 하지 않고 인간과 세계의 이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인문학이 근원으로부터 차단되고 중심으로부터 이탈했던 것을 교정해 본래의 역할을 회복할 때 근대적 삶의 병리학적 치유가 가능할 수 있다고 봤다.

박영식 회장이 대회사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기적을 한 세대 만에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피해를 당했다. 특히 민주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희생을 치렀다. 둘째 날 콘다드 야라우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의 기조 강연은 이 같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줬다. 그는 “역사가는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억압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명쾌히 밝힘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만드는 심리치료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강연의 말미에 인용한 야스퍼스의 말은 어두운 과거를 덮어두려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일어났던 일은 일종의 경고이다. 그것을 잊는 것은 죄악이다. 그것은 계속 기억돼야 한다. 그 일은 일어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오로지 지식 속에서만 예방될 수 있다.”

치유의 인문학이란 치유의 대상이 됐던 인문학이 치유의 주체가 되는 인문학의 가치전도를 함축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환자였던 인문학이 의사로 자임하는 역할 전환이 이뤄질 수 있는가. 인문학의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은, 셋째 날 기조강연자인 사회학자 미샬 마페졸리 프랑스 파리5대 교수를 통해 이뤄졌다. 치유의 주체가 된 인문학을 해명하는 강연을 한 것이다.

치유란 과학적 용어라기보다는 민간요법 또는 한의학의 개념이라는 점에서 치료와 구별된다. 치료를 지칭하는‘therapy’는 의학분야에서‘treatment’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의사가 하는 처치를 지칭한다. 외부의 도움으로 병을 고치는 것이 치료라면, 치유로 번역되는‘healing’은 자기 스스로 나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자가 서양의학의 분석적 방법에 입각해 있다면, 후자는 한의학의 종합적 해결법을 추구한다. 문제가 되는 병을 없애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사람인 환자를 보살펴서 스스로 낫게 만드는 것이 치유다. 치유를 위해서는 환부라는 부분이 아니라 환자의 삶 전체에 대한 진단을 해야 한다.

이성 위주의 자연과학이 학문의 패러다임이 된 시대가 근대다. 근대에서 인문학은 자연과학에 종속됨으로써 학문의 탈인문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적’세계관을 가질 수 있지만‘과학’그 자체를 세계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런 과학의 한계를 톨스토이는“과학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과학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어떤 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세계의 탈주술화가 일어난 근대에서 인간은 어떻게‘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치유 위해서는 ‘환부’ 아닌 ‘환자’ 봐야

마페졸리는 시대(epoch)란 그리스 어원으로 보면 ‘괄호 치기’며, 근대라는 괄호는 3세기에 불과하고 이제는 그 괄호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자연과학이 선도한 근대 서양문명은 문화와 자연, 육체와 정신, 감성과 이성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통해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같은 문명의 진보가 낳은 문제를 치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성과 감성의 분리를 극복하는 감성적 이성(sensible reason), 자연을‘지배하는 지식’에서‘상생하는 지식’으로 되돌아가야 하며, 이 같은 통합적 휴머니즘을 갱생하는 것이 탈근대 인문학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세계인문학포럼에서 거둔 성과 중의 하나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사업의 주요 인문학적 치유의 결실들인 강원대 인문치료, 원광대 마음인문학, 건국대 통일인문학의 성과들이 세계를 향해 소개됐다는 것이다. 김여수 교수가 기조연설에 말한 것처럼 부산의 센텀시티는 한국의 압축 성장의 표상이다. 바로 그 곳에서 근대성의 병리학을 치유하는 인문학적 향연이 벌어졌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두 번에 걸친 세계인문학포럼의 개최를 통해 부산이 세계인문학의 메카로 자리 잡길 기대한다.


김기봉 한국연구재단 인문학 단장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박사를 했다.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과 문화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경기대 교수(사학)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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