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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정치 내려놓고 팍팍하고 고달픈 삶 응시
무거운 정치 내려놓고 팍팍하고 고달픈 삶 응시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2.05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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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울호 계간지 리뷰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사건 이후, 국내 정치계는 대선 앞의 어수선함도 없이 오히려 暴風前夜의 고요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2년 겨울호 계간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대선을 염두에 둔 특집을 준비한 계간지는 <역사비평>101호와 <오늘의 문예비평>87호정도다. 밥상머리, 술자리 단골 소재였던 먼 정치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네 사는 이야기에 주목한 <문학동네>73호, <창작과비평>158권, <황해문화>77호가 있고,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분석한 <문화/과학>72호가 있다.

먼저, 재난에 주목한 <문화/과학> 72호. 특집 기획으로 준비한 ‘재난과 자본주의’에서 재난을 바라보는 고대인들의 시선부터, 지난해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같은 현실의 재난과 빅데이터 시대의 재난 등 무형의 재난까지 종횡하며 재난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검토했다. 문강형준 편집위원은 「왜 재난인가: 재난에 대한 이론적 검토」에서 재난에 대한 고대인들의‘신화적 사고’양태로부터‘재난 자본주의’를 둘러싼 동시대적 이론/담론의 지형을 분석하면서 재난에 대해 서양이론이 제시하는 것을‘유토피아의 요청’이라고 명명했다.

신지영 일본 히토츠바시대 연구원은「항시적 재해와 잠재적 코뮌」에서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3·11대지진의 충격이 은폐한 비극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 연구원은 이 혼돈의 장소를 찾아 후쿠시마의 조선학교가 처해 있는‘비국민’으로서의 배제적 폭력의 실상, 진재 지역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오히려 결속되고 확산되고 있는 코뮌적 자치의 양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전환기 지도자들의 성공과 실패 엿보기도

‘폭력의 독점적 행사’로 행정부를 규정하며 폭력의 독점상태를 안팎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 <오늘의 문예비평> 87호의 특집은 ‘포스트 국민국가 시대, 주권의 너머를 상상하다’ 이다. 문학평론가 고봉준은「주권의 외부를/에서 상상하다」에서 오늘의 주권에 대한 논의가 국민국가의 내부적으로만 국한될 수 없는 상황임을 지적했고, 정남영 경원대교수(영문학)는「활력의 정치를 위해」에서 기존의 정치를 그 속성상 주권적 정치의 메커니즘으로 정의하고, 그런 주권적 권력과 삶 권력의 동질성의 계보 및 이질성의 근저를 분석했다.

20세기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죽음을 반추한 글을 실은 <역사비평> 101호는 특집으로 ‘전환기의 지도자들: 성공과 실패’ 를 준비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라는 현실 정세를 고려한 특집임은 불문가지다. 행운의 주인공은 해외 5명과 국내 2명이다. 유사민주주의에서 친위 쿠테타에 의한 독재로(필리핀의 마르코스), 신자유주의 우파 정권에서 성장과 분배를 결합하려 한 좌파정권으로(브라질 룰라), 신자유주의 중도 이념에서부터 진보적 포퓰리즘까지 혼재된 상태로부터 극단의 정치로(미국 클린턴/부시), 인종 차별 독재로부터 모두를 위한 무지개 민주주의로(남아공 만델라) 정치의 축을 옮긴 인물들이다.
클린턴 시대와 아들 부시의 시대를 극명하게 대조했던 시각에 반론을 제시하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클린턴과 부시, 단절인가 연속인가」에서 선과 악을 극단의 이분법으로 구분한 부시 정권의 정치가 9·11 테러에 따른 신경발작증이나 시대착오적 네오콘 진영의 득세 차원이 아니라, 이미 클린턴 시기부터 시작된 일련의 흐름 속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클린턴 정권은‘평평한 지구’의 네트워크적 통합을 꿈꿨지만, 그것은 약탈 자본주의를 초래하는 시장주의와 예방적 독트린의 군사적 개입주의의 결합이라는 점, 그것이 낳은 정치적 양극화가 공화당의 공포의 정치에 탐스런 자산이 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지도자들에 관해 쓴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노무현·이명박의 어젠다 정치-갈등과 통합의 딜레마」에서 우리의 중요한 정치적 상식 혹은 편견 하나를 재고하기를 제안한다. 소수파인 진보 대통령이 지지를 얻으려면 정치적 반대파도 포용하는 통합적 어젠다가 아니라 지지 세력을 만족시키는 갈등적 어젠다를 수행해야 하고, 반대로 보수 대통령은 반대파를 포용하는 타협적 어젠다를 수행해야 한다고. 7년에 걸친 대통령 지지도 조사를 근거로 해 일독을 권할 만하다.

<문학동네> 73호, <창작과비평> 158호, <황해문화> 77호들은 우리시대가 보듬지 못하는 작은 사람들,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주목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조건’까지 사유한다. ‘신자유주의 15년, 인간의 조건’ 을 특집으로 내세운 <문학동네> 73호에서 이소연 문학평론가는「질문 2.0 : 무엇이 ‘인간’인가-상실 너머,‘ 인간’주체의 복원을 꿈꾸며」에서 가난, 불안, 고독 같은 나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장본인인 우리 자신이 게으르고 무력하기 때문이라는 비난은 거짓말이자 순전한 사기라고 말한다. 그는 경제적인 잣대로 인간을 평가함으로써 광범위한 탈인간화를 초래해 집단 상흔을 앓고 있는 이 시대에 상실된 사람들을 되살려내는 것의 가능 여부를 타진한다. 그리고 채무자로서 부채감, 죄책감을 안고 고통, 슬픔 상실에 노출돼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 취약성으로 인해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이유 없는 폭력’의 역사와 폭력의 산업화」에서 최근 빈발하는‘묻지 마 폭력’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인간 행동 중 하나라는 것과, 전 지구적인현상으로서 폭력의 산업화, 시장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창작과비평> 158호는 특집 ‘고달프고 억울한 사람들과 우리 시대의 문학 ’에서 최근 한국 문학이 사회현실을 작품화하는 방식과 함께 그 속에서 문학적 주체가 자신의 힘겹고 불안한 삶의 조건에 대응하는 양상을 문학적으로 고찰했다. 정홍수 문학평론가는「세상의 고통과 대면하는 소설의 자리」에서 오늘날 한국 소설에 내재한 현실 인식의 바탕에 다수가 배제되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김애란, 조해진, 공선옥의 소설에서 다수의 고통에 감응하고 공감하는 가운데 창조적인 소설언어가 탄생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여기 사람이 있었다: 르뽀, 죽음의 증언 그리고 삶을 위한 슬로건」에서 최근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는‘르뽀르따주’의 여러 작품을 분석하며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가 이전 시대의‘르뽀문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타자의 목소리에 깃든 욕망의 복잡성을 읽어내는 동시에 기록자의 자기연루를 끊임없이 윤리적으로 되묻는 장르로 진화했음을 읽어냈다.

잃어버린 노동·노동자를 찾아가는 시도

소설 주인공들의 현실대응을 분석한 글도 있다. 황정아 한림대 HK교수(현대영미소설)는「‘이미 와 있는 미래’의 소설적 주체들」에서 박민규, 김사과, 황정은의 소설에 나타난 주체들의 현실 대응을 분석했다. 황 교수는 세 작가의 작품에서 ‘사랑’과 ‘사람’이 처한 현실을 나름의 방식(긍정성의 폭력, 완전한 비존재를 의지하는 주체 등)으로 비판하고 그 미래를 좀 더 나은 방식으로 긍정하는 힘을 모색했다.

문학이란 프리즘을 통해 사람을 들여다본 <창작과비평>과는 달리, <황해문화> 77호는 노동자들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현장을 날 것의 느낌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집 ‘잃어버린 노동, 잊혀진 노동자를 찾아서’ 에서는, 인간이 아닌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자들이, 자긍심은커녕 인간의 존엄성마저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309일 동안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웠던 김진숙은「노동자, 그 부끄럽고 고단한 이름」에서,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이력을 돌아보며 노동자라는 이름이 부끄럽다가 슬프다가 자랑스럽다가 결국은 그 이름 아래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 놨다. 르포작가 연정은 「2012 대한민국, 노동자 다큐멘터리」에서 온갖 이유로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천789일째 농성중인 재능교육 방문 교사들, 기획부도와 복직명령 미이행으로 고통 받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현대자동차 사내 하청 노동자들, 서울시 다산콜센터 외주 하청노동자들, 국공립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외롭고 힘겨운 싸움들은 오늘의 한국사회가 과연 정상사회인가를 되묻고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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