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6:45 (토)
‘解職 20년’의 자전적 기록…그의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
‘解職 20년’의 자전적 기록…그의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2.05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태근 고려대 교수, 해직교수 경험 담은 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출간

강태근 고려대 교수
“이 소설은 자의 자화상이자,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 나는 한 광신도가 휘두른 광기의 칼날에 삶이 만신창이가 됐다. 법정에서, 국회에서, 거리에서…… 유신정권 때 정권 연장 수단으로 급조된 교수재임용법의 올가미에 걸려, 20년 동안 사투를 벌였다. 힘 있는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든 그 간교한 법 앞에서, 한없이 분노하고 절망했다. …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나는 나의 내부에서 스스로 뛰쳐나오려는 것을 살아 보려고 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던지’라고 한, 에밀 싱클레르의 개탄이 새삼 가슴을 친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인문학부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강태근 교수는 곡절 많은 교수 생활을 보냈다. 1992년 재직하고 있던 ㅎ대학에서 해직당한 후, 20년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내어 특별법을 제정하고, 재심에서 승소했다. 2008년 그는 고려대 비정년트렉으로 교양 강의 교수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 12월 강의를 끝으로 파란 많은 교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런 그가 최근 자신의 해직교수 시절을 중심에 두고 스산한 시대의 세태를 비판한 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문학나무 刊)을 출간했다. 그는 대학 2학년에 재학중에 소설가이자 은사인 황순원 교수의 문단 추천을 받았으나, 이를 사양하고 다양한 무크지 활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소설을 두고 그의 동학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경희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이렇게 발문을 붙였다. “미상불 이 투쟁의 기간을 통해, 그는 많은 것을 잃거나 유보 당했고 그만큼 심정적 고통도 극한의 지경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어쩌면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위의나 정신적 가치와 같은 덕목은, 그 체험이 없는 경우에 견주어 훨씬 큰 진전과 승급을 이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 새 얼굴을 보이는 장편소설 『잃은 사람들의 만찬』은 바로 이 사건에 대한 가슴 아픈 자전적 기록이다.”

이 소설을 예사롭지 않게 만드는 것은, 작가인 강 교수가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자전적 소설’이란 점이다. 작가는 ‘강청’이란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냈다. 이 작중인물이 작가와 완전하게 합치하지는 않더라도, 그는 분명 ‘절망의 터널’을 함께 건너왔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김종회 교수는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을 위한 카타르시스이자 작가의 오래 묵은 육성으로 유사한 사건들에 대해 환기하는 비판의 경종이다. 우리는 한 작가의 생애를 담은 이 소설적 서사를 유의 깊게 성찰해야 할 책무를 넘겨받은 셈이라”라고 지적한다.  

물론 이 소설적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인물은 강청의 아내와 강청의 처제인 ‘나’(나경은)다. 강청의 아내는 시골 여학교를 졸업하고 간호대학에 입학해 간호원이 되고, 다시 교사가 되고, 또 대학원에 진학해 대학 강단에까지 선 여성 인물이다. 이들을 통해 그려지는 강청은 소설 속에 반영된 해직교수의 비애를 짊어지고 살아야했던 작가의 또 다른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액자소설 형태로 구성된 이 소설에는 강 교수가 살았던 해직교수의 삶이 또 하나의 ‘이야기’로 스며들어 있다. 어떻게 자신이 몸담고 있던 기독교 대학이 자신을 해직시켰는지, 그리고 재임용 심사를 빌미로 어떤 비루한 요구를 했는지가 담담하게 ‘소설 속 소설’로 그려져 있다.

부처를 믿는 아비가 자신의 장례식을 불교식으로 해달라고 기독교 대학 교수로 있는 아들에게 부탁한다. 아들은 아비의 절박한 사정을 이해하고, 대학 학장과 목사에게 양해를 구하지만 이를 이유로 아들의 ‘신앙’은 의심받게 된다. 이후 대학에서 재임용 심사 시기가 됐다. 재임용 심사 전에 학장은 그를 불러 “이사장이 집으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빌면서 신앙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재임용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이사장을 찾아가보라”고 귀띔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앙적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현실의 단면을 그래도 보여주는 소설적 대목을 만날 수 있다. 잠시 한 장면을 엿보자.
“뭐가 문젠데? 특별법으로 승소하고 대법원까지 확정 판결이 났는데 또 무슨 절차가 남았어? 보상을 받는 재판 이외에?”
“언제 이 나라에서 힘없는 자에게 법의 혜택이 제대로 돌아온 적이 있었니? 법이 제대로 집행됐더라면, 니 형부가 세상에 절망하지 않았을 거고, 그렇게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았을 거야.”(『잃은 사람들의 만찬』, 57쪽)

작가인 강 교수는 해직이후 ‘해직교수 복직추진위원회 상임대표’로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실제 “소청위 인용결정에 상대 학교법인이 항소해 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까지 취소판결이 확정됐다. 3심제도의 법치국가에서 4심까지 승소하고도 법적 실효성이 부인된다면, 과연 이 나라에 법이 존재하는가. 정부가 존재하는가”라면서 <교수신문> 461호(2007.11.26.)에 「‘정신적 사형’의 고통 속에서」라는 글을 기고, 해직교수의 고통을 호소하는 한편 잘못된 법을 방치하고 재임용제도가 남용되도록 조장한 행정부를 질타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에 작가의 해직경험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강 교수가 추산하는 해직교수는 500여명에 이른다. 그래서 석궁 교수를 비롯, 불합리한 방식으로 해직에 이른 교수들의 삶을 불러내, 아픔의 공분모를 찾아내는가하면, 나라가 바른 길, 풍요 속의 빈곤이 아니라 정신적 투명성 속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강하게 나아가길 희망하는 애잔한 마음까지 담겨 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지난한 삶의 정체를 마주한 주인공 ‘나’는 이렇게 그려진다. “나는 흐린 눈으로, 아직도 거울 속에 머물러 있는 창밖의 봄을 바라보면서 속삭이듯이 중얼거린다. 「형부, 이 나라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건가요?」”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