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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대학에 銅像을 세우는 이유는?
그들이 대학에 銅像을 세우는 이유는?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12.03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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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한 나라의 국호를 두고 청문회가 열렸다. 발칸반도의 고립된 ‘대륙섬’ 마케도니아공화국(이하 마케도니아)이다. 인접국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국호가 자국의 역사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날 청문회는 양국 간의 국호 논쟁을 조정하는 자리였다.

소득 없는 청문회가 끝나고 석 달 후 마케도니아 정부는 수도 스코페 광장에 22미터 높이의 청동상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말을 탄 전사’. 전사의 얼굴은 다름 아닌 그리스가 숭상하는 영웅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무려 530만 유로(약 83억원)를 들였다. 마케도니아 정부는 30%가 넘는 실업률과 그에 따른 자국의 비판 여론 속에서도 청동상 제작을 강행했다. 당시 유럽의 외신들은 “마케도니아 정부가 알렉산더 대왕 동상으로 역사 논쟁에 쐐기를 박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마케도니아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했던 때가 1991년 9월. 그리스는 그해 12월 장관회의를 열고 국호를 바꿀 것을 요구하면서 그리스-마케도니아 분쟁이 시작됐다. 마케도니아가 누구의 것이냐는 일종의 ‘주인 다툼’이었다. 그리스가 현재의 마케도니아 지역을 그리스 영토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간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 무역 제재, 나토와 유럽연합 참여 배제, 대통령 전용기의 그리스 공항 착륙 금지 등 수많은 보복조치를 펼쳤다. 20여년 분쟁 끝에 마케도니아가 꺼내든 반격의 카드는 22미터짜리 동상이었다. 분쟁의 한 가운데 있던 알렉산더 대왕을 내세웠고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있는 동상보다 더 웅장하게 만들었다. 양국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 악화됐다.

동상은 정치적 지배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메리암이 지적했듯, 특정 인물의 동상은 그가 표방한 가치에 대한 집단의 일체감 혹은 소속의 좌표로 작동한다. 메리암은 이를 미란다(miranda) 혹은 ‘동일시의 상징’이라고 정의했다. 마케도니아 정부의 선택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알렉산더 대왕 동상을 통해 그리스를 압박하고, 마케도니아 구성원들에겐 강력한 결집을 요청한 것이다. 상징의 힘이다.

최근 한 지역사립 ㅊ대도 동상 건립을 둘러싸고 ‘주인 다툼’이 20년 만에 점화됐다. ㅊ대는 지난달 30일, ㄱ 전 이사장의 타계 1주기 추도식을 거행하면서 그의 전신 동상 제막식을 강행했다. ‘강행했다’는 건 잡음이 많았다는 말이다. 동문회가 주축이 된 전 이사장 추모사업회가 동상을 만들기로 한 때가 지난 6월이다. 추모사업회는 제작비를 재단이 보유한 7개 학교 구성원들에게 모금했다. 6개월만에 약 2억5천만원이 모였고, 동상 제작비로 2억원 가량을 썼다. 이 과정에서 교직원들에게 ‘직급별 할당’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총장은 학생식당 입찰업체에까지 모금에 나서 업체 관계자들의 뒷말을 낳기도 했다.

총장이 동상 건립을 서두른 이유는 뭘까. 학교 측은 동문회를 비롯, 뜻있는 인사들로부터 동상 건립이 자발적으로 추진됐다고 했지만 물 밑에선 전혀 다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ㅊ대 지분을 놓고 현 총장과 그의 사촌형제 사이의 ‘집안 다툼’이다. 실제로 동상 제막식을 앞두고 가장 극렬하게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 곳은 ‘설립자 후손들’이었다. ㄱ 전 이사장은 설립자의 셋째이자 막내아들이며, 설립자 후손들은 ㄱ 전 이사장 형제의 자식들이다. 현 총장은 ㄱ 전 이사장을 승계한 장남이다. 설립자 후손들은 제막식 4일 전인 지난달 26일, 지역신문에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골자는 이렇다. “전 이사장 타계 1주기에 설립자와 같은 크기의 전신상을 한 대학 안에 세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정관에 따라 설립자 자손인 우리도 이사회에 들어가겠다.”

설립자 후손들은 전 이사장이 타계한 지난해 말부터 줄기차게 이사회 참여를 요구했다. 총장이 이를 내치면서 사촌형제 간의 ㅊ대 소유권 공방이 시작됐다. 설립자 후손들이 법적 대응으로 협상의 수위를 높이자 총장은 다급해졌다. 누구로부터 시작됐건, ‘동상’은 반격의 기회였다. 제막식 전날까지도 설립자 후손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것은 전신상을 흉상으로 바꾸고 자리를 옮기라는 것이었다. 역시 상징의 힘이다.

결국 동상 제막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위치는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인 구 법과대학 광장이다. 총장이 전 이사장의 뒤를 잇는 적통이라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ㅊ대 설립자 손자들의 ‘주인 다툼’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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