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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과 쟁점] 역사학계·문화예술계, ‘친일파 청산’ 논의 확산
[동향과 쟁점] 역사학계·문화예술계, ‘친일파 청산’ 논의 확산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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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5:05:11
지난 1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혜화동 흥사단 3층 강단. 세미나가 열리고 있는 이 곳 강단은 한동안 숙연해졌다. 상지대 총장이자 원로 역사학자인 강만길 교수가 던진 발언때문이었다. “우리 역사학계는 친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청산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역사학계 내부를 질타했다. 올해로 역사학계에 입문한지 50년이 되는 강만길 교수는 이날 학술단체협의회가 마련한 2002년 하반기 정책토론회 ‘한국 근현대사 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운동의 필요성’에서 기조 강연을 맡아 이 같이 진단했다.

1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 민족문제연구소의 광복 57주년 기념 학술짐포지엄 ‘강요된 부역인가, 내재된 신념인가’의 기조 발제는 임헌영 중앙대 교수(국문학)가 맡았다. 미당 서정주의 친일 행위에 대한 문학계의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임교수는 발제문 ‘정신사적 측면에서 본 친일예술’을 통해 “예술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사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상사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정신사적 검증 방식을 제기했다.

지난 2월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친일파 7백8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추가 조사 및 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지만, 후속 사업은 일부 보수 집단과 세력의 거센 반발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김교빈 호서대 교수)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한상범 동국대 교수)가 던진 문제의식이 광복 57주년의 의미를 그나마 되돌아보게 한 것 같다. 과연, 우리 학계는 ‘친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청산했을까.

강만길 교수의 주장을 먼저 들어보자. 왜 역사학계가 친일 청산에 적극적이지 못했을까. 일제때 활동한 역사학자들은 해방후 친일 청산 의식도 자격도 미달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서 배운 해방후 1세대 역사학자들 역시 친일 문제를 다룰 상황이 아니었다. 일부 의식있는 학자들 선에서 ‘독립운동’ 전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을 뿐이다. 이들에게서 역사학을 배운 2세대 학자들에 이르러서야 친일문제에 눈길을 돌릴 수 있었고, 어느 정도 학문적 대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어느 1세대 역사학자의 고백

강교수가 제기한 학문적 성찰 방식은 독특하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친일파와 이들의 친일 논리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식적인 친일’에 무게를 실어 ‘친일 세력’을 ‘반민족세력’ 즉, 민족의 자주성을 부인한 세력으로 규정, 이에 대한 학문적 분석을 심화할 것을 주문했다. 예컨대, 구한말 귀족계층의 친일 논리를 분석할 경우, 이완용이나 신채호 둘 다 사회진화론을 수용했지만 결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이완용은 ‘패배주의적 사회진화론’에 섰고, 신채호는 망명의 길에 섰기 때문이다. 해방후 친일파의 변신은 더욱 복잡하며,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엄밀한 친일 논리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예술은 기교가 아니라 사상

그렇다면 문학계는? 태양을 좇아 살아갔다는 ‘終天順日派’ 서정주의 전력을 둘러싼 논쟁이 유난히 뜨거운 문학계다. 강만길 교수는 문학계가 이렇게 혼돈스러워하는 데는 기존의 문학적 업적평가가 사상적 기반 분석을 결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헌영 교수의 분석을 들어보자.

그가 예술을 두고 기교가 아니라 사상이라고 강조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문학계의 경우 “협의의 친일은 직접적인 친일 이데올로기를 담은 작품이지만, 광의의 친일 사상은 상징과 간접적인 친일 이념을 담은 것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성이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 반드시 사상적 기반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이광수의 경우를 보자. “(그의)친일이 언제부터였느냐는 연구에는 초기의 ‘사랑인가’란 단편부터라는 주장부터 후기인 1940년대론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사상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 춘원은 초기부터 이미 친일적 성향을 지녔고 독립운동을 지원할 사상적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임교수는 이 대목에서 이러한 판단에 내재해있는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이광수의 경우 “이미 ‘대구에서’라는 기행문이나 여러 글에서 춘원이 반민족적인 사념의 일단을 삐죽이 내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하게 된다.

‘친일문학의 자발성과 내적 논리’를 발표한 김재용 원광대 교수(국문학)에 이르면 논의는 더욱 선명해진다. 김교수는 친일문학을 ‘친일파시즘문학’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에게는 자발성과 그에 따른 내적 논리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정지용이나 김정한의 경우처럼 강요된 것에는 내적 논리가 없다. 반면 이광수나 서정주의 친일문학에는 자발성에 기초한 내적 논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 내적 논리는 심지어 ‘해방’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는 것. 친일파시즘문학을 행했던 문학가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는 흥분에 젖어 있었고, 지난 시절의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이러한 개안은 ‘해방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기존 친일문학 연구는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을까. 그것은 “이들 친일문학가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내적 논리의 실체를 재구성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하고 즉자적인 비판에 머물렀던 것이 주된 원인”이다. 김교수의 이런 문제의식이 발견한 친일문학의 내적 논리는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와 ‘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이다. 결국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반 지식인들의 친일이 가속화되면서, 문인들 역시 친일의 고삐를 풀고 만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친일문학은 그것이 대동아공영권의 전쟁 동원이든 내선일체의 황국신민화이든 결국 헛된 전망 속에서 식민주의와 파시즘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매우 폭력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작태”라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과거 청산의 맥락에서 분석 필요

학계가 날을 세운 친일 청산 문제는 넓게 볼 때 ‘과거 청산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와 역사’ 최근호가 특집으로 마련한 ‘과거 청산의 사회사’에 담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친일은 결국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독재와 군사정권을 경과하는 ‘역사적 과거’이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정근식 전남대 교수(사회학)가 제기한 ‘과거 청산의 역사사회학을 위하여’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과거 청산 문제는 민주주의로의 이행 문제이기도 하며, 사회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맥락에 따라 뒤틀리기도 한다. 정교수는 “식민지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를 오랫동안 경험한 사회일수록 과거 청산이 더 어려다”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는 청산이 계속적으로 지연되면서 끊임없이 청산돼야 할 ‘과거’가 누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본다면, 근래 역사학계와 문화예술계, 사회학계 일단에서 제기된 친일 청산 문제는 넓게는 과거 청산의 과제로,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로의 더 많은 이행을 위한 계기로 심화시켜 나갈 주제임이 분명하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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