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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친일청산, 어떤 논의들이 오갔나
[풍향계]친일청산, 어떤 논의들이 오갔나
  • 강창일 배재대 외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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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5:02:12
2002년 학술단체협의회 정책토론회의 주제는 ‘한국 근현대사 속의 친일의 의미와 친일파 청산운동의 필요성’, 민족문제연구소의 광복 57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주제는 ‘강요된 부역인가, 내재된 신념인가’였다. 친일 청산을 내건 학계의 목소리가 지리멸렬한 한국정치사에 어떤 긴장을 줄 것인지는 불투명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학계가 ‘친일’을 학문적 청산 대상으로 공고하게 다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어떤 논의들이 오갔을까. 발표자들의 주요 주장을 정리했다.

2002년 하반기 학술단체협의회 정책토론회

강창일 / 배재대·역사학

“30년대에 들어오면 식민지 관료, 군인, 전문기술직 등 테크노크라트군이 대대적으로 형성되는데, 이들은 이미 정신적으로 ‘황국신민’이 돼 있어서 이들에게서 민족의식이나 독립의지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은 전문기술을 가지고 새롭게 일제통치기구의 일익을 담당했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내선일체화’와 전쟁강제동원의 중추적인 핵심 세력으로, 혹은 아시아침략전쟁의 수행자로 활약했다. 그 길이 ‘입신출세’의 길이라고 확신하던 자들로 부일 협력이나 반민족행위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이 있을 리 없었다.” -‘친일파의 형성과 친일의 논리’에서

강정구/동국대·사회학

“특히 강조할 것은 대부분의 친일파 연구들이 친일파 청산의 실패를 우리 탓으로만, 곧 이승만 정권에게만 귀착시키는 심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 현상의 설명에서 최종 시점의 행위에만 주목하는 행위론적 설명에만 매달리고, 그러한 행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든 구조적 요인을, 곧 구조론적 설명을 등한히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이승만이 아니라 미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어떠한 우익정권이 들어섰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거의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점을 기존의 여구는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을 살펴보면 필리핀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친일 및 친식민 민족반역자의 청산은 실패했고, 그 요인은 바로 미국의 반동적인 점령정책에 기인됨을 알 수 있다.” -‘해방공간 남북한의 친일청산 실태와 문제점’에서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해방직후부터 친일청산을 반대하는 궤변들은 많다. 과거는 흘러갔다는 ‘망각론’이다. 당사자들도 다 죽었는데 친일파 청산은 궤변이라는 주장. 그 때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공범론’. 권력의 강제에 의해 친일했기 때문에 연약한 개인(범부)이 이를 감당하기엔 무리였다는 ‘범부피해론’,‘호구책론’이다. 서정주는 이를 해를 따라 살아가는 무지랭이인 ‘종천순일파’라고 자처했다. 자신들의 친일 행위를 민족의 선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의 희생자(순교자)’라는 주장. 한 때 친일했지만 민족에게 끼친 공로가 많으니, 한 때의 친일로 한 인간을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공과론’. 자기 직분에 충실했다는 ‘직분충실(희생)론’이 있다. 이제 와서 친일파 명단을 거론하는 것은, 죄 없는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며 연좌제의 부활이라는 ‘불이익(연좌제)론’. 또 친일청산은 양육강식의 세계화 시대에 민족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소모하는 불필요한 ‘소모론’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장 강력한 반론은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집단은 빨갱이라는 ‘빨갱이론’.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특정 정당의 총재를 음해하기 위한 정치적 모략과 결합된 ‘음해론’이 있다.” -‘분단 이후 친일파 청산 운동의 재개와 과제’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학술심포지엄

최열/가나아트 기획실장

“나는 친일 부역미술 행위 및 친일미술 창작을 판단함에 있어 어느 쪽이건 모두 인간, 사회, 윤리, 민족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각각 해당 항목마다 심각하고 광범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으나 그건 해당 분야 전문가의 몫이겠다. 다만 일제의 침략과 지배 과정에서 그들이 저지른 그 숱한 야만과 폭력의 범죄로 말미암아 파괴당한 인간과 인간성을 모든 기준의 절대치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예술은 인간 영혼의 거울이라고 하며, 작가는 인간 영혼의 기관사라고 비유한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영혼을 다루는 예술의 한 분야인 미술, 미술인, 미술계야말로 그 영혼의 담지자인 인간과 인간성의 추이에 관해 가장 엄격하고 철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인간성이 폭력으로 파괴되고 있다면 예술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친일미술 연구의 역사와 개념, 범주’에서

이효인/경희대·영화학

“발제자는 글머리에서 “현재 한국 영화의 문제점은 친일행위의 문제보다는 상업예술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세력 확장이 일차적인 문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면서, 친일 행위가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자문한 바 있다. 이런 자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지만, 상징적으로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다. 1960, 70년대 당시를 대표하던 한국 영화인들은 한 번도 정권의 탄압에 저항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의 정신적 주춧돌이 친일 영화인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영화계는 자본이 영화산업에 눈을 돌리기 이전까지, 소수의 젊은 영화인들이 개혁적인 행위를 하기 이전까지, 아무런 자기 문화 작동장치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영화계의 무분별할 정도의 상업적 획일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이러한 발전조차 더디게 된 정치적 원인은 친일 행위를 했던 영화인들이 한국 영화계를 주도했던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영화계 친일행위의 논리와 성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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