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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정부조직법 문제 제기한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제 5회 세미나
[학술대회] 정부조직법 문제 제기한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제 5회 세미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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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4:51:59
지난 9일 정부는 장대환 매일경제신문사 사장을 새로운 총리서리로 임명했다. 장상 전 총리서리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해 국무 총리 자리가 비워진지 9일 만의 결론이다. 총리서리제의 위헌성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법제발전연구소(소장 석종현 단국대 교수)는 지난 13일 서울 타워 호텔에서 ‘정부조직법의 문제점에 관한 공법적 검토’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해 법학계의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이 날 세미나에서는 총리서리제 외에도 정부조직법이 가지고 있는 위헌 요소를 지적해 관심을 모았다.

'사고’는 ‘궐위’로 해석해야

이날의 논점 역시 총리서리제 위헌 논란이었다. 신봉기 동아대 교수(법학과)는 ‘정부조직법의 법제적 검토’를 발표하면서 “정부조직법 22조 ‘국무총리가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의 순으로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라는 구절 중 사고를 ‘闕位’로 확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사고’의 사전적인 의미는 평시에 없던 뜻밖의 사건. 따라서 이것은 일반적으로 질병, 휴가, 해외출장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직무수행 불능상태를 의미한다. 김 교수는 “현재 정부는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 양자를 서로 다른 상황으로 파악해 부총리가 총리대행을 하지 않고 있다”며, ‘사고’의 개념을 확장해 ‘궐위’의 개념으로 확장해야 하고, 따라서 정부 조직법이 규정한 대로 부총리가 총리 직무대행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김중권 충북대 교수(법학과)는 ‘정부조직법의 최근의 문제점 검토’를 발표하면서 “사고의 의미를 넓게 보려는 입장도 나름의 논거를 갖지만, ‘사고’를 ‘궐위’까지 포함된 넒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하는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된 헌법 제 71조를 근거로 내세웠다. 김 교수의 주장은 “헌법 제 71조가 애써 표현상으로 ‘궐위’와 ‘사고’를 병렬적으로 규율한 점은 양자에 대한 구분된 효과를 부여하려는 입법자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것.

그러나 그는 “문제는 국무총리서리임명이나 서리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서리의 직무범위에 있다”며 “지금까지 이 문제를 헌법 그 자체의 위헌 합헌 여부에만 초점을 둬, 국무총리서리의 직무에 대한 법적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논의는 정부조직법의 위헌 여부로 확장됐다. 신봉기 교수는 “헌법은 국가의 중앙행정기관을 대통령,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행정각부, 감사원 등을 포함한 헌법기관 외에 헌법에서 정하지 않은 국가정보원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반해, 정부조직법은 ‘제 1장 총칙, 제 2장 대통령, 제 3장 국무총리, 제 4장 행정각부’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했다. 즉 행정각부의 설치, 조직과 구성, 직무범위를 규정하는 관한 법률인 ‘정부조직법’이 대통령과 국무총리에 관한 규정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런 요소는 정부조직법의 다른 부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며 정부조직법 논의의 시급함을 촉구했다.

문제 제기 불구, 변화 없는 관행

석종현 한국법제발전연구소장은 “왜 정부가 총리서리제를 고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위정자들이 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관행 혹은 편의에 따라 법을 이용하면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많은 행정법학자들이 총리서리제가 위헌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는 견해를 덧붙였다.

총리서리제가 위헌이라는 주장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1990년과 1992년 야당 총재시절에 총리서리제를 위헌이라 주장한 적이 있었다. 또한 1998년 7월 “김대중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국무총리서리와 감사원장서리를 임명한 것은 국회 및 국회의원의 동의권한 등을 침해한 것”이라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사건(98헌라1·2)에서 헌법재판소가 각하결정을 내려 판단을 유보한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관행을 고집하는 가운데, 학계의 의견이 어느 정도나 수렴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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