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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헐의 「바벨탑」과 '귀신이 곡한' 이유
브뤼헐의 「바벨탑」과 '귀신이 곡한' 이유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2.11.26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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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27) 안트베르펜에서

 

벨기에 최고의 고딕양식 노트르담 대성당(왼쪽 뒤편)과 루벤스 동상(왼쪽 앞). 사진=최재목
아름다운 驛舍를 뒤돌아보며, 한참 안트베르펜 시내로 걸어들어 간다. 안트베르펜, 영어로는 앤트워프, 프랑스어로는 앙베르. 브뤼셀 북쪽, 북해에서 가까운 스헬데강 河口 右岸에 위치한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 유럽 4대 무역항의 하나이다. 15세기 후반 이후 부근에 발달한 모직물과 무역의 번성으로, 과거 브뤼헤가 누렸던 영광을 껴안는다. 

안트베르펜의 주요 관광지는 역에 내려서 스헬데강 쪽을 향해 걷다보면 그 직선 코스에 거의 인접해 있다. 놀랄 만한 일은 역 주변을 비롯 시내 각처엔 1천600여개의 다이아몬드 매매 업체가 있고, 여기서 세계 다이아몬드의 약 60%가 거래된다는 사실. 하지만 내 머리 속엔 엉뚱하게도,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는 다이아몬드 수트라(金剛經) 생각 뿐. 빈센트는 벨기에와 인연이 많았던 빈센트 반 고흐는 이곳으로 오기 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지. 인생은 나그네고, 모든 건 허망하다고. ‘나는 언제나 자신을 어딘가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하나의 나그네라고 느낀다.(…)나는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꿈에 불과하고, 자신이라는 것도 전혀 없었던 것을 알고 있다.’(1888년 8월 6일)

길을 걸어보면 안다. 길에도 혈관이 있고, 근육이 있고, 뼈가 있고, 모공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촘촘히 느끼며 걷는다. 그럴수록 길은 살아있다. 이곳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낯선 곳에 첫발을 디디는 나에게, 그런 초심자의 눈동자에만 잠시, 스치듯, 도시는 자신의 옆얼굴, 눈빛, 빛나는 이마를, 아니 누드를 보여준다. 이것은, 소리 없는 나와 도시의 깊은 대화다. 이런 방식이니, 나는 어딜 가든, 뭘 하든, 늘 에돌아서 가기마련. 바로 빨리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한참을 이리저리 빙빙 멀찍이 돌다가, 더디게, 느지막이 닿을 곳에 가 닿는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그림 「그리스도 강림」
내 생각의 발가락 또한 千足이 된다. 길의 미세한 저면에, 사물의 각 모서리에, 다양한 장르에, 푹푹 빠져 닿으며, 한 발자국씩 천천히 전진한다. 칼 쇼르스케의『비엔나-천재들의 붉은 노을』(김병화 옮김, 24쪽)에 나오는 ‘post-holing’처럼, ‘눈밭에 허리춤까지 푹푹 빠지는 발을 한 발 한 발 끌어당기면서 걸음을 옮기는 전진 방식’ 말이다. 그렇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말처럼,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김화영 옮김,『걷기 예찬』, 9쪽)

 어느새, 나는 벨기에 최고의 고딕양식 노트르담 대성당(일명 ‘성모마리아대성당’)에 닿는다. 123m의 첨탑. 벨기에에서 가장 높다. 꼭 이 도시 往年의 영광을 보여주는 콧대 같다. 1352년에 설계, 공사가 시작돼 230여년에 걸쳐 완성됐다는 성당. 그 안에는 위다의 소설『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다던 루벤스의 걸작품『그리스도降臨』을 포함한 祭壇畵 다섯 작품이 장식돼 있다. 이 가운데 『聖母昇天』은 무료였지만, 당시 불만스럽게도『그리스도降臨』과 『그리스도昇臨』은 유료였단다.

 

농민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안트베르펜에 머물며 그린 「큰 바벨탑」(1563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우뚝 솟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는 순간, 내 머리 속엔 네덜란드 태생 농민화가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이 이곳에 머물며 그린 바벨탑 그림 두 점이 떠오른다.「큰 바벨탑」(1563)과「작은 바벨탑」(1558~1568). 이 탑의 배경이 된 16세기의 안트베르펜은 금융 및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로, 브뤼셀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였다. 1,569년 당시 이곳 인구가 9만 명이었다는데, 화가가 250명 중 한명 꼴이었다니 화가가 많던 도시였다.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기가 참 힘들었겠다. 오죽했으면 브뤼헐은, 무역의 젖줄 스헬데강 가에 그렇게 한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던, 그러나 곧 허물어지고 마는 바벨탑을 그려 인간의 욕망을 조롱했을까.

브뤼헐의 그림 바벨탑은『구약성서』「창세기」11장 1~9절의 내용에 근거한다. 인간들이 하늘에 이르고자 탑을 쌓기 시작했는데, 신은 그 과도한 야망을 우려해, 인간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언어를 혼돈 시키고 사람들을 각처로 분산시켰다는 것. 이쯤에서 중국『淮南子』「本經訓」의 이야기를 놓칠 순 없다. 태고의 皇帝 적에, 蒼頡이 글(書)을 만들자 하늘(天)은 백성들이 이런 지엽적인 일에 몰두해 농사를 소홀히 하여 굶어죽을까 걱정해 좁쌀(粟)을 비로 내려 보냈고, 귀신(鬼)은 문자로 인해 질책 받거나 인간들이 진실로부터 멀어져 말단의 허위에 골몰해 굶주릴까봐 밤새 슬피 울었다는 내용.

그렇다. 화폐든, 문자든, 그림이든 모두 세상의 온갖 숨은 넋과 얼을 세상 밖으로 들춰내 멋진 인간 세계를 건설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결국 그것은, 이 세계의 얼을 빼놓고 넋을 나가게 하여, 숱한 악귀가 배회하도록 해 아수라장을 만들어놓은 거. 루벤스든 브뤼헐이든, 프랑드르의 그림 앞에서 나는 ‘귀신이 哭한’ 이유를 생각해본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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