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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안인이었지만 유태인 도왔던 학문적 동반자
아리안인이었지만 유태인 도왔던 학문적 동반자
  • 양재현 인하대·수학통계학부
  • 승인 2012.11.20 2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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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야기 10. 헤르만 바일과 칼 루드비히 지겔

돈독한 선후배관계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동료로서 20세기 전반에 세계 수학계에서 큰 활약을 했던 두 위대한 독일 수학자 헤르만 바일(1885∼1955)과 칼 루드비히 지겔(1896∼1981)과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바일은 괴팅겐대학의 지겔의 11년 선배이며 위대한 수학자 힐베르트(1862∼1943)의 수제자이고, 지겔은유태인 수학자 란다우(1877∼1938)의 제자이다. 바일과 지겔의 연구 분야는 달랐지만, 각자의 연구 결과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며 평을 할 정도로 좋은 관계를 평생 유지했다.

1933년 나치정권은 유태인을 탄압하며 공직사회와 대학사회에서 추방하자, 부인이 유태인이었던 바일은 미국으로 망명해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이하 IAS)의 교수로 초빙됐다. 미혼인 지겔은 1938년에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괴팅겐대로 이직해 2년간 교수직을 수행하다가 1940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실은 그의 지도교수인 란다우가 1938년에 세상을 떠나고, 나치정권에 동조하며 협력하는 수학교수들과 관계가 매우 나빠서 연구할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결국 1940년에 지겔은 굳은 결심을 하고 모든 짐을 남겨두고 맨몸으로 노르웨이를 경유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바일의 배려로 지겔은 1934∼1935년, IAS에서 연구했으며 1945년에 교수로 임명됐다.  

1940년대는 IAS에서 바일과 지겔이 세미나를 정규적으로 개최하며 세계 수학계를 이끌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4년에 필즈상을 수상한 일본 수학자 코다이라(1915∼1997)는 1949년에 IAS에 초청되어 바일과 지겔의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그들의 강의를 꾸준히 청강했다. 코다이라는 바일과 지겔을 존경했다. 코다이라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겔을 대(大)선생님이라고 적고 있다.

바일은 수학 이외에도 철학, 문학, 음악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지겔은 경제학자인 모겐스턴(1902∼1977),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엘리엇(1888∼1965),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르 슈나벨(1882∼1951)과 자주 만나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한 번은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칼 야스퍼스(1883∼1969)를 방문해 현대물리학과 실존주의의 관계에 대해 그의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2시간 이상 심각한 토론을 벌인 적도 있다. 바일은 매우
정직한 성품을 지녔으며 자신의 생각을 마음속에만 품어두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리만면의 개념』, 『공간, 시간, 물질』, 『군론과 양자역학』, 『고전군』등의 불멸의 명저를 저술했고, 많은 뛰어난 논문을 발표했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는 부르바키 학파와 미국의 젊은 수학자들에 의해 대수기하학, 미분기하학, 미분위상수학 등의 분야가 빠른 속도로 발전돼 수학의 양상과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 바일과 지겔은 추상적인
이론을 중시하는 수학을 혐오했다. 지겔은 특히 랑(Serge Lang)의 연구의 방향과 저서들을 평가 절하했다.

1951년에 바일은 IAS에서 정년퇴임하고 스위스로 돌아가 프린스턴과 취리히를 오가며 생활을 했으며, 그 해에 지겔도 괴팅겐대의 교수로 초빙돼 독일 수학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지겔은 모저(1928∼1999)와 같
은 뛰어난 제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지겔은 휴가 때는 바일이 사는 스위스 로카르노에 가서 바일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1955년 바일이 별세했을 때 지겔은 매우 비통해하며 슬퍼했다. 왜냐하
면 친형님 같은 대선배이자 학문적 동료학자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지겔은 해석적 정수론, 이차형식, 보형함수, 삼체문제 등의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냈으며 여러 편의 명저를 저술했다. 그는 인도의 Tata 연구소에 여러 차례 초청돼 집중강연을 해 강의록을 발간하기도 했
다. 1966년에는 후배 수학자 마쓰(1911∼1992)가 지겔의 논문을 모두 수집·편집해 스프링거 출판사를 통해 지겔 논문집 3권을 출간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제자, 후배 수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서 매우 엄숙하게
치러졌다. 그는 괴팅겐 시가 관장하고 있는 시립묘지에 안장됐다. 시립묘지에는 힐베르트 가족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플랑크(1858∼1947)의 가족묘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오토 한(1879∼1968)의 가족묘
도 있다.

바일과 지겔은 수 십 년간 선후배 관계뿐만 아니라, 학문,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았다. 두 거인은 순수 아리안인 독일인이었지만 유태인
을 감싸며 최선을 다해 도와줬다. 또한 두 사람은 나치정권에 반대 입장을 취했고 전쟁을 매우 혐오했다. 두 거인은 20세기 수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현대 수학자들이 바일과 지겔의 수학을 기반으로 수학
발전에 힘쓰고 있다.


양재현 인하대·수학통계학부
필자는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하버드대, 막스플랑크수학연구소 등에서 초청교수를 지냈다. 『소수의 아름다움』, 『20세기수학자들과의만남』등의저서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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