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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기초과학·자연사 박물관을 건립하자
[제언]기초과학·자연사 박물관을 건립하자
  • 교수신문
  • 승인 2002.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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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6 14:30:16
이병훈 / 전북대 명예교수·생물학

한국의 축구가 세계 4위의 신화를 이룩한 것은 가히 우리 역사에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나는 평소에 동양사람은 서양인에 비해 몸집과 체력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같은 조건으로 경기한다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희생양이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수들에 대한 과학적인 훈련과 전국민의 열화 같은 응원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마침내 4강을 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통쾌감, 그 일체감은 우리로 하여금 국가와 국민의식을 한꺼번에 일깨우고 분출시켰다. 도처에서 이번을 계기로 대한민국을 1등 국가로 만들자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젠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히딩크가 말한 것처럼 발로 찬다는 것은 본능적인 동작이다. 노벨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의 본능으로서 먹기, 섹스, 공격성 그리고 도망가기를 들었다. 바로 생물이 살아가고 자손을 남기는데 불가결한 4대 요소이고, 그에 따르면 모든 운동경기는 공격성의 승화된 게임일 뿐이다. 권투에서 상대에 펀치를 날리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통쾌함을 느낀다. 심지어 학교에서 일어나는 집단폭력에서도 폭행한 아이는 상대를 때리면서 쾌감을 느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인류의 조상 때부터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압하여 먹이와 주거지를 확보하고 또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여자를 탈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공격행동은 필수불가결의 생존전략으로 선택돼 우리 유전자 안에 남게됐다. 게다가 먹이사냥에서 큰 동물을 잡기 위해서 원시인들은 집단사냥을 해야 했다. 늑대나 아프리카의 리카온처럼 몰이꾼과 공격조가 편성돼 사냥감을 길목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전술을 진화시켰다. 이에 따라 발달한 것이 절묘한 팀플레이다. 이러한 집단적 팀플레이는 가까운 혈연자와 씨족을 살리는 이타주의 행동이 됐고, 이는 곧 부족을 위하고 민족을 구하는 애국 애족의 모태가 됐다.

한 인류학자가 서기 275년부터 1025년 사이 750년간 유럽 11개국의 역사를 살펴보니, 독일에선 28%를, 스페인에서는 67%를 전쟁으로 보내 평균 절반을 싸움하는데 소비했다고 한다. 그 후 십자군 전쟁과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 나치의 6백만 학살과 크메루 루주의 2백만 살육 그리고 오늘날의 유고, 중동, 남아프리카, 북아일랜드 등 도처에서 일어나는 지역 분쟁을 보면 전쟁과 살인 그리고 팀 플레이는 분명 우리 안에 정착한 원시시대의 유산인 것 같다. 바로 이긴자 즉 전쟁과 팀플레이를 잘 하는 자가 살아남고 역사를 점철해왔다는 것을 지난날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굳이 축구를 폄하하고 모처럼의 국민의 부푼 기대에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 아니다. 월드컵도 지난지 한 달이 넘었으니 이러한 흥분과 승리감에서 벗어나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러한 원초적 본능에 입각한 운동경기에만 빠져있을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잡아야 할 방향감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바로 문화와 환경이다. 문화의 정의에는 1백5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공통분모는 ‘인간은 문화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긴 하나 크게 보아 지당한 말이다. 한국이 문화와 환경에서 OECD 국가 중에 꼴찌라는 것은 두루 알려져 있다. 얼마 전 만해도 이맘때면 신문사들은 일본으로 떠나는 과학캠프를 모집하였다. 국내에 볼 것이 없어 일본의 자연과학박물관, 수족관을 보러 가는 것이다. 지난 봄부터 6월까지 일본의 한 자연사박물관에서는 한·일 월드컵을 맞아 ‘한반도의 자연사’라는 특별 기획전을 열어 대 성황을 이루었다.

일본은 축구에서 16강에 머물렀지만 문화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다. 우리가 4강에 올랐으니 일본이 배 아플 것이라는 것만 생각치 말고 일본이 문화적으로 앞섰고 그래서 우리가 못하는 한국의 자연 전시회까지 여니 오히려 우리가 배아파해야 한다. 우리는 바로 문화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도서관, 박물관에서 형편이 없다.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고 자랑하고 뽐내지만 월드컵 기간 중 그렇게도 많이 찾아온 외국손님에게 우리의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을 설명하고 보여줄 장소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1조원이 들어간 새만금 사업에는 어떤 보장도 없이 앞으로 1조원 투자를 마다 않고 있다. 쌀은 남아서 창고에서 묵어 동물사료로 돌리겠다고 한다. 이 무슨 해괴한 어거지인가.

우리는 기초과학과 자연에 관한 박물관을 많이 지어야 한다. 그리고 운동경기에서 세계 첫째 보다 생활체육을 강화하여 국민의 건강증진에 힘써야 한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함께 자연유산을 지키고 생명과 환경을 아낄 때 세계는 진정 우리를 선진국민으로 존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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