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5:25 (금)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파리 병’에 빠져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파리 병’에 빠져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2.11.19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센델의 ‘정의론’ 무엇이 문제인가

 

▲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자유주의적 정의-샌델의 정의 담론 비판』(조선대출판부 刊)은 정의에 대한 샌델의 담론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동기에서 제작됐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는 샌델의 오류는 정의의 기준을 응분(desert)으로 보고 그 응분의 기초가 항상 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점에서의 오류다. 응분이라는 말이 사용돼 이뤄지는 주장은 대개의 경우 ‘A는 C 때문에 B를 응당 받을 만하다’(A deserves B in virtue of C)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때 응분의 기초에 해당하는 C는 분배되는 가치인 B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다른 것이 된다. 예를 들면 장학금을 나눠주는 경우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이 응분의 기초가 될 수 있다면, 대학 입학자격을 주는 경우에는 수능성적이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는 응분의 개념 상 응분의 기초가 항상 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생각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지위를 분배할 경우에는 덕이 응분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준을 재산의 분배에 적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샌델은 재산이 문제가 되든 정치적 지위가 문제가 되든 어느 경우에나 항상 덕이 응분의 기초가 돼야 하는 것으로 본다.

애매모호한 덕의 정의론
덕을 중시하는 샌델의 정의 담론은 또한 ‘덕’(virtue)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다양한 의미들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덕’이라는 말은 탁월성(excellence)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도덕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시민의 덕(civic virtue)의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며 사회적 덕(social virtue)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샌델은 덕이 갖는 이러한 다양한 의미들을 구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의미에서의 덕을 동일한 것처럼 취급한다. 그렇기 때문에 덕의 정의론으로 그가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책은 덕 이외에도 샌델이 옳음의 우선성과 권리의 우선성을 구별하지 않은 점, 그리고 도덕과 정의의 관계에 대한 견해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한 의미들을 혼동하면서 그러한 개념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경우 그것은 해결이 불가능한 거짓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 책은 그러한 이유에서 샌델의 정의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갈 경우 자칫 샌델과 함께 비트겐슈타인의 파리 병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거짓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철학자들을 파리 병에 빠진 파리들에 비유했다. 이 책은 또한 덕이나 탁월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사회적 기여와는 관계없이 명예와 지위로 보답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 견해가 갖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왜냐하면 그 견해는 단순히 엘리트에 의한 정치를 옹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엘리트를 위한 정치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샌델은 대합입학자격을 논의하면서 덕이나 탁월한 자질은 사회적 필요와는 관계없이 독립적인 기준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며, 그것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그들의 기여와는 관계없이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예와 높은 지위로써 보답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샌델에 의해서 우리 사회가 정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기에 우리는 샌델을 정의의 전도사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정작 정의가 사회의 최고의 덕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법을 위반하거나 보편적인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 될지라도 가족애나 애향심에서 나오는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일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한다. 공동체적 도덕에 대한 그러한 샌델의 강조는,특히 공정한 경쟁이나 준법정신 그리고 자신과 다른 종교와 사상을 지닌 사람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관용의 덕과 같이 자유주의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시민의 덕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많다.

아테네의 프라타고라스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적 덕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는 위장전입이나 서류위조를 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등 시정해야 할 많은 행위들이 샌델의 견해에서는 오히려 장려될 수도 있다. 필자는 최소한의 도덕으로서의 정의는 언제나 도덕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결코 진정한 도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샌델의 견해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정의가 무엇이고 중요한 정의의 문제들에 대한 자유주의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책의 전체 내용은 주로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체계적이고 분명한 견해를 제시하는 데 맞춰졌다.

정의의 개념과 중요한 정의의 문제들에 대해 이해가능하고 명확한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정의에 대한 사유에서 유익한 참고점을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최소한의 목적이다. 필자가 이 책을 통해서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샌델이 정의와 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목적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샌델은 덕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가장 비싼 수업료를 받고 아테네에서 덕에 대해 강의했던 프로타고라스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대학의 교수이며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샌델에 대해 대한민국의 한 지방대 무명 교수가 가하는 공격은 어떤 점에서는 고대의 아테네에서 저명한 외국인 교수인 프로타고라스에게 ‘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감행한 젊은 소크라테스의 도전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물론 그러한 비유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샌델의 견해가 틀렸다는 이 책의 주장이 성립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염수균 조선대·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서양고전철학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롤스의 민주적 자유주의』, 번역서로 『자유주의적 평등』, 『법과 권리』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