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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이 이끌고 조직하는 차이들의 질서
모방이 이끌고 조직하는 차이들의 질서
  • 교수신문
  • 승인 2012.11.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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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가브리엘 타르드 지음, 『모방의 법칙』 이상률 옮김┃문예출판사┃568쪽┃28,000원

잊힌 사회학자이자 부활하는 사상가인 장 가브리엘 타르드(Jean Gabriel Tarde :1843~1904)의 대표작인 『모방의 법칙』은 어떤 점에서 흥미를 끄는가. 가브리엘 타르드는 모방을 소비적이고 부차적인 현상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일차적인 원리로 승격시킨다. 모방이 어떻게 개인들에 앞서서 그들의 믿음과 욕망, 사고와 관계망을 이끌고 긍정적인 질서를 구성하는지를 제시한다(조금 과장하자면 “태초에 모방-반복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것을 창조와 유일성의 신화에 대한 적절한 수정을 제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방은 발명과 창조의 하인이 아니라 드물고 모험적이고 쉽게 버림받는 주인을 선택하고 변형하면서 개인들을 이끄는 습관과 유행을 정착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타르드가 모방을 앞세워 던지는 질문들은 사회학이 (뒤르켐처럼) 개인들에게 외적이고 집합적 의식으로 객관화된 ‘사회적인 것’, 또는 사회 구조를 통해서 개인들의 미시적 삶과 운동,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 영향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에 관한 것이다. 그는 사회가 개인들에게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모방과 암시로 조밀하게 직조된 정신적 상호관계망은 아닌지를 질문한다. 그는 사회적 규칙성을 가능하게 하는 반복(-대립-적응)의 원리를 바탕으로 삼아서 범죄심리학, 사회심리학, 사회 고고학-통계학, 여론 이론, 경제 심리학 등에 관해서 새롭게 질문한다. 또한 그는 사회학자로 변신한 라이프니츠로서 근대 과학이 발견한 무한소, 소립자의 존재론으로 왜 사회가 모방 공동체로 조직되는지, 최소 실체인 모나드와 그것들의 집합체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일반 원리는 없는지를 질문한다.

들뢰즈와 새로운 라이프니츠주의자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의 각주들에서 타르드가 보편적 반복의 이론가이자, 반복을 자연과 사회의 일반 원리로 제시한 자연철학자이고, 모나드들의 사회학을 제안한 새로운 라이프니츠주의자라고 평가한다. 그는 타르드가 기존 사회학, 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비인격적 소여’나 ‘위대한 인간들이 창조한 이념’ 사이에서 추상적 논의 머물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대수롭지 않은 관념들, 대단치 않은 발명들, 모방적 흐름들의 상호간섭”으로 차이의 질서를 설명하는 점에 주목한다. 반복은 미시적 차이들을 모으고 통합하면서 (차이로 조직되는) 한 질서에서 또 다른 질서로 이행하는 과정,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반복, 대립, 적응의 범주와 그 관계를 해명하는 점에 주목한다(이때 적응은 반복하는 흐름들이 상위의 반복으로 교차, 통합되는 것이고, 모방은 발명을 반복하고, 재생산은 변이를 반복하는 것이고, (적분이 미분소들을 합하는 것처럼) 합산은 변별적 차이소의 반복이다). 이처럼 타르드는 반복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차이와 반복의 변증법으로 미시 사회학을 구축한다. “사회는 모방이며, 모방은 일종의 최면상태이다”라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에서 시작해보자.

인간들 간의 사회적 관계에 주목하는 타드르는 사회를 모방하는 사람들의 집단(똑같은 본보기를 모방했기 때문에 공통된 특징으로 유사해진 집단)으로 정의한다. 이런 사회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모방하면서 형성되는 결합체(association)이다. 그리고 이런 모방은 암시작용, 암시모방(la suggestion-imitation)에 따른 일종의 최면상태에 빠진다.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의 정신들, 의지들 간의 일치는 모방-암시의 산물이다. 암시에 따라서 조직된 사회상태는 (최면상태와 마찬가지로) ‘꿈의 한 형식’, 곧 ‘조종된 꿈이며 활동하는 꿈’이다. 개인들은 암시된 관념들에 따르면서도 자발적이라고 믿고, 자동인형이면서 자율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의식과 행동의 수준에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지만 모방의 효과라고 할 수 있는 개인들의 관계망에서 “나는 모방하는 곳에서 생각하지 않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모방한다.” 이런 사회 상태는 출발점에서 본보기가 되는 한 사람과 그것을 모방하는 자의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시작된다. 처음 아버지와 자식 간의 일방적이며 비가역적인 관계에서 시작된다.

 

▲ Alexey Tarasovich Markov(1802~1878), Fortuna and a Beggar, 1836.가브리엘 타르드는 풍요의 뿔을 든 이 고대 로마의 운명의 여신(Fortune)이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조각가 중 한 사람인 부팔루스(Bupalus)가 처음 생각해낸 것임을 환기하면서, 이 상상력을 통한 모방을 발견해내는 것이 고고학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최초의 주인, 일차적 본보기이다. 이 지도자-아버지는 집안 최고 어른의 권위, 위세(prestige)를 통해 매혹하는 자다. 조상, 예언자, 정치지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도자들은 위세를 지닌 자이므로 복종과 모방이 자발적으로 생긴다. 위세를 지닌 자에게 욕망과 믿음의 힘이 집중되는 것은 (공포와 속임수가 아니라) 매혹(fascination)에 따른 효과이다. 이런 현상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암시상태에 있는 사람이 그 자신이 매개체(m、edium)가 될 정도로 모방을 거듭해서 제3자를 매혹하고, 제3자가 그를 모방하는 상호모방의 연쇄를 이룬다.

독특한 논리 전개를 따라간 성실한 번역
타르드는 모방이 발명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다양한 예들을 제시한다. 과거를 본보기로 삼는 ‘관습’ 모방과 동시대인의 혁신이나 외국의 것을 따르는 ‘유행’ 모방을 비교하면, 전자는 “오래된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여기고 전통, 습속, 문화적 유산을 자랑하고 후자는 현재를 중시하고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라고 본다. 인류 초기 집단은 아버지(조상)의 지배 하에서 권위자와 전통을 존중하므로 관습모방이 지배적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외부 접촉이 늘어나면 점차 유행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성직자나 조상보다는 동시대 혁신자의 말을 믿는 경향이 우세하다. 하지만 습관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더라도 다시 새로운 관습의 굴레에 떨어진다. 물론 관습모방이 유행모방을 거쳐서 새로운 관습모방으로 이어질 때 새로운 관습은 폭과 깊이에서 훨씬 더 크고 반대 성격을 띠기도 한다는 점에서 ‘다르게’ 반복된다. 이처럼 타르드는 전통적 사고인 창조-발명과 모방의 이항대립에서 창조에 부여된 특권과 모방에 대한 폄하를 수정할 뿐만 아니라, 발명 자체가 모방의 연쇄 가운데 한 항임을 밝힌다.

모방의 논리는 사회-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고, 모방과 적응의 논리가 반복을 통한 차이, 차이들을 낳는 반복을 조직하는 점에서 모든 현상들의 운동을 이끈다. 『모방의 법칙』은 자연, 생명, 사회와 역사를 아우르면서 다채로운 예들을 제시하고 독특한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쉽게 읽히거나 한 눈에 들어오기 어려운 편이다. 역자는 전문 번역가로서 성실한 번역의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낯선’ 타르드의 사고를 안내하는 해설을 덧붙인다. 저자의 논의를 적절하게 정리하면서 관련논쟁과 영향사를 소개하므로 읽다가 길을 잃었을 때 참조하거나, 본문 읽기에 앞서서 먼저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양운덕 철학자
필자는 고려대에서 헤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실 ‘필로소피아’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철학과 문학의 고전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하고 있다. 『보르헤스의 지팡이』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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