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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연구자 10명 키우는 게 목표”
“세계적 연구자 10명 키우는 게 목표”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2.11.19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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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엄구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

“훌륭한 연구자를 뽑아서 좋은 연구를 많이 하는 것만이 해외지역연구소의 역할일까요? 유라시아 지역은 제가 소장을 맡았던 2006년 초만 해도 국내에 전문가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세계적 연구자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있는 10명의 전임 연구원(HK교수 5명, HK연구교수 5명)이 세계적 연구자가 되면 연구소도 자연스레 세계적 연구소가 되지 않겠어요.”

1970년대부터의 역사를 담은 기념사진 앞에 엄구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소장(국제학대학원). ⓒ권형진 기자

인문한국(HK) 사업 10년이 끝났을 때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의 비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엄구호 소장(52세, 국제학대학원·사진)의 답은 다소 남달랐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이미 중국, 러시아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공산권 연구에서 1세대 연구자 양성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74년 중소연구소로 문을 열어 지금까지 배출한 연구자만 100명이 넘는다.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와는 공식 수교 이전인 1988년부터 해마다 공동 학술회의를 열고 있다. 1977년 창간한 학술지 <중소연구>는 세계 80여 국가에 나간다.

설립 이후 중국과 러시아 연구에 집중하던 중소연구소는 1997년 아태지역연구센터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 차례 전환기를 맞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러·미·일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던 시기여서 좀더 확대된 연구가 필요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다시 한 번 지역적 범위를 중앙아시아 등 내륙 유라시아로 확대했다.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 12개국뿐 아니라 인도, 몽골까지 포함한다. 대신 중국지역 연구는 따로 연구소를 독립시켰다. 연구 지역의 범위를 이렇게 확대한 데는 해외지역연구소로서 나름의 소명의식도 크게 작용했다.

“중앙아시아가 에너지 개발 등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학문적 차원에서는 일종의 ‘블랙박스’ 예요. 중국이나 러시아를 하나의 큰 나라로만 생각한 거시적 연구만 있지 미시적 담론에 대한 연구는 안 돼 있습니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지역의 블랙박스를 열고 들어가 우리가 학문적 토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글로벌 코리아라고 하지만 미국, 일본 등 해양세력과의 동맹이 중심입니다. 국가의 새로운 미래는 대륙에 있다고 봅니다. 그 대륙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우리가 최소한 학문적 토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는 어젠다와 관련된 연구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역 연구자나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에 뛰어들어 중앙아시아 지역 공무원 교육을 맡고 있다. 러시아 극동연방대, 카자흐스탄국립대, 사할린국립대와 실시간 온라인 강좌인 e-School을 운영한다. 돈 안 되는 러시아·유라시아 영화제와 시민강좌, 러시아유학생포럼 조직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권형진 기자

“지역 연구는 교육과 연구가 함께 가야한다” 는 소신 때문이다. 엄 소장은 “러시아, 유라시아 지역은 분명 중요한 나라인데도 그런 지역이 있다는 인식만 하고 있을 뿐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지는 않습니다. 뭔가 모르는 反러시아 감정을 거둬들이고 러시아, 유라시아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 생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라고 강조했다.

ODA 사업과 국가포럼, e-School 운영은 연구소의 자생력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올해 우리 연구소의 연구비 수주액이 HK사업 8억여원을 포함해 총 17억원입니다. HK사업을 기반으로 대학 수준을 벗어나는 연구소로 자립하는 게 목표입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ODA사업이나 e-School에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 ODA의 경우 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공무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현지에 교육센터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컨설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연구소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역 연구자나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연구와 함께 꼭 가져가야 하는 것이고요.”

‘블랙박스’ 로 불리던 지역들의 연구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도 착실히 이뤄가고 있다. 유라시아 연구자들을 위한 데이터베이스인 EURIS는 정치·경제·사회, 역사·종교·민속, 언어·문학·문화 등 3개 분야에 걸쳐 11개 DB 구축을 마쳤다. 2017년까지 30개 DB를 구축할 계획이다. 2010년 1월 창간한 러시아·유라시아 지역연구 전문 영문국제학술지 <Journal of Eurasian Studies(JES)>는 SCOPUS에 등재됐고, SSCI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미국 슬라브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아태지역연구센터가 독립 패널을 구성한다.

엄 소장은 “저를 비롯해 전임연구원들이 적어도 2년에 한 편 이상은 SSCI논문을 쓰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저널 잘 키워서 SSCI에 등재하고, 세계적인 학회에 독립 패널을 두고, 세계적 저널에 등장하는 연구자 10명을 키우고…. 그러면 세계적 연구소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라고 되물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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