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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을 골고루 하는 게 과연 학계발전에 도움 되나?"
"재정지원을 골고루 하는 게 과연 학계발전에 도움 되나?"
  • 최성호 경희대·철학
  • 승인 2012.11.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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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의 우수학술지 지원 방안에 대한 제언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관리 및 육성 정책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많은 말들 속에서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학술지의 운영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을 모두들 비판하면서도 정부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상반된 의견을 내놓기 일쑤이고, 최근 보이는 등재학술지의 폭발적 증가를 한쪽에서는 학술지의 난립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학문의 균형발전이라고 환영한다.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우선 논의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한국연구재단(구 한국학술진흥재단)은 1998년 이래로 학술지 등재제도를 도입해 일정한 형식적인 조건을 만족하는 학술지를 등재학술지로 지정했고, 매년 천여 개의 등재학술지 발행단체에 소액의 학술지 발행 경비를 보조해 주고 있다. 이 제도는 도입 이후 연구자들의 신규임용, 승진, 정년보장 및 국가 연구비 지원 사업 등에 활용되면서 국내 대학 사회 및 학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간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져왔던 학술지의 형식 및 체계를 표준화하고, 연구자들의 포상 체계를 위한 유용한 지표를 제공함으로써 학술활동의 양적 팽창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효과는 학술지 등재제도가 갖는 온갖 부정적인 효과에 비하면 사소하다.

우선 학술지 등재에 대한 요건이 학술지의 형식적인 부분에만 치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형식적인 요건이라는 것도 학술지 발행기관이 학술지의 질적 수준을 향상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약간의 서류상의 수고로움만 감수하면 쉽게 만족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2000년대 이후 국내 대학들이 교수의 연구실적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학술지 등재제도는 국내 학술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학술지 난립 vs 학술지 균형발전

1998년 이후 지금까지 등재학술지 수가 거의 36배 증가하였다. 학술지를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일탈행위는 논외로 하더라도 등재학술지의 폭발적 증가는 국내 학계에 다양한 불행한 문제들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학술지 중에 모범적인 운영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많은 신생 학술지들이 등재학술지에 대하여 요구되는 형식적 요건을 충족하는 데 급급해 수준 미달의 연구논문들을 무차별적으로 게재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훌륭한 학술지란 무릇 투고 논문에 대한 엄격한 동료심사를 통해 논문의 연구 성과가 갖는 학문적 타당성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고,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한 투고 논문들만 학술지를 통해 발표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학술지는 해당 학문공동체에 의해서 빈틈없이 검증된 지식의 보고로 간주되고, 나아가 학술지에 실린 연구성과들은 매스컴에 의해서 일반인들에게 소개되고 교과서를 통하여 후대에 전수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실 학술지의 급격한 증가는 국내 학술지의 연구성과 검증 절차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켰고, 더 나아가 학술지의 권위와 학술성을 추락시켰다. 불행히도 학문적 권위를 상실한 학술지는 껍데기만 학술지이지 학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 부실 학술지에 대해선 학문공동체의 공유된 지식의 기록으로서 학술지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이미 사치다.

실제로 부실 학술지들의 난립은 연구자들이 국내 학술지 전반의 질적 수준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국내 학술지에 발표되는 연구결과물들은 연구자들 사이의 상호교류를 촉진하고 후속연구를 창출하는데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등재학술지들에서 발표되는 대다수의 논문들이 전혀 인용되지 못하고 사장된다는 최근의 언론보도는 이러한 경향을 지표로 잘 보여주고 있다.

권위 있는 학술지를 육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다양한 정책과 제도들이 세심한 조율 속에서 시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학술지 관리 및 육성 제도는 학술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결여된 상태로 시행되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교과부 학술정책자문위원장 왕상한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의 말처럼 학술성은 훼손됐고 학술지는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됐다.

손상된 학술성, 하향평준화 된 학술지

이런 폐단에 대한 반성에서 교과부는 2011년 12월 학술지 평가를 기존의 학술지 등재 체제에서 학계 자율 평가 체제로 전환하고 다수의 학술지에 소액으로 지원하는 현 학술지 지원제도를 없애며 그 대신 일부 엄선된 학술지들을 국제적 수준의 학술지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파격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의 제도 정비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은 곧 일부 학계의 조직적 반발에 직면하게 되는데, 가령, 한국역사학회, 한국인문학총연합회, 그리고 교수노조 등의 교수단체들은 조금씩 논점을 달리함에도 학술활동의 본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교과부의 새로운 학술지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공감할 수가 없다. 새로운 학술지 정책을 모색하는 교과부의 시도는, 비록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모두 옳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크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도리어 그 시도에 대하여 최근에 제기된 몇몇 비판들이야 말로 학술활동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 제시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전술한 비판에 대응하여 교과부가 내놓은 해명자료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위 단체들의 성명서에는 기존 학술지 등재제도와 소액다수 방식의 학술지 지원제도가 갖는 파국적인 폐해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숙고를 찾아볼 수가 없다. 기존의 제도 하에서 많은 국내 학술지들은 그 학문성과 권위가 추락해 지식축적, 연구성과검증, 학문적 교류촉진 등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러 역기능만 보여주는 현 상황에 대한 성찰은 결여한 채 정부정책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의 비판만이 보일 뿐이다.

위 단체들이 특히 문제 삼는 것은 현행 소액다수의 학술지 지원방식을 개편해 소수의 우수 학술지에 지원을 집중하는 교과부의 방안이다. 그 단체들은 이 방안이 ‘인문학 분야의 수백 개에 달하는 학회와 학술지를 재편, 서열화하고’ 또한 ‘정부기관의 막대한 재원을 극소수의 학술지에만 집중시키고 절대 다수의 학술지들은 외면’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나아가 이는 ‘학술지의 양극화’를 낳고, 정당하게 지원받아야 할 기초학문 분야, 인문학 분야, 주체적인 한국학 영역 등이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부실 학술지들, 정부 지원 필요한가?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우려는 공감을 얻기 힘들다. 필자는 묻고 싶다. 학술지의 난립 속에서 부실 학술지들이 양질의 투고 논문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등재학술지 형식적 조건을 채우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현재의 행태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말인가? 재원을 소수의 우수 학술지에 집중하는 것이 왜 나쁜가? 모든 학술지에 대해 정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골고루 하는 것이 과연 국내 학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엄격한 동료심사를 통해 투고 논문의 학문적 타당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많은 부실 학술지들을 정부 지원이라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해당 학문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앞서 언급한 단체들은 새롭게 제안된 우수 학술지 사업이 많은 학문 분야들, 특히 ‘공공적인 지원이 없으면 학문재생산이 불가능한’ 학문 분야(대표적으로 기초학문과 인문학 분야)들을 고사시킬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현재 한국연구재단은 HK사업이나 보호학문육성사업과 같은 다양한 연구지원프로그램을 통하여 그러한 학문 분야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그 단체들이 우수 학술지 사업에 반대하면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초학문 혹은 인문학 분야를 보호하고 육성하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기초학문 혹은 인문학 분야의 국내 학술지들에 대한 소액다수의 현행 지원방식을 유지하고, 그래서 (그들의 표현을 빌면) ‘학술지의 서열화 혹은 양극화’를 막자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소액다수의 현행 지원방식이 과연 기초학문 혹은 인문학 분야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충분한 규모의 연구자 집단이 형성되지 않거나 혹은 아직 학문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연구 분야에 굳이 학술지가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학술지의 순기능이 개별 연구자의 학문적 성취를 검증하고, 그를 통해 학적 지식을 기록함으로써 후속연구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하며, 이에 더해 개별학자의 연구력을 평가하는 유용한 지표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순기능은 모두 해당 학문 분야가 충분히 성숙하여 학문적인 엄격함과 신뢰성을 갖춘 학술지를 만들어낸다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가정이 만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액다수의 정부 보조에 의해서 무차별적으로 학술지가 발행된다면 순기능은커녕 무수한 역기능만을 초래할 것이다.

편법 동원한 로스쿨 학술지들
 
이러한 역기능은 학술지 등재를 위하여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하다가 폐간 및 등재취소 등의 제재를 받은 몇몇 로스쿨 학술지들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 학술지들은 검증된 학적 지식의 보고도 아니고 후속 연구를 위한 가이드도 아니다. 단지 승진이나 재임용과 같은 연구자들의 이해관계에 복속하기 위해서 활자화되는 미숙성 된 사견들의 기록일 뿐이다. 이를 왜 정부가 세금을 들여서 지원해야 한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해당 학계의 학문적 성숙도와 무관하게 정부가 단순히 기초학문 혹은 인문학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술지 발행 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해당 분야 연구자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는 부합할지 모르겠지만, 그 학문 분야의 발전과는 전혀 상관없다. 그것이 학계에 끼치는 해악을 고려해 보면 정부 재원이 낭비되는 문제는 오히려 사소해 보인다.

물론, 정부 지원이 끊기면 상당수의 학술지가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혹시 이렇게 되면 학자들 사이의 학술적인 소통과 교류의 장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할 수 있다. 정당한 우려이다. 하지만 굳이 학술지가 아니더라도 이런 우려를 쉽게 해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최근 해외 학계에서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미출간 논문 인터넷 아카이브 (preprint on-line archives)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보자. 코넬대의 arXiv.org은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일부 분야의 논문들을 동료심사 없이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학자들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런 아카이브는 기존 학술지와 달리 동료심사에 의한 검증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연구자의 연구력을 평가하는 지표로는 사용될 수 없다. 그런 만큼 학술지와 달리 오용될 여지가 적다. 반면, 장시간의 동료심사를 생략할 뿐만 아니라 큰 발행경비가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자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촉진하는 측면에서 기존 학술지보다 더 잘 기능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과부의 우수 학술지 사업에 대하여 최근 제기된 몇 가지 비판들은 기존 학술지 관리 및 육성 정책이 보여주었던 폐해에 대한 충분한 성찰을 결여한 것으로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기존 정책을 유지할 어떤 합리적인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필자도 교과부의 우수 학술지 사업의 모든 내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무턱대고 비판할 일도 아니다.

최성호 경희대·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호주 시드니대, 캐나다 퀸즈대에서 교육 및 연구를 했고, <Mind>, <Stanford Encyclopedia> 등의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최성호 경희대·철학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호주 시드니대, 캐나다 퀸즈대에서 교육 및 연구를 했고, <Mind>, <Stanford Encyclopedia> 등의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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