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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창의성 그 영원한 화두
[만파식적] 창의성 그 영원한 화두
  • 교수신문
  • 승인 2002.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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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1 14:18:41
이은경/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너의 아이디어는 얼마나 새롭고 창의적인가.’ 연구해서 밥벌어 먹는 사람에게 이것만큼 머리에 쥐나게 만드는 말은 없을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려다가 막히고 막막하면, 남들이 오래 전에, 때로는 수천 년 전에 만든 것을 갖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이걸 어떻게 좀 비틀어서 다르게 만들어볼까 하는 궁리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대상을 만나면 부러움과 시기심 때문에 배가 아플 지경이다. 논문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노래든 영역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렇다. 며칠 전에는 마우스같이 생긴 작은 장치를 벽, 유리, 창문 어디든지 벽면에 붙이기만 하면 그 벽면을 스피커로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술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이 기술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이 흘러나오는 유리창이라니, 참신하지 않은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 친구 중에도 항상 기발한 생각을 별빛처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무척 부럽다.
어떤 때는 브레인 스토밍 한다고 의도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뒤집어보고 평소와 반대로만 보기도 한다. 어차피 연습이니까 상상이 공상을 거쳐 망상에 이르러도 상관없다 싶어 생각을 무한정 펼쳐보려 하지만 대개는 어떤 선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마치 유리벽이라도 가로막힌 것 같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범생’으로 살아서 그런지 생각할 때도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자기 통제 같은 것이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또아리를 틀고 들어앉았나 보다. 공상은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데 말이다. 유리벽 이쪽에서도 부지런히 하면 웬만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소위 ‘이공계 기피 현상’이 과학기술 정책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 중 하나로 국가가 과학 분야에 자질이 뛰어난 청소년을 특별히 교육하는 과학 영재 학교를 세워서 운영하기로 했다. 기존 과학 고등학교 중 일정한 조건을 갖춘 곳을 과학 영재 학교로 바꾸기로 한 것은 이미 작년에 결정된 일이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 때문에 영재 학교 설립과 운영 확대에 가속이 붙을 것 같다.
과학 고등학교가 있는데 굳이 과학 영재 학교를 새로 만드는 것은 기존 과학 고등학교가 처음 세운 뜻과 달리 그저 성적 좋은 학생들을 위한 학교가 되고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졸업생들이 의대로 진학하는 비율이 해마다 증가하고 특히 지방의 과학 고등학교에서 그런 경향이 심하다고 한다. 그래서 과학 영재들이 입시 부담 없이 ‘진짜’ 영재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정책 보고서 식으로 말하자면 핵심 인력에 대한 국가 관리 체계 수립이다.
과학 영재 학교 소식을 들으면서 궁금했다. 어떻게 영재들을 가려내고 어떻게 가르칠까. 그저 미리미리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이 많고 성적이 우수한 경우와 영재는 다르다고 한다. 영재 학교의 입학 시험은 며칠에 걸쳐 필기, 실험, 면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치러지고 전문가들은 오랫동안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영재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전문 과학자들이 교사진에 포함돼 있고 시설도 웬만한 대학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이름이야 과학 고등학교든 과학 영재 학교든 상관없다. 학생들이 가진 창의력을 억누르지 않고 키워주는 일이 중요하다. 생각이 뻗어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유리벽을 느끼지 않고, 맨 뒷장에 ‘정답’이 없는 그런 문제의 풀이법을 독창적으로 생각해 내고, 더 나아가 새로운 문제 자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 잘은 모르지만 영재 교육의 핵심 아닐까.
밖에는 추적추적 장마비가 오는데, 오늘도 나는 생각의 유리벽 안에서나마 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있다. 영재가 아닌 학생들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엉뚱하게 행동해도 이해하고 허용해 주는 교육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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