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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우리시대 문장가 교수들의 기행문과 함께 떠나는 여행
[테마] 우리시대 문장가 교수들의 기행문과 함께 떠나는 여행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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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1 14:17:01
강성민 / 출판칼럼니스트

선인들은 遊山문학과 기행문학에 유난한 공력을 들였다. 멀리 신라의 혜초 선사가 티베트와 인도를 가로지르며 써내려간 ‘왕오천축국전’이 있고, 고려의 명문호들에 오면 거의 대부분이 기행문을 문집 속에 포함시키고 있을 정도로 기행문을 즐겨 썼다. 임춘의 ‘동행기’, 이규보의 ‘남행월일기’, 이곡의 ‘동유기’, 권근의 ‘봉사록’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행의 유산들이다.
근대문학 초기에 기행문은 수필 자체를 부르는 이름이 될 정도로 전통적 문학의 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엔 기행문학을 통한 민족의 상 수립이라는 식민지 지식인들의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최남선이나 이광수 같은 이들이 국토순례와 백두산 근참기 류를 통해 민족의 기원을 보듬으려 했던 그 장대한 여정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 반대편에서 위대한 문장가 이태준 같은 이는 ‘남행열차’나 ‘소련기행’ 같은 소품류를 통해 기행문학의 유려함에 얼마나 잔잔한 물결을 보태고 있었던지.
과거의 기행문학이 국토나 자연에 스며드는 자아가 호흡하는 일종의 숭고미 같은 것이었다면, 현대에 접어들수록 기행문학은 테마여행이 돼가고 있다. 특히 문인이나 학자들의 기행문일수록 테마를 등에 업는 경향이 강하다. 테마 기행문에서 가장 흔한 주제이고 그런 만큼 가장 많은 명편을 빚어내고 있는 분야는 예술과 문학기행일 것이다.

고급기행기의 생명은 문학적 진정성

예술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면 바로 문학평론가 故 김현이다. 지금은 전집 한 권으로 묶여있는 ‘김현의 예술기행’과 ‘반고비 나그네길에’는 프랑스로 유학 떠난 젊은 날의 김현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혹은 발자크 같은 대문호의 생가를 돌아다니며 남긴 감상문들을 모은 것이다. 예술품을 향한 존경과 감탄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그리고 평론가로서의 정밀하고 냉철한 논리를 통해, 거장들의 삶과 예술이 명석하게 비춰지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김현이 프로방스의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닐 때, 대학도서관에 틀어박혀 국문학 자료와 씨름하고 있었던 우리시대의 상징적인 저술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는 좀 늦게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육순에 접어들 무렵에야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바깥 세상과의 밀월을 즐겼던 그는, 이를 통해 연구논문의 딱딱한 번역문투를 탈피한 그 자신만의 심원적이고 예술적인 문체를 탄생시키고 있다.
문학과 예술의 현장에서 연마한 그의 ‘표현자의 감각’은 ‘문학과 미술 사이’, ‘풍경과 제시’, ‘환각을 찾아서’ 등으로 묶였고, ‘김윤식 문학기행’에서 그 절정의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여정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시작해 네팔의 카트만두를 거쳐, 공자의 고향 곡부를 찾아 태산에 오르는 등 장대하다. 지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시적 울림에 이끌려 찾아간 울란바토르에서 그는 한밤중에 깨어 밤하늘의 별떨기를 보고 “반 고흐가 그린 ‘별 많은 밤’에서 표현된 묵시론적 느낌”을 받았다. 카트만두에서는 해발 5천미터에 이르는 고지대를 두 번이나 넘어 천신만고 끝에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 이르렀는데, 그가 이 과정을 카트만두 구왕궁 거리의 한 가게에서 구한 가지야마 도시유키의 소설 ‘이조잔영’을 통해 풀어내는 모습은 이 기행문의 백미다.
고급한 기행기는 단순한 일정의 나열이 아니라 그 이상을 뛰어넘는 문학적 진정성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김화영 고려대 교수(불어불문학과)는 ‘나’라는 일인칭 주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산문의 시인이다. ‘행복의 충격’ 등 기행문에서도 이미 몇 차례에 걸쳐 ‘타이틀 방어전’을 치러낸 바 있는 그가 가장 완숙한 경지의 예술기행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을 펴냈다. 이 책은 소설가 신경숙의 추천사처럼 “어서 떠나라”고 재촉하는 듯한 문장을 연이어 쏟아낸다. 프랑스와 인도와 아프리카. 저자가 젊은 날의 열정으로 찾아다녔던 곳부터 그의 황혼의 산책지대가 된 곳까지 울울하거나 열띤 기분, 혹은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까지 현장감을 손상하지 않고 사물을 깊이 있게 살피는 그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프랑스 북쪽 브르타뉴에 있는 샤토브리앙의 콩부르 성이나 발자크의 사셰 성 같은 곳. 나는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우회를 해서라도 기어이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여행 일정을 연장하거나 변경하면서까지 그 마을이나 숲속을 그냥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무슨 특별한 느낌을 스스로에게 강요하지는 않고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육중한 성채나 유물이나 거목 못지 않게 작은 풀꽃, 소똥, 시든 잎새, 수상한 저녁의 빛, 그리고 소리도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며 담장 밑을 호젓이 지나가는 동네 아이, 그 모든 것이 돌연 중요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나의 현재와 그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들끓는 사랑’을 쓴 김혜순 서울예대 교수(문예창작과)는 딸과 함께 스페인을 종횡무진 누비고 나서 스페인 중독자가 돼버렸다. ‘카르멘과 호세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들끓는 정열의 나라, 우울한 인간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스페인 고유의 역동성과 화려함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시와도 유사한 원시성의 꿈틀대는 힘과 만난다. 저자는 창백한 유럽 예술과는 다른 스페인 예술의 정열성에 ‘두엔데’(도깨비)란 이름을 붙여주고, 이를 키워드 삼아 돈 키호테, 피카소 등의 예술을 살피고 플라밍고의 춤 속에서 찬란한 슬픔의 이미지를 발견해낸다. 그의 산문은 다소 분석적이고 해석적이다. 김현의 분석에 물기가 배어 있다면 김혜순의 해석에는 불기운이 느껴진다. 그의 게릴라처럼 치열한 언어와 함께 정열의 나라 스페인으로 여행 떠나보는 일은 흥분을 안겨줄 것이다.
종교학자 정진홍 서울대 교수(종교학과)가 남태평양과 호주지역, 동남아시아와 인도지역, 타이완, 일본 등 13개국의 종교문화를 기행 답사한 ‘신을 찾아 인간을 찾아’는 출간된 지는 좀 됐지만 구해서 읽어본다면 아마 후회 없는 체험이 될 것이다. 원주민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지만 힌두교와 이슬람교 등이 섞여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 피지, 일요일 아침 오페라 하우스의 연주홀은 청중으로 가득 메워지지만 그 반대로 교회는 텅 비는 오스트레일리아, 관용과 조화를 소중히 하는 종교정책을 가진 인도네시아, 도시의 온갖 장점을 고루 갖췄으나 “종교는 죽음을 치장하는 것”이라는 완고한 종교관의 나라 싱가포르 등 예술과 문학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각 나라들의 숨은 얼굴표정을 만나볼 수 있다.

고향가는 길에 맞닥뜨린 옛 얼굴

사실 이 시대의 테마 기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고향’이라는 주제가 아닐까. 고향을 버리고 짓밟고 산업화의 길을 걸어온 우리이기에, 고향을 찾아 떠나는 길에는 언제나 회한 같은 것도 묻어나는 게 아닐까. 민속학자 김열규 인제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고향 가는 길’은 초가집, 고무신, 고갯길 등 고향과 사라져 가는 우리의 것들에 관한 산문 40여 편을 싣고 있다. 고향 일대를 뒤지다 발견한 초가 앞에서 “유일하게 남은 초가삼간. 그것은 정말이지 산모마저 숨진 어느 젖먹이 유복자의 모습 같은 것이었을까?”라는 통한을 내비치는 저자는 책 속에서 내내 고향과 고향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이끈 공동체적 인간애에 대한 그리움을 발산하고 있다.
그 외에 알기 쉬운 역사적 설명과 진솔한 필치로 세계 각지의 토착적 삶의 색채를 잘 드러내고 있는 인류학자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과)의 ‘이희수 교수의 세계문화기행’, 이강로·장덕순·이경선 등 세 명의 원로 국어학자·국문학자가 전국의 누정에 걸린 記文과 시를 찾아다니며 번역하고 해설한 ‘문학의 산실, 누정을 찾아서’ 등도 읽어볼 만한 테마 기행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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