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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간 논의 시급한 분야… 날씨와 인문학이 만났다
학제간 논의 시급한 분야… 날씨와 인문학이 만났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1.12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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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기후 문제 짚은 인문기상연구회·동국대 생태환경연구소

쓰나미가 오면 피해 규모는 얼마일까?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독일의 생태시인들은 자연재해에 대해 어떤 심정으로 시를 썼을까? 고대 철학자들이 기후재해를 사유하던 방식은? 엉뚱해 보이지만 한 번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질문들이 실제 연구논문으로 발표된 두 학술대회가 열렸다.

지난 3일과 10일, 기상·기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이 인문사회학자들과 만났다. 인문기상연구회(회장 유헌식 단국대)동국대 생태환경연구소(소장 김일중)가 그 주인공들이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본격적인 학제간 연구다.

인문기상연구회는 이번이 첫 학술대회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유헌식 단국대 교수(기초교양교육원·서양철학)과 이우진 기상청 예보국장은 인문학과 기상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번 학술대회를 기획했다. 반면 동국대 생태환경연구소의 학술대회는 기상보다는 기후에 주목했다. 학술대회의 전신은 2004년 시작된‘에코포럼’이다. 매년 6~7회씩 35회가 넘는 발표를 해 왔다.
 
인문기상연구회 학술대회에서는 기상학적 지식을 금융상품으로 빗대어 풀어놓은 흥미로운 논문이 있었다. 서동진 계원예대 교수(문화·종교사회학)는 「대기의 노모스: 기후파생상품과 문화경제」에서‘날씨리스크란 평균적인 날씨현상과 다른 이상기후로 인해 경제추체들이 경제적 손해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이런 날씨리스크는 국가보다는 기상학자들이 자본시장과 합세하는‘시장’의 눈을 통해 파악된 위험이기에, ‘위험의 국가화’는 곧‘위험의 시장화’가 되고, 날씨는 생명과 안전의 문제에서 금융적인 이익 추구의 문제로 전이된다고 주장했다. 기후위험이 개인 및 기업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위험의 시장화’는 새로운 사업 기회

무시무시한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 시대의 철학의 길을 묻는 논문도 있었다. 도승연 광운대 교수(문화·기술철학)는「기상 재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존재의 한 기술, 감정의 서사를 중심으로」에서 기후변화를‘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설정하고, 그로 인해 겪게 된 감정의 격한 소용돌이 속의 인간들에게 고대철학적 입장을 제시했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활동으로서 철학의 실용성을 이해하는 현대적 입장과는 달리 고대 철학은 수용자 중심에 기반해 삶을 분투하게 하는 가능성으로서 자신의 실용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상관측 방법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기상위성 사진을 사진영상학적 관점에서 다룬 발표도 있었다. 박상우 중부대 교수(사진영상학과)는「기상과 사진: 기상위성사진 연구」에서 기상위성사진의 제작·해석원리를 설명하며, 기상현상 식별, 거대 기상현상 탐지, 예측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사진의 감광판이 전자기파 에너지를‘비례해서’기록하는 속성 때문임을 밝혔다. 그러나 박 교수는 과학적, 공학적 관점에서 좀 더 엄밀하게 기상위성 사진을 다룰 수 없었던 인문학적 한계를 고백하며 실질적 소통이 있는 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국대 생태환경연구소 학술대회에서는 어떤 주장들이 제기됐을까. 김명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전 환경부 장관)은 기조강연「기후변화와생태위기」에서 격동하는 21세기의 시대적 변화를 주도하는 동인 중 하나가 바로‘기후변화의 충격’이라고 주장했다. 기후변화 때문에 에너지, 식량, 수자원이‘전략적 자원’으로 규정되고, 이들 자원을 둘러싼 국제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 회장이 우려한 것은‘식량안보’였다.

그는 12억의 절대 빈곤인구가 물 부족과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데, 현대인의 대부분은 영양소 과잉섭취로 비만 등 현대질병에 노출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대량생산을 위한 화학물질 사용이 결국 생태계를 파괴시켜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학술적인 연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융합 학문적 접근을 요구한 발표도 있었다. 정회성 환경과문명 대표는 특별강연「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융합 학문적 접근」에서 기후변화문제는 본질적으로 다양한 주체들의 심각한 이해가 걸렸기에 과학적·정치적 논의 또한 한계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학, 생물화학, 환경학, 경제학, 정치학 등이 각자의 방법으로 기후변화 현상을 분석하는 융합학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자적인 과학탐구, 각자의 방법론에 충실한 학문연구 그리고 이를 유기적으로 통합·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전문가의 육성이 전제돼야 기후변화에 대한 전인류적인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상된 세계의 임계점으로부터 멀어지기

기후변화에 대한 독일 시인들의 반응을 분석한 송용구 고려대 교수(독문학과)는「‘기후변화’의‘생태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시의 묵시록-독일어권 지역의 생태시를 중심으로」에서 생태시를‘자연환경의 오염으로 인해 나타나는 생명체의 질적 변화를 생태학적·사회적·정치적 인식 및 생명의식에 근거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현대시의 한 장르’라고 정의하며, 직설어법, 선언문적 어법 등을 그 10가지 특징으로 들었다.

그는“머지않아 창문을 열 수 있는 것도 특권이 될 때가 올 것”「말해주세요, 잘 지내고 있는 (지」, 독일 시인 위르겐 베커), “가로수 혹은 담장, 시멘트가 자신의 목을 처단하는 푸른 오랏줄 / 지구의 사지가 뻣뻣이 굳어진다”(「지구의 근황」, 함민복) 등이‘기후 변화’의 현실상황과 대재앙의 미래상황 사이에 서 있는 현대시라고 예로 들었다. 그는 손상된 세계의 임계점으로부터 멀어지려는‘저항’의 패러다임은‘문학’만이 아닌‘인문과학’과‘자연과학’의 경계를 초월하는 융합학문이 새로운 지향점이라고 제언했다.

기상과 인문사회과학, 기후변화와 인문사회과학을 다룬 두 학술대회. 이 자체가 유의미한 진전이지만,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 인문기상연구회의 유헌식 교수는 흥미로웠던 개별발표에 비해, 자연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 간의 진정한 소통은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일대일 교류를 통한 침투가 부족하다는지적이다. 그는 권원태 국립기상연구소장의「24절기의 기후변화, 미래 기후변화 전망」도 농업사 연구자와 함께 진행했더라면 훨씬 내실 있는 연구결과가 도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부분의 발표들도 논문의 소재만‘기상’에서 빌려올 뿐, 상당 부분 자연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해석가능한 발표이기에 진정성 있는 삼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개선해야할 부분으로 평가했다.

반면 김일중 동국대 생태환경연구소장(환경경제학)은, ‘기후변화’에 대한 학제간 논의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이번 학술대회의 역할에 의의를 뒀다. 그는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가 유럽에서는 존중되지만, 미국, 일본, 한국에서는 무시당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기후변화의 문제를, 단독 학문을 넘어서는 학제 간 논의의 장을 열고자 이번 학술대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종합토론에 정부, NGO, 언론계 인사를 골고루 초대한 것도 이런 의도에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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