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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헤르만 헤세전’,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모르고 있는
[예술계풍경] ‘헤르만 헤세전’,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모르고 있는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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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1 14:13:25
새가 되기 위해 알을 깨려는 발버둥이, 아브락사스에게로 날아가기 위해 세계를 파괴하려는 발버둥이, 전쟁의 참혹함을 딛고 평화에 안식하려는 발버둥이. 헤르만 헤세(1877∼1962)는 “그림 그리는 일은 나의 마술도구이이며 파우스트의 외투이다. 그 도움으로 나는 벌써 수천 번이나 마술을 부렸고, 어처구니없는 현실과의 싸움을 이길 수 있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에 탐닉했다.
그러나 ‘고뇌에서 비롯된’ 헤세의 ‘수채화’들은 놀라울 정도로 맑고, 밝으며, 평온하다. “몹시 상심하고 있을 때였다/ 들을 지나가다가/ 한 마리의 나비를 보았다…오, 나비여!/ 세상이 아직 아침처럼 맑고/ 하늘이 무척 가까이 있던 어린 시절/ 아름다운 날개를 팔랑이는/ 너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나비’ 中)”라는 헤세의 시구에서 보듯, 헤세에게 ‘그림 그리기’는 고흐의 그것과 같이 ‘고뇌를 토해냄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한 분출구가 아니라 ‘고뇌를 가라앉힘으로써’ 또 다른 고뇌를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종교’와 같은 존재였다.
오는 7월 31일까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헤르만 헤세전’은 이런 헤르만 헤세의 ‘다양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전시회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호임씨에 따르면 이번 ‘헤르만 헤세전’은 일반적으로 ‘데미안의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등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헤세의 ‘화가’로서의 모습을 소개하는 동시에 ‘자연주의자로서의 헤세’, ‘평화주의자로서의 헤세’, ‘소년기의 헤세’ 등 다양한 주제로 나눠 그동안 숨겨져 있었던 헤세의 여러 일면들을 조명하는 자리다.
이 전시회에서는 헤세의 수채화 50점을 비롯해 헤세가 앙드레 지드, 로망 롤랑 등과 주고받은 엽서, 헤세의 육성이 담긴 레코드, 헤세의 마지막 작품 ‘꺾어진 가지’ 원본 등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투명함이 경쾌함을 더해주는 ‘정원사 헤세’는 나무와 하늘을 유달리 좋아해 화면 대부분을 ‘녹색’과 ‘푸른색’으로 채우곤 했던 헤세의 수채화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헤세의 그림에 사용된 색깔들만큼이나 다양하고 아기자기했던 이번 전시회는 청춘과 성장, 그 몸서리쳐지는 ‘어둠‘의 고뇌에 괴로워하던 싱클레어의 탄생은 한가롭게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그림 속 헤세의 ‘동양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한가로운 짐작을 남겨준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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