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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출판저널’의 마지막 뒷모습
[초점]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출판저널’의 마지막 뒷모습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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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1 14:10:07

2002년 7월 16일, 태풍과 폭염에 오락가락 하느라 하늘도 거리도 기력이 쇠한 서울 종로의 한 인쇄소 골방에 한 무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간밤을 꼬박 새고 한 뭉치의 인쇄용 필름을 손에 쥔 前 ‘출판저널’ 기자들이다.


간판을 내리고, 사무실도 다 정리한 터에 이들이 다시 모인 까닭은 무엇일까. 7월 20일 창간 15주년을 앞두고 끝내 기념호를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목에 걸린 이들은 각자 주머니들을 열어 마지막 출판저널을 만들자고 다짐했고, 그리고 그렇게 모였다. 단행본 ‘출판저널을 위한 기억의 편람-차라리 깃발을 내려라’(전 출판저널 기자들 엮음, 지호 펴냄)는 정기독자들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자, 15년의 기억을 되짚는 안타까운 기록이다.


초창기 출판저널의 틀을 만들고, 출판저널의 걸음마를 불안하고 대견하게 지켜본 이들은 한결같이 어려웠지만 보람된 일이었다고 돌이킨다. 대개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아름답게 ‘왜곡’되게 마련이지만, 출판저널에 대한 기억의 왜곡은 각별하다. 제대로 된 서평지를 만든다는 자부심, 대한민국에 꼭 한 권은 있어야 할 잡지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젊음의 한철을 보낸 이들이기 때문이리라.


“잔인한 6월, 어느 공공병동에서는 한 잡지가 사망선고를 받았다. 진료기록부에는 ‘3개월 사망 후 부활’이라는 황당한 소견서가 첨부됐다. 세상의 소음은 이런 흉흉한 소문을 땅에 묻어버렸다. 그 와중에서 열 명의 생계는 한순간에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그들은 지금 ‘정신적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가난한 생계 걱정보다, 난민으로 몰락한 것보다 더 서글픈 현실은 15년 동안 어김없이 독자들에게 찾아갔던 한 잡지의 정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존재의 정당성에 의심을 품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느닷없는 일이다.” 출판저널의 마감은 ‘존재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일이었노라고, ‘마지막 편집장’ 박천홍 씨는 고통스럽게 고백한다. 그는 또한 ‘잇속에 밝은 영악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출판저널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이들은 언제나 아름다울 수 있었노라고’ 젖은 기억들을 펼쳐놓는다.


뿐이랴, ‘술판저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비원의 담을 타넘고 들어가 술을 마시고, 읽은 책만큼 술잔을 채우던 기억들, 책으로 엮인 숱한 인연, 머리가 팽팽 도는 활자와의 싸움들은 징하긴 했으되 살맛 나는 일이었노라고 기자들은 풀어놓는다. 생생하게 글맛 나서 새삼 안타깝다. “서가에 눈길을 주는 일에 전에 없이 겁을 낸다. 우리 마음과 손끝을 거쳐가야 했을 책들이 하루에도 수십 권씩 출간되고 있다는 생각에 반짝이는 새책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는 한 기자의 고통스러운 독백이 어디 그만의 것일까. 서점에 가는 일도, 책꾸러미의 향기를 맡는 일도 새삼 두려운 이들의 방향 잃은 사랑과 열망은 그래서 더 허허롭다. ‘지난한 글쓰기’와 ‘행복한 책읽기’를 15년 동안 이어주던 그 손들, 무르춤해진 그 손들을 어찌할꼬.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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