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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 최상일 PD, 삶의 노래와 함께 한 13년
[지면으로의 초대] : 최상일 PD, 삶의 노래와 함께 한 13년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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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1 14:06:35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주기 내가 뜯어주꺼니 / 임자년 숭년에두 봄 살어나네”“‘강원도 아라리’입니다. 정선읍에 사시는 전규낭 할머니 노래인데, 13년 동안 목청 좋은 소리꾼 숱하게 만나봤지만, 이 할머니처럼 사람 오금 저리게 노래하는 분은 못봤어요. 곤드레, 딱주기는 보릿고개 시절 강원도 사람들 살렸던 나물이랍니다.” 13년 동안 찾은 민요 가운데, 듣는 순간 가슴으로 치고 들어온 한 편을 골라달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골라 내놓은 민요, 아라리는 민초들의 모진 삶이 그대로 응축된 노래였다. 결국 그가 찾아 헤맨 민요는 사람 사는 얘기다. “사람을 알지 않고서는, 나고 자란 내력과 문화를 함께 듣지 않고서는 민요를 가슴으로 들을 수 없다”는 최상일 PD.

라디오를 끼고 사는 이가 아니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MBC 라디오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소리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구성지게 부르는 민요 한 자락 들려주는 40초 짜리 프로그램. 진행과 연출을 혼자 맡고 있는 최상일 PD, 그의 이름이 ‘민요’ 옆에 따른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런 그가 ‘사라져가는 옛 삶의 기록-우리의 소리를 찾아서’1, 2권(돌베개)을 펴냈다. 민요 찾아 전국을 누빈 지 13년, 처음 원고를 쓰기 시작한 지 5년만의 일이다. 이미 9권의 자료집과 1백3장의 CD를 만들어 각 대학과 초중고교, 연구소에 배포해 ‘민요교육의 표본’이 된 그의 작업은 단순히 수집에서 그치지 않고, 민요를 일군 민초의 삶을 치밀하고 정성스럽게 어루만진 인류학적 조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본 해설서조차 없더군요. 우리 국악에서 민요는 속된 음악일 뿐이에요. 아무도 연구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근근이 불리다가 농촌공동체가 무너지면서 공중에 붕 떴습니다. 나라도 하지 않으면 다 사라져버릴 텐데, 어떻게 해요.”그는 “아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했다”라고 하지만, 어디 사명감만으로 될 일인가. 민요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이끌림’은 띄엄띄엄, 변함없이 이어진 어린 날의 기억들과 맥을 같이 한다. “초등학생 시절 풍물굿을 구경하고 돌아와 ‘상모 비슷한 걸 만들어’ 이튿날 목을 가누지 못하도록 돌려대던 기억, 고등학생 때 아버지 고향마을에서 처음 본 대보름 줄다리기의 놀랍도록 흥청거리던 풍경, 대학 시절 강원도로 농촌활동을 갔을 때 콩밭을 매던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꿈결 같은 아리리 가락”까지, 어떤 사랑도 이보다 더 지고지순할 수는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민요가사가 들들 끓고, 틈만 나면 입에서 줄줄 새나온다. 집에서 밥 먹다가도, 누구랑 얘기하다가도 단어 하나가 민요를 ‘데불고’ 나온다. 음감이 모자라고 목청이 트이지 않아서 가락까지 붙이지 못하지만, 샘솟는 가사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는 얼마 전에 부장 자리를 ‘내던지고’ 현직 PD로 되돌아왔다. “가만히 앉아서 결재나 하고 있자니 좀이 쑤시고, 현장이 훨씬 더 재미있어서”라는 것이 이유지만, 진짜 꿍꿍이는 딴 데 있다. ‘이제 나한테는 민요밖에 없다. 이제 민요 아니면 안돼’라고 스스로에게 배수진을 친 것. “13년 동안 발바닥에 종기 나도록 전국을 헤매고, 돌아와서는 엉덩이에 땀띠 돋도록 주저앉아서 연구한” 사람한테 한직은 혜택이 아니라 고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이제는 먼저 그에게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어느 시골에서는 “여기 논일하는 할매가 목청 기막히게 좋은디 어디 한 번 들어볼라요”하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이도 있다. 심지어 택시를 탄 어떤 할아버지가 “나 옛날노래 하러 왔는데 거기로 데려다주소”라고 하자, 택시기사가 “아, MBC요.”하고 실어다준 일도 있었다. 그렇게 만난 노인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인연을 이어온 지도 오래다. “농경 시절, 소리꾼과 상쇠들은 문화의 리더였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과 함께 소리 잘하는 사람이 대접받던 그 시절에 소리꾼들의 자긍심은 대단했어요.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된 현실이 참 가슴 아픕니다. 노인정 돌면서 짜장면 대접하고…노인잔치는 잘 해주고 다녔으니 나중에 복 받을 거라고 스탭들한테 얘기하죠.”그는 또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됐다. 시집살이 노래를 부르다가, 신세한탄을 하다가 눈물을 쿨렁쿨렁 쏟아내는 할머니들을 보면서부터다. “공동체 문화가 철저하게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됐다는 사실은 비판할 수밖에 없고, 남자들 바람 피는 것도 너무 싫다”고 이야기하는 남자다.
그는 민요가 국문학, 국악, 민속학과 인류학까지 아우르는 총체적인 문화라고 생각하고, 학자들이 나서서 공동연구라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연구 욕심만 앞세우지 않기를 또 당부한다. “소리를 모으러 다니다보면, 자기 욕심에 윽박지르면서 노래를 끄집어내는 이들 소문이 들려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요. ‘나도 혹시 소홀하지 않았나, 군림하려 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족보 같은 귀한 자료를 복사한다고 들고 가서 감감무소식인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주로 교수들인데, 문화에 대한 애정과 경외심 없이 어떤 연구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슬슬 소리 찾으러 또 떠나야 하고 국문학 논문도 몇 편 쓸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도 해볼 참이고, 홈페이지(www.urisori.co.kr)에 답변을 올리느라 밤을 새우기도 일쑤다. 귀하게 얻은 북한 민요까지 정리하려면 세월이 감당할까 싶다. 조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일의 속도는 정해져있어요. 그냥, 마음을 맞춰서 천천히 해야지요” 한다. 다만, 노인들이 자꾸 돌아가시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계는 좋아졌는데, 기계 들고 찾아갈 소리꾼이 없어요. 시대가 자꾸 어긋나는 것이 안타깝지요.” “나는 간다 나는 간다 저 길을 따라 나는 간다/ 아이고 답답 설운지고호…산천초목 젊어온디 우리 인생 늙어온다/ 아이고 답답 설운지고호” 전북 순창의 논매는 소리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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