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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한국노동계급의 형성'(구해근 지음·신광영 옮김, 창작과비평사 刊)
[화제의 책] '한국노동계급의 형성'(구해근 지음·신광영 옮김, 창작과비평사 刊)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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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6:47:27
구해근 하와이대 교수(사회학)의 이 책이 코넬대학출판부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해였다(Korean Workers: The Culture and Politics of Classs Formation). 바로 그 책을 저본으로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번역하고, 저자가 직접 교정을 봤으니, 우리말 번역본으로는 매끄럽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책장을 넘기다보면 군더더기없는 우리말 문장을 만나게 된다. 두 사회학자가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지난해 있었던 한국사회학회의 심포지엄 자리가 인연이 됐다. 구 교수는 발표자로, 신 교수는 토론자로 만났던 것.

옮긴이가 된 신 교수는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제의를 받았을 때, 선뜻 승낙을 할 수가 없었다. 번역이라는 게 지루하고 빛이 나지 않는 작업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일을 제쳐두고 해야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해근 교수의 진지함과 학문적 열정에 감화되어 이 책의 번역을 맡기로 결심했다. 1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씌어진 이 책은 그의 40여년 사회학 연구를 종합하는 동시에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옮긴이인 신 교수가 말한 것처럼, 어쩌면 이 책의 가장 가슴 뭉클한 대목은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춘 4장 ‘순교자, 여성노동자와 교회’, ‘학생들이 노동에 뛰어들면서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정치화되는’ 상황을 기술한 5장 ‘노동자와 학생’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저자 구해근 교수의 시선이 오롯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치 잘 구성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운동의 현장과 삶에 스며든 시대의 공기가 손에 잡혀서다.

술술 읽힌다고 해서 가볍게 본다면 오산이다. 10여년에 걸친 자료수집과 노동운동가들과의 방대한 인터뷰가 지면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노동운동 도서관에서 탄생한, 푹 곰삭은 저자의 한국노동사회 분석서다. 최초로 계급형성론적 관점에서 한국노동계급을 읽어냈다는 것,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유럽에서 노동계급이 형성되는 과정과 충실하게 비교분석해냈다는 것, 특히 70년대 노동운동과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함으로써 여성 노동자의 정당한 복권을 시도했다는 것 등은 저자의 지적 성실성을 엿보게 하는 동시에 책이 도달한 성과를 입증하는 특질들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 또는 경제성장에 시선을 고정시킨 외국학자들과 달리, 구 교수는 처음부터 저 미심쩍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의 그늘을 더듬고자 했다. 저자 스스로는 한없이 낮추고 있지만, 에드워드 파머 톰슨(E.P. Thompson)의 대작 ‘영국노동계급의 형성’과 같은 제목을 코넬대학출판부측이 처음 제의한 것도 이 책과 저자의 학문적 자세를 제대로 읽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구 교수의 이 책 역시 톰슨의 계급 이해와 방법론을 원용했다. 톰슨은 계급을 생산관계의 맥락에서 파생되는 구조나 범주로 취급하는 자유주의 경제사학 내지 구조기능주의적 사회학의 경향을 비판하고 주체들이 복합적인 경험을 통해 차츰 그것을 형성해가는 역사적 현상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즉 생산관계 내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위치적 동일성뿐 만 아니라 그들이 공유하는 생활경험, 전통, 언어, 가치체계에 주목했던 것이다. 구 교수는 여기에 착안, 다양한 통계자료, 노동자들의 수기와 일기를 포함하는 넓은 자료망을 구축해 1960년 최초의 도시 임금노동자가 등장해서 노동현실에 순응하고, 불의를 인식하게 되고, 막연한 저항과 몸부림에서 점차 정치적으로 의식화되면서 ‘그들 사이에는 이해관계의 동일성을 그리고 자본가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의 배타성을 인식하게 되는’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을 복원했다.

저자의 결론, 한국의 노동계급은 아직은 상대적으로 피상적이고 모호한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고 대안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분명한 비전도 없는 초기적인 형태의 계급에 불과하지만, 강한 저항정신과 계급불평등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 강한 연대의식과 점증하는 정치적 자신감을 획득한, 역동적 계급이라는 것.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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