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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33>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
[우리시대의 고전]<33>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
  • 장석만 / 서울대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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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6:07:37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Wilfred Cantwell Smith) (1916~2000)
외교관, 교수였던 부모의 영향과 카이로 여행으로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스미스는 캐나다 토론토대와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역사와 신학, 셈어 등을 공부했다.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49년에서 1963년까지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 연구소에서 재직했으며 1964년 하버드대 세계종교학센터에 있으면서 종교연구 프로그램을 주도했고 1973년에서 1978년까지 핼리팩스에서 비교종교학부를 창설한 후 1978년에 하버드대로 돌아갔다. 1984년에 하버드대 비교종교학 석좌교수로 임명됐고 1985년에는 토론토대 신학부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비교종교학 분야에 기념비적인 역할을 한 그는 2000년에 숙환으로 사망했다. ‘종교의 의미와 목적’(1964) 이외에도 ‘인도에서의 근대 이슬람’(1944), ‘세계신학을 향해’ (1981) 등이 있다.

장석만 / 서울대 강사·종교학

종교라는 용어를 들을 때, 우리는 예외 없이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힌두교, 이슬람, 유대교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런 종교들은 모두 분명히 구분되는 교리체계, 경전, 그리고 조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자라고 하면 종교 범주에 속해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종교를 연구한다고 하면 이들 중 하나 혹은 두 가지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란 이와 같이 여러 가지의 실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1916~2000)는 이런 ‘상식적’ 견해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되는 ‘종교의 의미와 목적(The Meaning and End of Religion)’은 바로 그런 문제제기와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스미스의 학문적 역정을 간단히 살펴보면서 시작하겠다.

스미스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고전 셈어와 역사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인도에서 7년동안(1940-46) 선교활동을 했으며, 1944년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6년에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인도에서의 근대 이슬람’이 출간됐다. 1948년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얻은 후, 맥길 대학에 비교종교학 교수로 임명됐으며, 1951년 맥길 대학에 이슬람 연구소(Institute of Islamic Studies)를 설립했다. 그는 무슬림의 참여없이는 이슬람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서구의 학자 중심의 이슬람 연구를 무슬림 학자가 참여하는 연구로 탈바꿈시켰다. 1964년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 9년동안 재직하면서 세계종교연구센타(Center for the Study of World Religions)의 소장을 역임했고 종교연구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그는 1960년대 초부터 서구중심적인 배타적 구원관과 진리관에서 탈피해 다른 신앙과의 적극적인 대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한 지구상의 인간은 모두 하나의 운명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며, 이에 바탕한 새로운 인간형이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미스의 이런 관점은 1962년에 출간된 ‘종교의 의미와 목적’(한글판은 1991년 분도출판사에서 길희성의 번역으로 나왔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20세기의 인간이 당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모두 종교와 연관돼 있다. 하나는 세계 공동체를 만드는 일로, 서로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이해하고 신뢰하는 분위기를 지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종교 상호간의 이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인이 삶의 온전한 의미를 찾아내는 일로서, 초월적 실재에 개인이 제대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여태까지 이 두 가지의 근본적 과제는 만족할 만하게 수행되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의 실패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가 제시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간주되어 온 질문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질문을 던질 때 암암리에 당연시한 전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고, 자명해서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관점을 철저히 살피는 것이다. 그동안의 문제틀에 대한 이와 같은 재검토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 기본 개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질문을 위해 스미스가 철저한 검토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릴리지온’(religion) 개념이다.

‘릴리지온’ 개념에 대한 스미스의 비판적인 검토 작업은 그 개념이 서구의 특정한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서 출현하고 유지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집중돼 있다. 그래서 이 책 2장은 현대 종교 개념의 기반을 제공한 서구의 ‘릴지지온’ 개념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살피는 부분이며, 3장은 근대 서구문화의 영향을 받기 전에 다른 문화에서는 ‘릴리지온’에 상응하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스미스에 의하면, 서구 ‘릴리지온’ 개념의 특징은 개인의 역동적인 신앙을 마치 관찰할 수 있는 현상처럼, 그리고 비인격적인 외적 사물인 양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개인 내면의 경건성은 쉽게 간과해 버리고, 단지 추상적인 교리와 행위체계의 관점이 강조될 뿐이다. 스미스는 이를 ‘릴리지온’ 개념의 주지주의화, 혹은 물상화(reification)라고 표현한다.

이런 과정은 17세기부터 서구에서 두드러지게 진행된 것으로, 종교전쟁, 비서구 문화에 대한 엄청난 정보의 유입,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부각, 그리고 역사주의적 사고방식 등이 서로 상호작용해 이루어진 것이다. 스미스는 이런 물상화 과정의 결과, 종교에 대한 관점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5장 ‘적합한 개념일까?’는 바로 ‘릴리지온’ 개념이 개인의 내면적 경건성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고 보고 이 개념의 완전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스미스의 대안은 무엇인가. 6장과 7장에서 스미스는 각각 ‘축적적 전통’(cumulative tradition)과 ‘신앙’(faith)이란 개념을 ‘릴리지온’ 개념 대신 제시하고 있다. ‘축적적 전통’은 종교적 삶의 외적이고 집단적인 역사적 축적물 전체를 일컫는 것으로, 건물, 경전, 제도, 교리 등 밖에서 관찰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반면 ‘신앙’은 한 인격체의 내면적인 경건함을 가리킨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개인 인격체의 내적 체험과 역동적인 반응이 바로 ‘신앙’이라는 것으로, 이는 밖에서 관찰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축적적 전통’과 ‘신앙’은 각각 종교적 삶의 세속적 측면과 초월적 측면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개인 인격체는 바로 두 측면을 묶고 있는 것이다.

스미스는 자기 책이 나온 지 25년이 지나면 ‘릴리지온’ 개념이 더 이상 쓰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그 예측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경직화되고 교조화된 서구의 종교적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내면적 신앙의 경건함을 강조했다. 신앙의 초월성과 보편성을 주장함으로써, 그는 여러 종교 사이에 상호이해의 가능성을 확대하려 했다. 스미스가 신학적 흔적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종교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해결책 때문이 아니라, 문제제기에 있다. ‘릴리지온’ 개념에 담겨 있는 서구중심성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은 종교적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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