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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남긴 과제들
2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남긴 과제들
  • 김현숙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미술사
  • 승인 2012.11.07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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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는 주제인 ‘미술사, 쓰기/개입하기?’가 제시하듯 크게 2부로 구성됐다. ‘쓰기’로 표현된 미술사 연구의 궤적과 현황 추적이 하나요, 연구의 현장 ‘개입’을 타진하는 것이 둘째로, 궁극적 목표는 근현대의 미술 현상 및 실천의 사회적 의미를 복원하는 데에 뒀다.

학회가 창립된 1993년 10명이었던 연구자 수가 300명을 넘었으니 한국근현대미술 연구자의 비약적 증가를 목도할 수 있다. 초기 비평가들이 수행했던 근·현대미술 연구가 미술사학자들의 영역으로 편입됐고, 순수 미술뿐만 아니라 삽화, 만화, 사진, 포스터 등 시각문화 전반이 연구 대상으로 확대됐으며,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인식됨으로써 구술사 연구가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연구의 양상도 작가론이나 작품 연구에서 나아가 미술관, 박물관, 박람회, 교육 등 미술 정책 및 제도 전반과 미술 시장, 미술품 감정 등으로 풍부해졌으며, 한국근대미술의 기점과 근대성에 대한 논의의 결과로 그 동안 평가 절하됐던 19세기 미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여전히 서울 화단에 편중된 상태지만 대구, 부산, 호남 등 지방 화단을 비롯해 만주, 연변 등의 디아스포라 미술과 북한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일제강점기와 독재 정권 하에 진행된 한국근현대미술의 특수성 때문에 ‘국가와 미술' 혹은 '미술의 정치성' 이라는 주제가 빈번하게 다루어진 것도 주목된다. ‘민족’, ‘전통’의 강력한 자장을 의식하면서도 국가 혹은 정부가 미술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짓고 미술가들을 동원하였는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년의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향후의 과제들도 만만치 않음이 재확인됐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거주하며 활동했던 재조선일본인 미술가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공백이다. 식민지에서의 활동이 모국과 식민지 모두에서 삭제돼 버린 것이다.

이 같은 ‘삭제’와 ‘선택’의 행위 자체가 학문적 논의의 대상이지만 그보다 한국근대미술의 반쪽인 재조선일본인 미술가들의 활동을 세밀하게 파악하지 않고서는 한국근대미술사의 온전한 기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북한미술을 삭제시킨 미완의 한국미술사를 극복하는 새로운 미술사 쓰기란 요원하지만 반드시 실행돼야할 과제이다.

서구 이론과 담론 및 용어를 성급하게 수용해 소비하는 지금 우리 학문의 식민성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요구된다. 신미술사학, 페미니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등 서구의 이론과 미술사 방법론을 수용하되 한국 고유의 사상적,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입시키는 오류가 반복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개념과 용어에 대한 치밀한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 미술의 ‘근대성’ 혹은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비롯해 회화를 한국화, 동양화, 서양화라는 용어로 구분하거나 혼용함으로써 야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직시하면서도 그에 대한 결단이 계속 유보되고 있다. 나아가서 모더니즘, 리얼리즘 등 원어와 상당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정립도 필요하다.

또한 한국근현대미술사에 대한 국제 학계의 필요를 감당할 수 있는 인프라의 빈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 이전의 미술은 한국의 정통미술사로 문화재급 대우를 하면서 현대미술은 현장미술로, 근대미술은 암흑기의 악몽으로 치부하는 현 학계의 인식 수준에서 인프라 지원과 구축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단적인 예로 한국 근대미술을 전공자가 정교수에 취임한 경우는 전무하다. 일본과 중국의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하는 서구인들이 소수이지만 존재하는 것과 달리 한 두 명의 일본인 학자를 제외하면 한국근현대미술을 연구하는 서구인과 중국인 학자가 없는 것도 국내 상황에 견주어 보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면 되고, 우리의 미술은 우리가 연구해서 전파하면 된다고 무마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의 연구자들이 축적한 연구 성과를 전달해줄 매개자 혹은 매개체도 매우 빈약한 수준이며, 동일한 주제와 현상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고 파급력도 급증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한국근현대미술사 연구의 국제화는 매우 시급한 현안이다.

김현숙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미술사 
필자는 홍익대에서 박사를 했다. 현재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이며 주요 논문으로 「한국근대미술에서의 동양주의 연구」, 「근대 시각문화 속의 신라-석굴암을 중심으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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