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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섬의 청학동’ 빠르게 변화하는 슬로시티
‘21세기 섬의 청학동’ 빠르게 변화하는 슬로시티
  •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ㆍ생태학
  • 승인 2012.11.07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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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야기 21. 전남 신안군 증도

 

증도면 대평염전. 국내 최대 단일 염전이다. 사진=홍선기
신안군은 1천여 개의 크고 작은 갯벌섬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흔치 않은 아름다운 해양경관을 보여준다. 하루에 두 번씩 밀려들고 나가는 潮差에 의해 1천여 개 섬의 모습은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바다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용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경관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바로 신안군 다도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조차도 심하고 바다로 둘러싸인 섬 군집이다 보니 그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배편은 매우 중요한 운송 수단이다. 이곳 섬 주민들에게 물어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연륙교를 놓아 달라는 것이다. 최근 신안군에는 하나 둘 연륙교가 설치되고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 목포로 내려오다가 무안IC에서 나와서 24번 국도로 무안군 현경면에 도달한 후, 지도읍에서 솔섬과 사옥도를 지나 증도대교를 건너면 증도에 도착한다. 증도대교는 압해도대교 이듬해인 2009년에 연결됐다. 연륙교가 없었을 때는 사옥도까지 차로 가서 지신개선착장에서 표를 끊어 철부선을 타고 증도 버지선착장에 가야했다.

불과 20분 정도의 선박 이동 거리였지만, 도시민들에게 작은 섬 포구의 소박한 모습을 보여줬던 지신개선착장. 그곳에 가면 회색빛 갯벌과 갯내음, 철따라 다양한 魚物을 선보이며 뭍사람들을 흥분시켰던 사옥도의 세발낙지와 장뚱어 생각이 난다. 누가 증도를 시간도 쉬어가는 섬이라고 했는가. 연륙교로 인해 배를 타야만 찾아 올 수 있는 섬 여행의 로망은 사라졌고, 이제는 빨리 보고 빨리 떠날 수 있는 섬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아서 무척 아쉽다. 그래도 증도를 찾아오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증도는 다도해의 다양한 생태계와 문화를 한 곳에 느낄 수 있는 중층적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신안군의 거의 모든 유인도가 그러하듯이 증도도 원래 크고 작은 섬 99개를 매립해 만든 섬이다. 증도면의 어느 땅도 인간의 노력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바다를 매립하고 수로를 파서 논을 만들고, 갯벌을 매립해 염전을 만들고, 산을 개간해 밭을 만들고, 노두(돌 징검다리)로 섬과 섬을 연결했다. 섬 주민들의 오랜 노고로 인해 지금 증도는 새로 태어나게 됐다.

증도는 소금의 섬이다. 한 여름 증도를 방문하면 온통 소금 생산에 바쁜 모습이다. 뜨거운 햇볕에서만 창조되는 흰색 結晶体인 소금은 그야말로 염부들의 땀방울 그 자체라고 할 만큼 노동의 솔직한 대가이다. 박범신 연재소설 『소금』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땡볕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염부들이야 말로 소금을 한 움큼 먹어야 소금밭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염전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소금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러니 소금에 비유한 어록도 많고, 명언도 많다.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증도면 염생식물공원. 갯벌에서 서식하는 퉁퉁마디, 칠면초를 비롯해 다양한 식물이 분포돼 있다. 공원내 데크를 걷다 보면 수로에서 장뚱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홍선기

 

증도는 슬로시티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우리나라 세 번째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슬로시티(Slow city)는 느리게 살기 운동에 기본을 두고 있는 세계적 네트워크로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운동이다. 증도는 이러한 슬로시티의 기본을 충실하게 하기 위하여 ‘자전거의 섬’, ‘금연의 섬’, ‘자동차가 없는 섬’, ‘네온사인이 없는 섬’, ‘깜깜한 밤을 되찾는 섬’을 지향한다. 또한 패스트푸드를 배척하고 로컬 푸드를 지향한다. 그야말로 ‘21세기 섬의 청학동’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 증도의 자연성과 소박함, 그리고 전통음식에 매료돼 한두 명씩 찾았던 관광객들이 연륙교가 설치되고 다양한 홍보와 행사가 알려지면서 대규모로 관광객이 몰려들어와 순박한 섬, 증도 슬로시티를 위협하고 있다.

 

증도의 이른 봄, 전봇대 숭어 말리기. 사진=홍선기
증도의 갯벌과 해양경관, 생물다양성, 그리고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전승돼 온 전통적인 어촌 문화와 어로 활동 등 우수한 도서 생태적 특성과 역사문화적 배경은 증도를 우리나라 세 번째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게 해줬다. 즉, 세계가 인정한 청정지역이고 섬 생태문화의 원형을 보전한 공간인 것이다. 이처럼 증도는 슬로시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이어 람사 습지까지 지정돼 과연 생태문화의 섬답게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증도면 도덕도 앞 바다는 송·원대의 해저유물매장지역으로서 600여 년간 갯벌에 묻혀서 잠들어 있던 당시 무역선(신안선)과 2만3천여점의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증도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74호로 지정됐다.

 

요즘 증도는 너무 빨리 변화하는 것 같다. 소박한 어촌마을, 염부의 땀방울과 흰 소금, 갯벌 속에서 장뚱어가 자유롭게 뛰어 노는 증도. 이젠 연륙교와 함께 전라남도의 섬 관광의 관문으로서 탈바꿈하고 있다. 증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관광사업, 생활의 변화, 생태계 변화 등은 향후 다도해 섬 개발의 이정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시금석 역할을 할 것이다. 신안군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우전리 해수욕장과 사구, 화도 갯벌, 소박했던 섬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 증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급속한 변화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결정하는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ㆍ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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