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4:55 (토)
강사법, 대학·정치권도 ‘반대’
강사법, 대학·정치권도 ‘반대’
  • 글·사진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11.02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 “일단 ‘몇 명만’ 뽑겠다” … 유기홍 의원 등 ‘3년 유예’ 법안 발의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위원장 임순광, 이하 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들이 지난달 22일부터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농성장을 꾸리고 ‘강사법 폐기와 이주호 장관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인근의 정부청사 후문에서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초겨울의 칼바람이 드세던 31일 오전, 현장을 찾았다.

  ⓒ 최성욱 기자

전업 시간강사 부부의 ‘경우의 수’ 함정

중국문학을 전공하는 A씨(여)는 6~7년 경력의 전업 시간강사다. 대구에 ‘진지’를 두고 경북대, 부산대를 비롯 안동과 충주까지 출강한다. A씨의 남편도 같은 전공의 전업 시간강사다. 내년이면 시간강사 20년차다. 이들 부부는 강의, 번역, 출판, 연구프로젝트 등으로 연간 수입이 합해서 3~4천만원 수준이다. 시간강사야 워낙 박봉에 ‘보따리 장수’이니 빠듯한 생활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번 겨울은 다르다.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참조, 강사 ‘1년 이상’ 공개채용 의무화…재임용 거부땐 ‘소청 청구’ 권한도)

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교원에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한다는 취지로 출발했지만, 이들 부부는 지금 ‘경우의 수’의 함정에 빠져 마음이 복잡하다. 법이 시행되면 시간강사는 ‘강사’로 명칭이 바뀌고 학기 단위 계약이 연간 계약(1년)으로, 재임용 심사 시 ‘소청 심사 청구권’이 부여된다. 대학이 시간강사의 지위를 보전해 주는 대신 타 대학 출강은 제한된다. 부부가 모두 강사로 임용되더라도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벌어들인 ‘출강 수입’에 못 미칠 거라는 예상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둘 중 한 명만 강사에 임용 되거나, 둘 다 임용되지 못하면 가계에 치명타다. A교수는 암담하다고 말했다. “글쎄요. 어쩌죠? 이번에 강사 임용에 실패한 사람은 치킨집이라도 해야지….” 치킨집은 빗댄 말일 뿐이었다. 내심은 ‘해오던 공부를 접어야 한다’는 무거운 자조였다.

  ⓒ 최성욱 기자

대학, 시간강사 축소 불가피 … “전임교수 설득할 시간 달라”

강사법은 A씨 부부 같은 전업 시간강사뿐 아니라 대학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학은 시간강사를 탄력적으로 쓸 수 없는데다 재임용 과정에서 빚어질 법적 다툼이 부담스럽다. 4대 보험 등 추가재정도 부담이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겸임·초빙 교수를 활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유도하고 있지만 대학은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다. 이달 안에 내년 1학기 교과과정 편성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절충안을 고심 중이다. 가닥은 잡혔다. 강사법이 시행되면 내년 첫해에는 일정비율만 강사로 임용한다는 전략이다. 예컨대 시간강사 100명 중 20명만 강사법에 따라 강사로 임용하는 방법이다.

양후열 전국대학교 교무처장협의회장(목포대·교무처장)은 “강사법이 시행되면 시간강사들의 대량 실직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일정비율만 뽑으면 실직문제를 해소하면서 대학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전임교원들이 강의를 더 맡아야 한다’는 학내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대학이 요구하는 ‘시간’은 시간강사의 강의를 줄인 부분을 전임교수에게 맡기는 쪽으로 조정할 시간인 셈이다.

국회의원들 “시행 3년 유예하자” 법안 발의

A씨를 만난 날 오후, 정치권에서도 ‘반대’의 움직임이 일었다. 유기홍 민주통합당 의원과 여야 국회의원 15명이 ‘강사법 시행을 3년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강사법이 입법 취지와 달리 강사의 처우개선은 거의 없으면서 비정규직 교수제도를 더욱 고착화 하고, 정규 교수임용을 줄이는 데 악용될 문제가 있다”며 “시간강사의 신분 안정과 생계보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법률안 개정을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을 다룰 국회 본회의는 오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도 공감한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시간강사는 한 대학에서 4~5시간을 강의해왔는데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전임교원 확보율에 포함시키려고) 강의를 9시간 이상 맡길 것이다. 벌써부터 현장에선 15~18시간까지 맡길 거란 얘기도 들린다. 결국 강사법은 정규직 교수가 될 사람을 1년짜리 강사로 전락시키면서 시간강사를 대규모 정리하는 법안이다.” 비정규교수노조는 대학이 한 강사에게 최대 18시간까지 강의를 맡긴다면 시간강사 1만~2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오는 5일 오전 11시 30분, 정부청사 후문에서 비정규교수노조는 ‘강사법 폐기와 2012 임단투 승리를 위한 파업 찬반투표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파업에 돌입한다. 같은 날, 전국교무처장협의회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함께 4년제 대학 교무처장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대응방안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