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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새롭게! …지식의 백과사전을 탐험하는 묘미에 빠지다
끊임없이 새롭게! …지식의 백과사전을 탐험하는 묘미에 빠지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0.29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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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연구모임_ 10년째『율리시스 』읽는 제임스조이스 독회

 

세 번이나 『율리시스』를 번역한 김종건 전 고려대 교수(영어영문학)는 지금도 독회에 참가해 후학들과 토론을 벌인다. 번역자가 토론자로 계속해서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발제자에게 질문하는 김종건 교수.
讀會는 인문학의 기본이요 시작이다. 한 작가나 사상가의 생각을 풀어 쓴 해설서들도 많지만, 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직접 쓴 작품을 읽는 편이 더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독회의 매력은 같은 작품을 놓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토론의 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독회는 한 작가를 선정해 그의 전 저작을 놓고 읽어내려 가거나, 또는 사조를 정하고 거기 속하는 작가 군을 추려낸 뒤 대표작들을 선정해 읽어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 10년 동안 한 작가의 단일작품으로 독회를 한 모임이 있어 화제다. 바로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율리시스』로 101번째 독회를 맞이한 한국제임스조이스학회(회장 민태운 전남대 영어영문학)의 독회다.

101회. 적지 않은 숫자이다. 독회는 한 달에 한 번, 세 번째 토요일 오후 2시에 모인다. 봄, 가을 학술대회가 있는 달은 모이지 않으니, 일 년에 10회가 된다. 101회는 10년 하고도 한 달이 된 역사를 딱 떨어지게 알려준다.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2002년에 왜 하필『율리시스』였을까. 민태운 전남대 교수는“랜덤하우스 출판사가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전환될 때, 최고의 소설이 무엇이냐는 평론가 대상 설문조사를 했더니, 『율리시스』가 뽑혔습니다. 여러 언어가 사용된 데다 문체도 화려하고, 게다가 다양한 내용까지 있었기에 선택했어요”라고 답했다.

10년 전의 선택을 2012년에도 이어오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독회 멤버들은“다른 소설은 몇 번 읽으면 재미가 없는데 비해, 『율리시스』는 18개 챕터마다 문체가 모두 다르다”는 점과“‘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된 소설이라 특이하다. 게다가 지식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 신학, 문학, 철학 등 여러 가지 지식이 내포돼 있으니 해도 끝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사실『율리시스』는 그 난해함으로 악명이 높다. 오죽했으면 저자인 제임스 조이스조차도 “이 소설 을 통해 교수들을 바쁘게 하겠다”라고 공언했을까. 조이스의 전기작가 리처드 엘만은“우리는 조이스와 동시대인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1941년에 죽은 20세기의 인물 조이스가 21세기의 우리들보다 항상 앞서있다는 뜻이다.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는 그 태생부터 호머의『오딧세이』와 비교됐다. 오딧세이가 희랍어라면 율리시스는 영어식 이름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호머의『오딧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딧세우스가 귀향하기까지의 20년 동안의 모험을 장엄한 대서사시로 그렸다면 조이스의『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세 명의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을 썼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집으로 돌아가는’이야기라는 점, 그리고『율리시스』의 마지막 18번 챕터의 본래 이름이 페넬로페 챕터로 불렸다는 점에서 비교연구가 많았었다. 페넬로페는 오딧세우스가 마침내 귀향해 재회하는 아내 이름이다. 조이스는 건물을 올리기 위해 받침대가 필요하듯 호머의 얼개를 갖다썼다가 마지막에는 호머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래서『율리시스』에는 페넬로페 챕터란 말은 사라지고 18이라는 숫자만 남아있다.

지난 9월에 열린 100회 독회를 자축하는 멤버들.
독회 멤버들도 화려하다. 1968년 이립을 갓 지난 나이에 조이스의 작품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김종건 전 고려대 교수(영어교육과), 서울대 재직 시절 항상 독회에 참석했던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 김길중 전 서울대 교수(영어교육과), 이종일 세종대 교수(영어영문학과), 홍덕선 성균관대 교수(영어영문학과)도 빠지지 않고 독회에 참석했다.

이 외에도 전은경 숭실대 교수(영문학과), 이영심 한국외대 강사(영문학), 남기헌 서울과기대(영어영문학과), 김경숙 안양대 교수(영어영문학과), 최석무 고려대 교수(영어교육과), 김상욱 경희대 교수(영미어문), 길혜령 영남대 교수(영어영문학) 등이 핵심멤버다.

 『오딧세이』에 조예가 깊던 이태수 교수는 독회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으며, 1988년과 2007년에『율리시스』를 재번역해 출간한 김종건 교수는 지금도 독회에 참가하고 있다. 번역자가 토론자가 돼 후학들과『율리시스』를 더욱 깊게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10년을 지속하게 한 비결이라고 민태운 교수는 말한다. 조이스 연구의 특징 중 하나는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점, 둘째는 혼자서는 못한다는 점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민 교수는“여러 모임을 하지만, 제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제임스 조이스 독회입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오게 하면 안와요. 조이스의『율리시스』에는‘웃기면서도 진지하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재밌으면서 진지하기도 하고, 철학적, 신학적, 역사적인 백과사전식 지식이 다 있어요. 재미있으니까 오는 것이겠죠. 이야깃거리는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라고 말했다.

일반인도 참관할 수 있다. 독회를 참관하는 학생들에게 호응이 높은 이유도『율리시스』가 갖고 있는 웃긴 내용들이나,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애매모호함이 크다고 민 교수는 덧붙였다. 거기에 우스운 이야기를 평상시에는 근엄한 교수들이 툭툭 던지기도 하고 진지하게 대화하기도 하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토론을 하니, 학생들이 매우 좋아한다는 설명이다.

시공간적 보편성이 가장 큰 매력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율리시스』가 갖고 있는 시공간적 보편성이다. 『율리시스』의 시간적 배경은 1904년 6월 16일, 공간적 배경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이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더블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2012년의 서울, 전주 어디에나 적용되고 6월 16일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이 바로『율리시스』를 끊임없이 새롭게 읽게 하는 동력이다.

한 시대, 한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문체마저 챕터별로 다양하니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도 선사한다. 2012년의 사건에서『율리시스』의 흔적을 읽기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지식의 백과사전이라 불릴 정도기에‘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속담이 이렇게나 딱 들어맞는 소설이 있을까.

102회 독회에서는 17챕터를 읽을 것이라는 민 교수는 독회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으로 방대함과 난해함에 질리지 말 것을 주문하며“4, 5, 6, 7, 10 챕터처럼 쉬운 부분부터 읽어나가는 편이 좋습니다. 방대한 양의 지식을 따라가려면『Ullyses annotated』라는 주석서도 함께 놓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작품을 10년간 읽고도 아직 더 읽어야 한다는 독회. 올해 제5회 제임스조이스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그들의 숨은 힘은 10년 전 시작된 작은 불꽃 같은 독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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