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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⑦ 사교장이 된 특수대학원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⑦ 사교장이 된 특수대학원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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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5:54:10
특수대학원의 인원은 넘쳐나고, 이로 인해 대학들은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는데도 정작 ‘교육’에의 재투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돈만 내면 설렁설렁 학위를 수여하는 방만한 학사운영 속에서 ‘사교’를 목적으로 특수대학원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그 속에서 진정으로 학문을 익히고자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설 자리를 잃어가는 특수대학원의 현실을 조명한다.

지난 5월, 파주 홍원 연수원에서는 이틀에 걸쳐 ㅅ대 경영대학원 ‘2002 춘계 원우의 날 행사’가 열렸다. 원우 1백26명, 교수 9명 등 총 1백50여명의 인원이 참가한 이날 행사에는 벤쳐기업 회장, 대기업 대표이사, 성형외과 원장 등이 참가해 ‘정규 수업 시간에 듣기 어려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주제로 특강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의 체육대회는 ‘국내 유수 기업에서 인정받은’ 전문 도우미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레크레이션 시간에는 초청가수까지 동원됐다. 늦는 학생도 많고 조는 학생도 많은, 50%이상 출석하면 ‘높다’고 말할 정도로 출석률이 낮은 특수대학원의 ‘수업시간’과는 전혀 다른 ‘생기에 넘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풍경은 비단 ㅅ대만의 모습은 아니다. ㅎ대 경영대학원 원우회는 매달 볼링경기로 원우, 동문들끼리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으며, ㅈ대 국제경영대학원에는 만 40세 이상만 회원이 될 수 있는 ‘시니어 모임’이 있어 1백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ㅇ대 행정대학원에는 3-4백명 가량 참가하는 송년회 말고도 등산, 골프 등의 소모임이 있어 구성원들이 원할 경우, 계속해서 사회 유력자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홍현표 ㄷ대 경영대학원 강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비슷한 업무에 종사하는 만큼 서로간에 쉽게 가까워져 스스로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고 한다.

학부보다 못한 대학원 수업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수대학원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코자 입학했던 이들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직장에 다니면서 학부과정과는 다른 ‘대학원만의 깊이 있는 교육’을 경험해보기 위해 특수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이 아무개씨(ㅈ대 국제경영대학원 원우회 자문)는 “실제로 와보니 학부보다도 못했다”고 토로한다. 사회적으로 유력한 사람과의 ‘연’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특수대학원에 입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실 속에서 특수대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과 ‘졸업장’뿐인 것 같다는 이씨는 그래도 ‘돈 2천만원 쓰고 학위와 학연을 건졌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돈만 내면 별다른 노력 없이 학위도 얻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실세와의 ‘연결끈’도 잡을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특수대학원의 학생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조사에 의하면 2002년 현재 입학 정원은 5만5천3백10명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강의가 겸임교수나 시간강사에 의존하고 있고, 수업시수나 각종 시설은 일반 대학원보다 부족한 상황인데도 등록금은 일반대학원과 비슷하다는 대학원생들의 불만은 만만치 않다. 성균관대에서 발행하는 ‘오크노’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같은 특수대학의 수업에 대한 수강생들의 반응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일례가 될 수 있다. 서울소재 언론대학원 재학생 105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의하면 전체의 46%가 ‘그저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고, ‘불만족(32%)’이 ‘만족(22%)’보다 높게 나타났다.
김세영 단국대 산업경영대학원장은 현재 산업경영대학원의 경우 시설도, 교육여건도 좋다고 말하지만, 전임교수 하나 없는 상황에서 ‘교육여건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ㅅ대 중소기업대학원 행정실 최창하 과장의 경우 “우리에게 불리한 이야기만 나올 것 같다”라며 일체의 질문에 대한 대답, 자료제공을 거부한 것에서 보듯, 대학 측에서는 물론 특수대학원의 ‘부실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적은 자금을 들여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 때문에 다양성 면에서나, 규모 면에서나 특수대학원의 ‘팽창’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한 대학 측의 입장이다.

실세가 아니면 들어오지도 마라?
특수대학원의 본래의 목적은 ‘각종 지방소재대학, 서울소재대학들로 하여금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인에게 평생교육,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지만, 갈수록 사회 유력 인사들이 상부상조하는 ‘로비장’ 내지는 대학원 동기임을 빌미로 사회 내에서 특정 그룹을 형성하도록 부추기는 ‘사교장’ 정도로 변질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ㄱ대, ㅅ대, ㅇ대 등은 △ㄱ대 행정대학원: 정당, 기업체, 정부기관, 군 및 공공기관의 최고관리자 △ㅅ대 행정대학원: 정부 각 기관의 5급 이상 및 이에 준하는 공무원, 육·해·공군의 영관급 이상의 장교, 국영기업체 및 이에 준하는 대규모 기업체 간부, 언론기관의 간부 △ㅇ대 경영대학원: 기업체의 최고경영자 및 임원, 정부·국회·사법의 고위관리자, 비영리 단체의 경영자 등으로 응시자격부터 제한하고 있어 그야말로 이들 대학원들이 사회유력인사들의 ‘사교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하고 있다.
그러나 이현청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특수대학원’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는 특수대학원의 수업이 대부분 야간에 진행되는 만큼 학생들도, 교수들도 수업동기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무총장은 개인에 따라 수업시간을 조절하도록 하는 외국의 ‘개인협약시스템’을 도입하고, 학생들에게 실습 등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 수업의 내실화를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지난 9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학생들은 ‘방학 때 뭐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스터디그룹 소개공고를 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학교에 모여 인권, 환경, 노동 등을 포괄하는 토론을 통해 더운 여름 동안에도 학업에 전념할 계획이다. 이제 이들의 더운 열기가 식지 않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특수대학원이 正道로 들어서야 할 때다.박나영 기자 imnaria@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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