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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강 제도’ 없앤 연세대
‘재수강 제도’ 없앤 연세대
  • 글·사진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10.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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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도 4년간 단 3번만 가능 … “‘학점 가치’ 높여서 ‘스펙 경쟁’ 막을 것”

‘엄격한 학사관리냐, 학습권 침해냐’. 논란은 식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연세대(총장 정갑영)가 ‘재수강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내년 신입생들은 건강상의 이유나 경제적 문제로 재수강이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재수강할 수 없게 됐다. 불가피한 재수강 기회도 4년간 최대 3회까지만 가능하다. 단, 필수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아 졸업을 못할 경우에는 재수강이 가능하지만, 낙제점을 받은 과목도 전체 평점에 포함된다.

재수강제 폐지는 ‘제3의 창학,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기치로 내건 정갑영 연세대 총장이 직접 챙기는 사안이다. 정 총장은 지난 8월 30일, ‘2012 연세비전 교직원 컨퍼런스’에서 “교육환경을 악화시키는 것 중 하나가 재수강 제도다. 재수강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중복투자 비용을 교육환경 개선에 쓰겠다”고 예고했다.

연세대는 그러나 2006년과 2010년, 이미 두 차례나 재수강제를 고친 선례가 있다. 2006년 재수강 신청자격 상한선을 C+에서 D+로 강화했고, 2010년엔 기준을 다시 C+로 완화하면서 횟수 제한까지 풀었다. 무제한으로 재수강이 가능했다.

재수강제 ‘널뛰기 정책’을 써오던 연세대가 급기야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단 대학재정과 학사관리,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석이 읽힌다. 연세대의 평균 재수강 신청비율은 약 9%. 학기당 2천500~2천700여개 과목이 개설 되는데, 재수강을 전면 금지하면 250~270여개 과목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연세대는 그러나 막상 재수강제를 폐지해도 전체 평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5년간(2008년~2012년) 연세대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재수강을 평균 5.2회 했다. 한 학생이 D+ 5과목을 재수강해서 모두 B+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평점은 0.28점 오르는데, 졸업이수학점 126학점으로 환산하면 대략 0.2점(4.5점 만점)이 반영된다. 재수강하면 3.9점인데 폐지해도 3.7점이라는 논리다.

정인권 연세대 교무처장(시스템생물학과)은 “정책에 일관성이 떨어진 측면은 인정한다”면서도 “졸업생들의 80% 이상이 A·B학점이다. 학점을 신뢰하지 않으니 기업에서 자꾸 다른 ‘스펙’을 요구한다. 대학의 의미가 축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수강제 폐지가 발표된 지 한 달 여, 학생들의 시선은 엇갈리고 있다. 연세대에서 만난 박소연 씨(문화인류학과·2)는 “대학에서는 다양한 활동과 경험이 중요한데, 재수강 기회가 없으면 학점경쟁이 과열될 것”이라며 “더구나 상대평가를 받고 있어서 학점 서열화에 매이게 된다”고 내다봤다. 반면 재수강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이서윤 씨(행정학과·1)는 “재수강제가 학점세탁용으로 악용되고 있고, 수업 이해도가 달라서 신규수강자들이 불이익을 받는다. ‘새로 배움’이 목적이라면 기존의 ‘청강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단과대학 학생회와 함께 2주째 재수강제 개편 완화를 촉구하는 ‘1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2등과 3등이 모여 또 다른 1등을 만드는 제도, 학습권 침해, 학점 부풀리기… 재수강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여기에 연세대가 먼저 불씨를 지폈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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