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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대회 ]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를 주제로 한 제52차 세계언론학대회
[학술 대회 ]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를 주제로 한 제52차 세계언론학대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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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5:50:53
언어와 문화, 삶의 구석구석 매개된 차이를 넘어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인 소통을 꿈꾸는 것은 비단 몇몇 학자만의 몫은 아닐 터. 이번에는 세계에서 모인 언론학자들이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힐튼호텔에서 제 52차 세계언론학대회가 열린 것이다.

세계언론학회(회장 신디 갈로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 이하 ICA)와 한국언론학회(회장 김학수 서강대 교수)의 공동주최로 열린 이 대회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Reconciliation through Communication)’를 주제로 열렸다. 한국언론학자 2백20명을 포함해 전세계 18개국 1천여 명의 학자들이 모두 17개 분과에 참여했고, 발표된 논문만 1천2백여 편에 달한 유례없는 규모였다. ICA가 주최하는 세계언론학대회가 아시아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이번 대회는 저명한 언론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관심을 모았다. ICA 회장이자 호주 언론학계의 간판인 신디 갈로 교수를 비롯해 세계언론학회 차기 회장에 내정된 제닝스 브라이언트 미국 앨러배마대 교수, 데이비드 위버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 린다 퍼트남 미국 A&M대 교수, 맥스웰 맥콤스 미국 텍사스대 교수, 에버릿 로저스 미국 뉴멕시코대 교수, 조셉 카펠라 미국 펜실베니아대 교수, 로렌스 그로스버그 미국 노스캐롤라이대 교수 등 손꼽히는 언론학자들이 참여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화해. 이 주제는 1년 전부터 정해진 것으로 개최국인 한국의 상황도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오택섭 집행위원장(고려대 신문방송학)은 “이 주제를 정한 신디 갈로 회장은 ‘의도적으로 주제를 모호하게 정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화해’라는 말은 이미 갈등이 전제돼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립되는 갈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연구자가 창조적인 관점으로 갈등의 내용과 그 해결 방안을 연구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1천2백 편의 논문 중 같은 내용이라고는 없다.

통일과 미디어 논의 활발

이번 학술대회는 주제 세션과 각 언론학자들의 관심 분야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 17개의 분과로 이뤄졌다. 16개의 발표로 이뤄진 주제 세션의 내용을 살펴보면, 에스페란토어 등의 중립적인 국제어 사용이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이 되리라는 ‘중립적인 국제 언어의 소통을 통한 화해’, 초문화주의의 원리과 연구방법론에 대한 질문을 던진 ‘초문화적 리얼리티’, 동양과 서양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동질성과 차이에 관한 접근을 시도한 ‘동양과 서양의 이론은 동일성을 벗어났는가’, 남북한 미디어 분석을 시도한 ‘남북한의 미디어를 통한 화해’, ‘남북한의 통일과 영향 이론 만들기’ 등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각적인 시도를 한 눈에 살필 수 있었다.

특히 ‘남북한의 통일과 영향이론 만들기’는 언론과 정부의 ‘햇볕정책’이 분단 국가의 화해를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자 했다. 한국정부가 햇볕정책을 시행하면서 언론이 이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언론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주제 세션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대화(Dialogue)라는 패널이었다. 주제는 ‘동아시아 연구는 무엇에 기여할 수 있는가’. 미국, 캐나다, 홍콩, 한국, 일본 등에서 온 학자들과 관중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정형화된 미디어 연구를 벗어나 서로의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자 기획된 이 자리는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차이를 넘어서 소통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대화’ 그 자체로 보여준 셈이다.

그 외에도 참가자들의 시선을 끄는 연구 결과가 속속들이 발표됐다. 그 중 화제가 됐던 것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세미나에 발표된 마이클 그리핀 미국 매칼레스터대 교수의 주장. 그는 미국 주요 언론들이 9·11 테러 당시 게재한 사진이 중요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추상적 이미지와 상징들을 양산하는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리핀 교수는 이날 이종수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와 함께 쓴 논문 ‘테러와의 전쟁 사진보도: 다시 본 시사잡지의 전쟁 이미지들’에서의 분석에 따르면, ‘타임’, ‘뉴스위크’, ‘US 뉴스 & 월드 리포트’지가 9·11테러 때부터 지난 3월까지 게재한 보도 사진들이 “테러 장면이나 영웅적인 구조 장면들, 정치 지도자들에 편중됐다”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언론에 가장 많이 실린 사진은 9·11 테러 당일의 ‘세계 무역센터 붕괴 장면’, ‘소방관 등 구조 영웅들’, ‘희생자·생존자와 가족’ 등이었다.

그리핀 교수는 테러와의 전쟁이 ‘보이지 않는 적’과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뉴스위크의 사진보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실증적 재난 보도의 요건을 채우는 대신 테러 장면과 피해자, 강경한 대통령과 미군의 최신 무기 이미지가 넘쳐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캐서린 프레스턴 미국 캔자스대 교수도 “9·11 테러 보도 사진 가운데는 ‘문화적 기억’만 남게 하는 사진들이 꽤 있었다”면서, “이런 사진들은 9·11 테러의 본질에서 동떨어진 참혹한 기억들만 남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 언론학 흐름 한눈에

많은 수의 논문이 발표돼 혼란스럽지 않을까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주제 세션 중 ‘미디어 연구와 화해’에 발표자로 참가한 이동근 조선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발표 시간이 짧고 또 5명의 발표에 대한 논평자가 한 사람 뿐이라 조금 걱정한 것도 사실이지만, 논평자가 논문을 꼼꼼히 읽고 와서 좋은 코멘트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대회에 참가한 하주영씨(미 일리노이대 신문방송학 박사 과정)는 “언론학에 관한 세부적인 논의까지 구체적으로 준비돼 관심 있는 분야에 일치하는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언론학계의 세대교체를 볼 수 있었다. 주제면에도 그렇고, 젊은 학자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원 교수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문화 연구 부분은 오히려 한국학자들이 더 나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최근 언론학의 경향을 조망할 수 있는 ‘디지털 불평등’,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언론과 여론’ 등의 연구와 미디어와 젠더 문제를 조명한 ‘젠더, 미디어와 갈등’, ‘영화의 젠더화된 이미지와 정형성’ 등이 발표돼 신선함을 주었다. 또 ‘건강 커뮤니케이션’ 등 한국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발표도 있어 세계 언론학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덩치만 큰 그렇고 그런 학술대회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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