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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벗어던지니 모든 것이 객체로 보여”
“스토리텔링 벗어던지니 모든 것이 객체로 보여”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0.18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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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D.」로 부산국제영화제 찾은 박철수 감독

 

▲ 1948년생.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故 신상옥 감독 연출부로 영화계 입문. 1979년 「밤이면 내리는 비」로 제16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MBC에 입사, 베스트셀러극장 PD로 활동. 1994년 독립영화사 ‘박철수필름’ 설립 후 다양한 영화적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 최익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최대 이슈는? 노출드레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무명배우 오인혜였다. 그런데 오인혜가 출연한 영화 제목과 감독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뒤에 박철수 감독이 있었다. 그는 「접시꽃 당신」,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으로 1980년대 멜로 장르에 획을 그었다. 1990년대 ‘박철수필름’을 차려 「301·302」, 「학생부군신위」, 「산부인과」로 사회에 날선 비판을 던졌으며, 2000년대 접어들며 「봉자」, 「녹색의자」,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올해 BIFF는 다시 한 번 그를 초청했다. 그가 들고 온 영화는 「B·E·D」. 노출 논란으로 그렇게 시달렸을 법한데,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침대라니? BIFF에서 박철수 감독을 만났다.

△ 2년 연속 BIFF에 초청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나요? “선생님이었어요. 제가 청도 촌놈입니다. 어릴 때 제일 먼저 등교했어요. 걸상에 앉을 수 있으니까요. 가난해서 집에는 의자가 없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제일 위대해보였나 봅니다. 20대 중반에 선생님이 됐는데, 내가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면서 어린 학생들을 대한다는 것이 무섭더라고요. 도망쳤죠. 한진그룹 기획실에 입사했는데, 아주 쉽게 한계가 오더라고요. 그때, 신상옥 감독을 만났죠. 그 양반이 가진 아우라가, 멋있게 좀 재밌게 사는 방식이 제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신 감독님 아래서 3년간 조연출을 하고 감독으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 MBC에서 PD로도 명성을 날렸는데요

△ MBC에서 PD로도 명성을 날렸는데요. “1980년이 TV가 흑백에서 칼라로 전환되던 해에요. 셋트촬영만 하다가 로케이션 촬영도 시작됐죠. 제가 체계적으로 영상공부를 못했는데, MBC에 있던 10여년 동안 영화, 연출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필름을 마음 껏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방송국이었으니까요.”

 

△ 「B·E·D」, 인생의 1/3을 침대에서 보낸다는 데서 시작한 영화라고 하던데요. “전 침대체질 아니고 온돌방 체질입니다.(웃음) 침대에서 잠도 자지만, 서구에서는 휴식도 취하는 공간이죠. 나갔다 들어오면 침대로 직행하기도 하고요. 한국도 이제 침대 없는 집 있나요. 잠자고, 섹스하고 전부 침대에서 하는 일이죠. 인간의 일생이 침대에서 시작해서 침대에서 끝나더라고요. 그런데 침대를 보는 시각이 사람마다 또 다릅니다. 제 영화에선 한 여자는 침대를 쉴 곳으로, 또 한 여자는 섹스의 장소로 보죠. 상상력이라는게 참 재밌어요. 내가 묵은 호텔의 침대, 이 침대가 가진 역사가 대단하지 않겠어요? 대학교수가 와서 잠자고 가고 나면 연인들이 와서 섹스하고, 가족이 와서 머물다 가고… 저 침묵하는 침대가 가진 비밀, 역사가 있는 거죠. 권지예 작가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재밌다고 해서 영화화 하게 됐습니다. 침대에서 잠만 잘 수 없으니, 밥도 먹고, 섹스도 하는, 즉 모든 일상이 이뤄지는 걸 보여준 겁니다.”

△ 권지예 작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했는데, 특히 신경쓴 부분이 있나요? “두 부류의 소설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원작의 서사구조를 영화에도 고스란히 적용해달라는 부류이고요, 나머지는 소설과 영화의 언어가 다름을 인정하는 부류입니다. 권 작가는 두 번째지요. MBC에서 베스트극장을 하면서 수많은 소설가를 만났습니다. 소설을 영화로 할 때 최소한 소설가의 모티브는 알고 존중해 줘야 합니다. 그 이후는 철저히 감독의 몫이지요. 그런데 관객들은 자기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대로 영화가 형상화되지 않으면 나쁜 영화라고들 합니다.”(웃음)

△ 「봉자」(2000)부터 「B·E·D」까지는 성에 천착하고 있는데, 10년 넘게 이 주제에 몰입하게 된 터닝포인트가 있을 것 같군요. “방송할 때,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시청률에 치여 살았죠. 영화판으로 돌아가 「접시꽃당신」, 「물위를 걷는 여자」같은 흥행영화. 즉 관객과 타협하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치더군요. 스토리는 픽션입니다. 오늘 이만큼 거짓말 하면, 다음에는 이만큼으로 안 되요. 1990년대가 되면서 가족들, 친구들 보면서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걸 알게 됐어요. 다 내려놓고 미국 NYU에 독립영화 공부하러 갔어요. 입학 인터뷰를 하는데, 저더러 미쳤대요. 이렇게 작품 많이 찍어놓고 뭘 배우러 왔냐고. 그러면서 강의를 하라고 하더라고요. 졸지에 교수가 됐죠. 그때 곽경택 감독이 학생으로 있었고, 스티븐 소더버그, 짐 자무쉬, 스파이크 리 감독이나 앤디 맥도웰 같은 배우를 만나며 자신감을 찾게 됐어요. 그동안 조명은 이래야 한다고 의식하고, 이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서 탈피한 거죠.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 인간이든 내 카메라의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301·302」부터 제 영화는 연작입니다. 먹고 마시고(「301·302」), 죽고(「학생부군신위」), 태어나고(「산부인과」), 가족이 되고(「가족시네마」), 소셜화되고(「봉자」, 「녹색의자」) 더 나아가 자유인이 되는 것이죠. 사실 소셜에 대한 영화 이후로 폴리티컬한 영화로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사정과 상황들이 영화를 못 찍었어요. 그래서 ‘성’이란 소재가 계속 나오는 것일 뿐, ‘성’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 교수 생활도 하셨더군요. 영화교육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영화 교육 하지마라. 출발은 거깁니다. 가르칠 것도, 배울 것도 없다는 것이죠. 컷 사이즈도, 이럴 땐 바스트, 이럴 땐 클로즈… 그런 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의 느낌으로 정하는 겁니다. 학생이 작품을 쓰면 교수가 코멘트하고 동료가 코멘트하면서 창작의 주체는 작품 밖으로 밀려나죠. 학생들의 생각을 제한하는 오류, 획일화 된 틀을 벗어나야 해요. 무작정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사조, 형식, 방법은 책을 읽되, 사유체계를 폭넓게 느끼도록 부딪혀야죠. 예를 들면, 일주일에 한 번 원고지 10장으로 시를 쓴다던가, 하루에 한 컷, 내 일상의 감수성이 표출된 순간을 사진으로 표현하기 뭐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합니다.”

△ 충무로에서는 원로 대우를 하지만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는 ‘청년’처럼 보입니다. 왜 영화를 만듭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 때 영화를 그만두고 거짓말 하지 않는 장사를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뭐가 있을까 봤더니, 야채장사가 있더라고요. 시들면 내가 먹든가 염소 주든가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게을러서 내가 그걸 못해요. 자, 그러면 죽을 때까지 이걸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내 의식, 관념을 영화로 형상화했을 때, 몇몇의 사람이라도 공감한다면 좋죠. 1천만원만 되도 만들겁니다. 촬영이라는 게 육체적 노동이 수반되서 다리 힘 빠지면 못하죠. 그래서 죽음을 얘기할 때 내 행복한 바람은, 디렉터 체어에 앉아서 ‘레디 고!’를 외치고 컷을 안 외치는 겁니다. 영화는 지속되지만 이미 죽어있으니까요. 멋진 죽음 아닙니까.”

△ 차기작으로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요. “DJ정권 때부터 써둔 시나리오가 있어요. 미디어에서 탈북자를 귀가 아프게 떠들던 시기지요. 탈북자는 많은데, 왜 탈남자가 없는가? 궁금했습니다. 북한에도 다녀온 적이 있어요. 똑같이 사람 사는 동네인데 말이죠. 남북한이라는 이 웃기는 상황을 한국 감독이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직무유기 아니겠어요? 저는 JSA나 탈북자가 남한에 정착하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어요.”

 



부산=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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