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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이공계 기피현상과 대학연구
[學而思] 이공계 기피현상과 대학연구
  • 임한조 아주대
  • 승인 2002.07.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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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5:27:19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와 질이 떨어지고 있어 국가적으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자원이 빈약하고 인구밀도가 높아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첨단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나라로서는 정말 국가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IMF 시기 산업현장에서 나타난 기술자 우선 감원, 국가적 의사결정에 이공계열 배제 등 여러 가지 현상에 근거한 판단 때문이겠지만 그 핵심은 이공계 박대로 요약될 수 있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 첫번째 이유이다. 사회적응을 위한 필요성이 그 다음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각기 다른 능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느끼는 경향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일례로 어떤 사람은 남을 지휘하는 행위나 높은 지위를 즐기는 반면 많은 자연과학도들은 이와는 반대로 조용히 자기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사람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대접을 받을 때에 행복과 긍지를 느끼는 것은 공통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공계열 기피현상은 다시 한번 과학기술자들이 긍정적인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러면 왜 우리사회는 과학기술자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도록 만들까. 그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사농공상의 순서로 계급 지워진 행정관리직에 대한 우대, 해방이후에 급격히 이루어진 부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현재의 국내 교육방식에 연유돼 있다고 본다. 즉 현재 우리 나라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행정관리직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또한 개인의 부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 토론식 교육이 정착되지 않음에 따라 대부분의 이공계열 출신자들은 자기 전공분야의 전문지식만을 갖춘 채 사회로 진출하게 돼 주변을 설득하고 관리하는 관리자적 능력이 부족한 면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은 본디 교육과 연구가 그 기본목표이며 보직자나 행정직들은 이러한 목표를 지원해주는 역할이 그 근본 존재이유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직을 맡은 인사들이 평교수들을 관리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을 많은 대학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연구에 관해서도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는데 그것은 연구 여건을 개선하기보다는 교수들을 다그치는 제도마련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신지식을 창조하는 대학에서의 연구의 본질은 독창성이며, 독창성은 우수한 학자가 충분한 시간 동안 자유로이 사색에 몰두할 수 있을 때 꽃 피울 수 있다. 또한 이공계열 학자들의 경우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시설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선진국의 유수 대학의 관리자들은 우수 연구자들을 유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또한 평교수들은 그들의 이러한 노력을 존중하여 그들을 따른다.
국내대학에서도 이러한 풍토가 정착돼야만 비로소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독창적이고 우수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연구들이 계승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대학에서 많은 보직자들이 연구여건을 높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교수들을 다그치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국내의 경영관리자들 역시 과학기술자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열로 기술개발에 노력하도록 하기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풍토 때문에 우리 과학기술자들이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은 인간적인 대접과 일할 목표를 느낄 때 진정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삶의 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다. 지금 이대로는 결코 이공계열 기피 현상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며 대학에서의 창조적인 연구나 첨단기술 개발에 의한 지속적 국가번영 역시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임한조<아주대· 전자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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