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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 앞두고 폴리페서 논란
18대 대통령 선거 앞두고 폴리페서 논란
  • 최성욱·김봉억 기자
  • 승인 2012.10.16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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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자문 아닌 직책 맡는다면 ‘패널티’도 감수해야

윙~. 돌 깎는 기계소리가 엔진 굉음에 섞여 들려왔다.

“네?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지난 9일 오후 3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추진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A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방에 있다고 했다. 주말에 내걸 축제 폐막 작품을 만드느라 시간이 없으니 (통화를) 짧게 하자고 했다.

“2주전인가? 국민행복… 그 뭐더라, 김종인 씨가 하는 건데… 하여튼 그쪽 관계자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름 올려도 되냐’고. 예전 인연(!)도 있고 해서 그냥 올리라 했죠.”

엄밀히 따지면 A교수는 최근에 정년퇴임했기 때문에 취재 대상은 아니었다. 책임질 수업도, 학생도 없었다. 그러나 작업장에서 들려온 그의 말은 뜻밖이었다. “선거 기간에 어떤 일을 수행할 거라는 얘기가 없었으니까, 실제로 제가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A교수는 추진위원과 관련, 회의나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어떤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지 “모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새누리당에는 A교수처럼 추진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대학교수만 165명이다. 추진위원 가운데 교수가 아닌 직군은 110명이다.

‘폴리페서’ 몰아세우는 언론에 뿔난 교수들, “같은 논리면 산학협력도 문제”

지난 7일,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합류한 B교수의 전공분야는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캠프에서는 사회통합안을 기획하고 있다. 주중엔 수업을 하고 주말에 ‘안’을 만드는 식으로, 그간 회의에는 2번 참석했다. B교수는 “정책 제안 말고는 맡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포럼 연합체로 구성된 진심캠프에 합류한 대학교수는 41명에 불과하지만 비율(80.4%)에선 세 후보 가운데 가장 높다.

B교수는 대학교수의 정치 참여를 ‘설계와 시공’에 비유했다. “대학교수는 전문가 집단이고, 특히 선거철 ‘단기간’에 설계도면을 그리는 데 용이하니까 정치권에서 많이 끌어들이려는 것 같다. 선거 이후 시공 단계에서는 교수들이 대거 빠질 것이다.”

민주통합당 대선 정책팀 ‘미래캠프’에 참여한 C교수는 오랫동안 정부 관료로 지내다 교수로 임용됐다. 일주일에 2~3일, 하루에 일정 시간을 정책조언에 할애한다. 관료 출신이라 그런지 정치활동에 2가지 원칙이 있단다. 첫째 강의와 학생지도에 피해가지 않도록 할 것. 둘째 출마하지 않을 것.

C교수는 “표를 얻는 정치활동과 정부정책 참여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그가 문제삼은 건 폴리페서에 관한 이중적 인식이다. “대학교수가 전문성과 경험을 공유하는 측면에서 권장할 일은 아니라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선거철마다 ‘정책선거’에 대한 요구가 거세고, 새로운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막상 대학교수가 참여하면 폴리페서로 낙인찍는 건 이중적이다.”

다시, 새누리당이다. 홍보본부장을 맡은 D교수도 전공분야에 걸맞은 자리에서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홍보본부장이라는 직함이 무색하게도 다른 교수들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정책을 입안하고 프레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는 D교수는 “직함이 ‘본부장’이라고 해도 몸으로 뛰는 게 아니라 전략을 짜고 정책을 만드는 거다. 결국엔 자문이다. 정당엔 조직이 다 짜여 있어서 시간을 쏟을 일이 많지 않다. 어차피 실행은 당 조직원들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교수는 또 대학교수들의 캠프참여는 ‘재능기부’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본부에 정책 제안하느라 시간 뺏긴다는 점에서 폴리페서로 몰아간다면, ‘산학협력’도 마찬가지 아닌가.”

선거철마다 단골메뉴로 올라오는 폴리페서 논란. 정치권을 돌며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지역의 한 사립대 교수는 교수의 역할론을 중심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선거철이 되면 대학은 정치권에 도움을 주는 교수의 수업을 인터넷 강의로 돌려준다든지, 대학원 수업을 몰아서 하거나 격주로 하는 등 조율을 해준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해야할 강의는 다 하지만, 면담이나 과제물 피드백 등 학생지도까지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부에서 교수가 여유있는 시간에 강의준비 하거나, 연구를 할 수 있는데 정치권에 가서 자문한다는 시선에서는 비판할 수 있지만, 대학교수의 역할이 그게 다는 아니지 않나.”

‘2012년 교육기본통계 조사’(2012년 4월 1일 기준)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의 전임교원 수는 8만4천910명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세 선거캠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교수는 총 500여명. 0.6%에 못 미친다. 언론에서 앞다퉈 보도했듯, ‘대학교수들이 정치에 정신이 팔려 대학이 흔들린다’는 식으로 교수의 정치참여를 의제화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책선거’ 추세 … 정치권 “줄 서는 교수들 있지만 참여 더 늘어야”

대선후보 캠프와 국회 의원실 관계자는 폴리페서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현장의 분위기를 물었다. “왜 폴리페서가 문제 되는가? 유력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이 교수 출신이다. 우회적으로 폄하하는 것이라고 본다. 교수와 전문가를 제외하고 정치를 할 수 있나? 더군다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크고, ‘정책선거’를 강조하는 마당에 교수의 전문성 발휘는 더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대구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소속의 한 정치인은 “직업 정치인 입장에서 보면, 정치에 관여했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고, 자리에 연연하는 교수도 있다. 양다리 걸치기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문그룹에 참여해 정책 생산을 위한 활동을 한다. 다들 조심스러운 편”이라고 말했다. 이 정치인은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로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기 보다는 순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국회 의원의 한 보좌관은 “안철수 캠프를 보면 정당의 인력 기반이 부족한 탓에 교수들이 전진 배치돼 있다”면서 “국민 정서상 정치에 관여하려면 교수직을 버리고 오라는 문제제기가 잘 먹혀 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정치에 참여하려면 교수직을 버리고 오라고 하는 것은 교수들에게 과도한 요구일 수 있다. 오도 가도 못하게 하면 누가 국가와 정치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책 자문이 아닌 특정 직책을 맡게 된다면 일정 정도의 ‘패널티’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전문가인 민주통합당 의원실의 한 비서관도 “사실, 대선 정국에서 줄서는 교수는 많다. 그러나 학자들도 현실 정치 참여가 늘어야 한다. 다만, 학생 수업권을 보장하는 엄격한 조치는 반드시 강구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교육결손이나 학생 수업권 침해를 방치한 채 교수들의 정치 참여를 도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개혁을 위해 자신의 전문적 식견과 지식, 노하우를 제공하고 실현하는 활동을 폴리페서라는 이름으로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인가? 권력지향적인 폴리페서는 지양해야겠지만, 사회개혁을 위해 참여하는 활동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다. 구분돼야한다.”

최성욱·김봉억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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